본문 바로가기

신화와 전설/그리스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바람꽃 아네모네

반응형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함께 피는 꽃이 바람꽃이다. 영어로는 ‘Windflower’, 학명은 ‘Anemone narcissiflora’라고 한다. 바람꽃은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anemos’에서 유래한다. 대개 바람꽃은 가볍고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피는 꽃이다. 하지만 여름에 피는 바람꽃도 있다고 한다. 즉 이름도 같고 모두 미나리아재비과지만 바람꽃속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봄에 피는 바람꽃은 바람꽃속이지만 여름에 피는 바람꽃은 바람꽃속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식물 중 바람꽃속바람꽃은 꿩의바람꽃, 외대바람꽃, 세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이 있고 바람꽃속이 아닌 바람꽃은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만주바람꽃 등이 있다고 한다


 ▲바람꽃 '아네모네'. 출처>구글 검색


그렇다면 왜 바람꽃일까? 스쳐가는 바람처럼 금방 피었다가 금새 지기 때문일까? 아니며 작은 바람에도 한들한들 흔들려서일까? 원래부터 바람꽃이라고 불렀는지 아니면 영어 ‘Windflower’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바람꽃에는 여리디 여린 외관만큼이나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꽃의 여신 플로라의 시녀 중에 아네모네라는 요정이 있었다. 에로스의 금화살이라도 맞은 걸까 아네모네가 열렬히 사랑하는 신이 있었다. 바로 바람 특히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yrus)였다. 뻔한(?) 러브스토리라고 하겠지만 제피로스는 플로라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아네모네의 사랑은 일방적인 구애가 아니었다. 제피로스도 아네모네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꽃의 여신일지라도 남편의 불륜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플로라는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시녀 아네모네를 멀리 떨어진 포모나 궁전으로 보냈다. 안 보면 멀어진다고? 제피로스와 아네모네는 여전히 플로라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명색이 꽃의 여신인데 시녀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다니 플로라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네모네와 제피로스의 사랑은 플로라의 자존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플로라는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극약처방(?)을 했다.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플로라의 착각이었다. 제피로스의 아네모네에 대한 사랑은 그녀가 꽃이 되었어도 식을 줄 몰랐다. 아네모네를 잊지 못한 제피로스는 봄이면 부드럽고 따스한 바람으로 그녀를 찾아가 꽃이 피게 했다고 한다. 바람꽃의 꽃말이 사랑의 괴로움인 것도 이 신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서풍의 신 '제피로스'. 출처.구글 검색


바람꽃 아네모네에 관한 신화는 또 있다. 바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의 비극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가 저주했던 여인의 아들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가장 인간적인(?)인 특징은 얼굴 하나만 반반하면 남신이든 여신이든 사죽을 못 쓰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도 그랬다.

 

아도니스를 두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하계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구애 경쟁을 했다. 한 정년을 사이에 둔 두 여신의 경쟁은 결국 제우스의 중재로 막을 내렸다. 제우스는 중재자로 무사이 여신(뮤즈) 칼리오페를 보냈다. 칼리오페의 중재는 다음과 같았다. 1년을 셋으로 균등하게 나눠 각각 1/3씩 칼리오페, 아프로디테, 페르세포네가 아도니스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자신도 슬쩍 끼워 넣는 걸 보면 칼리오페도 아도니스에 대한 흑심을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비극은 아도니스가 아프로디테와 사랑을 나눌 때였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에서 여자 제우스였다.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를 사랑했지만 사실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였다. 또 그 와중에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성격이 난폭하기로 유명한 아레스는 아프로디테가 또 아도니스라는 젊은 청년에게 찝적댄다는 것을 알고는 멧돼지로 변신해 날카로운 이빨로 아도니스를 찔러 죽이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아프로디테가 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아도니스는 숨이 끊어진 상태였고 바닥에는 아도니스가 흘린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서풍의 신 제피로스를 불러 아도니스의 피가 흐른 자리에 꽃을 피우도록 했다. 그 꽃이 아네모네라고 한다. 역시 바람꽃 아네모네의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이 맞긴 맞나 보다.

 

참고로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티탄족 아스트라이오스와 에오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형제로는 북풍의 신 보레아스, 남풍의 신 노토스, 동풍의 신 에우로스가 있다.

 

한편 아네모네를 사랑했던 제피로스는 아름다운 소년 히아킨토스를 사랑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히아킨토스는 태양신 아폴론의 연인(?)이기도 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제피로스는 아폴론이 던진 원반이 히아킨토스의 머리에 맞도록 바람을 일으켜 그를 죽게 만들었다. 이 때 히아킨토스가 흘린 피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히아신스. 바람꽃도 그렇고 히아신스도 그렇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물 꽃에는 왜 이리도 슬픈 이야기들만 전해져 오는 걸까? 이런 게 바로 인생이라는 건지...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