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평생 조립공,
통닭을 시켜먹을 때마다 치킨퍼즐을 맞춰본다네
이 부품들은 정품인지 아닌지,
날개를 세고 다리를 세고 조각조각 몸통을 세어본다네
누구보다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어 나는
평생 조립공
볼트와 너트만 있다면
조각조각 튀긴 저 통닭도 조립할 수 있고
대가리도 없고 발목도 없는
저 닭도 구구구구
깃털도 없고 내장도 없는 저 닭도 퍼덕퍼덕
거대한 전광판 위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어
나는야 평생 조립공.
저 자동차도 내가 조립했고 저 스마트폰도 내가 조립했고
저 에어컨도 내가 조립했다네
심지어는 저 아이들까지도 내가
통닭보다 못한 내가, 닭다리보다 못한
내가, 치킨 조립공이
-유홍준 시인의 '치킨 조립공'-
어제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선언으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올해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박빙의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이들은 도도한 역사 드라마 속 2012년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이들이 내보이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생사는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을 거고, 때로는 배꼽도 온전치 못할 것이다.
프로야구 시즌까지 끝나면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 관중들은 거리로, TV 앞으로 몰려들 것이다. 관전평이 쏟아질 것이다. 영화 <피에타>의 조민수를 보듯 감동의 관전평도 쓸 것이고, 가수와 연기자를 넘나들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이어린 스타를 보듯 발연기의 혹평도 쏟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드라마에 쏙 빠지는 것은 한명쯤은 명품 연기를 보여주는 탤런트가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아쉬운 것은 명품 연기의 당사자가 꼭 주인공은 아니라는 사실. 열광하는 관객들의 반응과는 달리 대종상의 영예는 늘 주인공에게만 돌아간다. 그토록 훌륭한 연기를 한 당사자에게는 '명품 조연'이라는 말로 그동안의 수고를 달래준다. 어찌보면 비정한 세상이다. 왜 우리는 이 비정한 세상의 논리를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이며 사는 것일까.
대선 드라마의 연기자와 시청자가 바뀐 탓이다. 대선 드라마의 주인공은 박근혜도, 문재인도, 안철수도 아니다. 이 땅을 사는 노동자와 농민과 서민들이다. 시청자요, 관중이요, 관객인 대선 후보들은 진짜 주인공인 노동자와 농민과 서민들의 드라마와 같은 삶에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대선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진짜 주인공의 삶에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웃어줄 수 있는 후보만이 트로피의 영예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평생을 자동차도 조립하고 스마트폰도 조립하고 에어컨도 조립하고 살아온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이 대선 드라마의 주인공이여야 한다. 스스로 주인공임을 깨닫지 못한 탓에, 주인공이 가지는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한 탓에 치킨퍼즐이나 맞추고 있는 내가 이제는 당당히 주인공임을 선언하고 스스로 의기양양해야 한다. 비록 세 명의 시청자뿐이지만(그 이상이 될 수도) 치킨 조립공의 대종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해 절 수 있는 단 한 명과 함께 수상의 영예를 나눠야 한다. 통닭보다 못한, 닭다리보다 못한 치킨 조립공의 비애에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시청자를 찾아 이제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다.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6년 「시와반시」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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