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⑪ 아스테리아
국제질서의 패권을 두고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기존의 절대 강자 미국에 맞서 신흥강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대립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의 외교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중국과 미국의 대립을 두고 외교용어 중에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라는 말이 있다. 급부상한 신흥 강대국이 기존 세력판도를 흔들면 결국 무력충돌로 치닫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B.C. 460?~B.C.400?)가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신흥강국 아테네의 부상과 기존 패권국인 스파르타의 불안감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불러왔다는 분석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이 나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2,500여년 전 그리스의 두 동맹 세력간에 27년에 걸쳐 벌어졌던 전쟁을 말한다. 기원전 433년 코린토스의 식민지였던 케르키라가 독립을 시도하자 아테네가 지원을 하고 나섰다. 이에 코린토스가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해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기원전 431년 아테네가 주축이 된 델로스 동맹을 상대로 전쟁에 돌입했다. 두 동맹이 그리스 지배권을 놓고 27년간 혈전을 벌였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내놓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테네가 코린토스와 케르키라의 싸움에 개입하면서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시 신흥 강국이었던 아테네의 부상으로 기존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의 불안감이 전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의 코린트, 테바이, 스팍스, 마케도니아 등의 도시국가 연합체였고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를 비롯한 에게해 주변 국가들의 해상동맹이었다.
▲맨 오른쪽이 아스테리아. 사진>구글 검색 |
특히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해상 연합체를 델로스 동맹이라 부르는 것은 동맹에 참여했던 많은 도시 국가들의 중심에 델로스라는 섬이 있었기 때문이다. 델로스가 그만큼 그리스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느슨한 형태이긴 했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에도 당시 절대 강국이었던 페르시아에 맞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해상 연합체였던 델로스 동맹이 존재하긴 했었다. 어쨌든 그리스 키크라데스 제도의 작은 섬 델로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고대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델로스 섬에는 기원전 3천년 경의 에게해 문명을 비롯해 그레코로만(그리스와 로마의 형용사형) 시기의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델로스 동맹 뿐만 아니라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였던 델로스 제전이 4년마다 열린 곳도 이 작은 섬이었다. 델로스가 상당히 많은 고고학적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만큼 신화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제우스와 레토가 헤라의 눈을 피해 몰래 아르테미스와 아폴론 쌍둥이 남매를 낳은 곳도 델로스 섬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델로스 섬은 고정되지 않고 바다에 떠다니는 섬이었다. 에게해의 수많은 섬 중에 델로스만이 장차 탄생할 신들의 고향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고 제우스는 레토가 도착하자 단단한 쇠사슬로 델로스를 고정시켜 현재의 위치가 되었다고 한다. 신화 속에서 왜 델로스 섬은 떠나니게 되었을까? 델로스 섬을 고정시킨 신이 제우스라고 했지만 사실 델로스 섬을 떠다니게 만든 장본인도 제우스였다. 우주의 절대 통치자 제우스의 끈질긴 구애를 받던 아스테리아(Asteria)가 제우스를 피해 도망 다니다 뛰어든 바다 속에서 생겨난 섬이 델로스였기 때문이다. 그 신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에게해 도시국가들의 중심에 있는 델로스 섬. 사진>구글 검색 |
아스테리아는 티탄 신족으로 코이오스와 포이베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이다.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남매인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을 낳은 레토와는 자매 사이로 알려졌다. 또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와는 사촌 지간이 된다. 아스테리아의 남편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아들 크레이오스와 바다의 신 폰토스의 딸 에우리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스(Perses)로 훗날 그리스 신화에서 마녀로 등장하는 헤카테(Hecate)가 이들의 딸로 알려졌다. 아스테리아는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뜻으로 미모 또한 상당했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여신이나 여인 앞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제우스가 아스테리아 앞에도 나타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느 여신들과는 달리 아스테리아는 제우스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들과 인간의 통치자, 우주의 절대 통치자였던 제우스의 구애를 거부했던 거의 유일한 신이나 인간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아스테리아는 제우스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메추라기로 변신하며 이곳 저곳을 도망다니다 끝내는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아스테리아가 뛰어든 지점에서 솟아난 섬이 델로스였다고 한다. 아마도 섬이 된 이후에도 제우스를 피해 다니기 위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지 않았을까? 델로스 섬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아스테리아가 스스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제우스가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아스테리아를 메추라기로 변신시켜 바다에 던졌는데 그 지점에서 델로스 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스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신화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곳도 델로스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델로스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합체를 설명하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를 언급했다. 다시 말하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의 대립이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마치 한반도가 두 강대국의 대립 현장이 된 듯한 현실이다. 사드와 북한 핵으로 대치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차기 정부 외교 역량의 시험 무대는 세계 어느 지역도 아닌 한반도, 우리나라가 될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약소국이라는 제3자의 입장이 아닌 현 정세의 당사자라는 주도적인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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