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임철우/1984년
생각해 보세요. 난 지금껏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야말로 약하고 힘없는 소시민 그대로지요. 게다가 보시다시피 겨우 오십 킬로그램 근처에서 체중기가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타고난 약골인 데다가 아직껏 닭 한 마리도 목 비틀어 죽여본 적이 없는 겁쟁이입니다.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 중에서-
그야말로 소시민이었던 이 남자가 지금은 정신병동에서 감호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숨통을 조여오는 독가스에 자기의 일은 물론 일상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독가스의 정체는 군대에 있을 때 사방을 밀폐시킨 천막 안으로 방독면을 쓴 채 오리걸음으로 들어가 훈련조교들의 명령에 따라 방독면을 벗은 이삼 분 동안에 눈물 콧물 질질 흘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문제는 이 남자를 뺀 다른 사람들은 이 독가스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남자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시킨 이 독가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1960년대 이후 이 나라 작품 읽기에 종사해 온 이래 가장 감동적인 현장감을 표현했다'고 평가한 임철우의 소설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는 지방 H신문의 시사만평 그리는 것을 자부심과 천직으로 살아온 한 만화가가 특별한 공포체험 이후에 겪은 외상 후 장애를 통해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편 이 만화가의 삶을 송두리째 삼켜버린 역사적 배경이 1980년 5월18일 광주항쟁임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은 1984년 전남 M군 O면 소재 국립M정신병원에서 감호치료를 받고 있는 만화가(나)가 의사에게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정신적 병리상태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직선, 독가스, 정신병동 등은 당시 시대상황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이 상징하는 상황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내다보면 저자의 메세지가 단순히 1984년에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먼저 독가스의 정체부터 파헤쳐 보자.
무엇보다도 나는 신문 한 귀퉁이를 온전히 내 몫으로 차지하고, 내가 빚어낸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대할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 만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 그래서 가끔은 보람이랄까 자부심을 건 드물게 아주 드물게였을 뿐입니다만.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 중에서-
'나'는 신문에 시사만평을 그리고 있는 만화가이지만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투철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었음을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날 '나'의 만평이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낯선 사내들에 의해 사면이 온통 하얗게 회칠을 해놓은 사각형의 텅 빈 방에 강금되는 사건을 겪고부터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 날 이후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 독가스에 시달리게 된다. 독가스는 '나'를 둘러싼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대한 은유이자 상징이다. '나'가 독가스에 시달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사각형의 텅 빈 하얀방에서 낯선 사내(수사관)이 언급한 이름 때문이었다. 허성수. 공산주의자였던 큰아버지의 이름이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연좌제는 가장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연좌제가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될 때는 국가폭력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아마 '나'의 신문만평이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고 '나'를 억압할 합법적인 근거를 찾지못한 국가가 내놓은 논리가 바로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연좌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이 연좌제로부터 자유롭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이 지독한 경험으로 인해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대해 눈을 뜨게 됐을지도 모른다. 비록 환영과 환청이지만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게 되고 환영과 환청을 이용한 서사구조는 국가폭력의 야만성을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여전히 5월 광주가 금기시되었던 당시에 '나'를 괴롭히는 그 날의 환영과 환청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장면은 국가폭력에 대한 고발이자 저자의 죽은 이들에 대한 깊은 애도와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표현한 의도적 설정이라 하겠다. 또 세들어 사는 해남댁이 행방불명된 아들 때문에 정신줄을 놓은 대목에서는 그 날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하고 있다.
휴일인데도 차 안은 붐볐습니다. 프로야구 결승전이 무등경기장에서 있다나요.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보니, 거기 무수한 사람들의 손목이 하얀 고리형의 손잡이에 하나같이 나란히 꿰어져 있더군요. 그래요. 모두가 체포된 수인들이었어요. 차 안에 갇힌 우리 모두는 팔목에 하얀 수갑이 채워진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한마디의 항변도 몸부림도 없이 묵묵히 압송되어져 가고 있었다구요.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 중에서-
사각형의 텅 빈 하얀방에서의 체험과 그 이후 겪게 된 환영과 환청은 급기야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시켜 버린다. 만화가인 '나'가 직선을 그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직선, 세상의 모든 사물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두 쪽으로 날렵하고도 완전하게 갈라놓는 바로 그 강력하면서도 단호한 선' 말이다. 그렇다. '직선'의 상징적 의미는 국가폭력과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할 수 있는 '직언'이나 '양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가인 '나'가 결정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직선을 그리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은 바로 독가스, 국가폭력의 공포 때문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은유이자 예술인이자 언론인이었던 나약한 지식인에 대한 자기고백일 것이다.
"저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가스와 독극물로 인해 날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단식 사흘째"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 중에서-
'직선'을 그릴 수 없다는 이 만화가의 자기고백과 제발 살려달라는 절규가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껏 생생하게 들리는 이유는 여전히 '직선'을 그릴 수 없는 만화가나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때로는 '직선'을 그릴 의지조차 없이 아예 화려한 '곡선'으로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는 이 비정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권력과 자본의 충실한 애완견을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한 우리는 여전히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며 정신병동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 꼭 한 가지만 알고 싶은 게 있기는 합니다. 저, 말이죠. 나는 다시 만화를 그릴 수가 있을까요? 자를 대지 않고서도 그 빌어먹을 놈의 직선을 예전처럼 쓱쓱 그려낼 수 있겠느냐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독가스, 지긋지긋하고 끔찍스러운 이 독가스 냄새는 대관절 어디에서 어떻게 꽃가루같이 풀풀풀 날아오는 것일까요, 네.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 중에서-
이 만화가처럼 '직선'을 그릴 수 없었던 자기고백과 '독가스'의 정체를 밝혀내고 '직선'을 그리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 얼마나 될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냥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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