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포스팅을 쉬고 이웃 블로거들 마실 다니는 것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즐겨찾기 돼 있는 인터넷 신문도 열독해 보고 요즘은 거의 없어졌지만 좋아하는 개그나 코미디 프로그램도 케이블로 시청하면서 일주일의 피로를 푼다. 사실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야되니 온전한 휴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일요일이다.
그렇다고 일요일이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시인 100인이 추천하는 시'라고 해서 들어가봤는데 확 짜증이 밀려온다. 일단 한 번 감상해 보시라. 해석에 따라서는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노천명의 <사슴>이라는 시다. '시인 100인이 추천하는 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애송하는 시'라는 타이틀로 교과서 뿐만 아니라 신문 지상에도 자주 오르내렸으니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픔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노천명의 <사슴>을 읽으며 짜증이 밀려왔던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이윤옥 시인의 <사쿠라 불나방>이라는 읽었던 그의 친일시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천명은 모윤숙과 함께 문학계 친일파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물론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작가들이다. <사쿠라 불나방>에 소개되었던 노천명의 친일시도 한 번 감상해 보자. 주의! 너무 흥분하지 마시길...
남아라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英美)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랫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일제 강점기 시절 대표적인 친일신문이었던 「매일신보」 1943년 8월5일자에 실렸던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라는 시로 조선청년들에게 황국신민의 군인이 되길 종용하는 내용이다. 이윤옥 시인은 친일작가 노천명을 이렇게 풍자한다.
황군의 딸 되어
소화 천황 만수무강 빌던
그날
인쇄소 윤전기는
"그 처참하든 대포소리 이제 끝나고 공중엔
일장기의 비행기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아침
남양의 섬들아 만세를 불러 평화를 받어라"
찍어 내었지
바쁘게
이윤옥 시인에 따르면 노천명은 해방되기 몇 달 전인 1945년 2월25일 시집 《창변》을 펴내고 성대한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시집 끝에 친일시 9편이 실려 있었는데 그해 해방이 되자 그녀는 이 시집에서 뒷부분의 친일시를 부분만 뜯어내고 그대로 팔았다고 한다. 독자를, 민족을 우롱해도 유분수지 이런 꼼수로 다시 멀쩡하게 시인 행세를 하다니.
어차피 짜증으로 변해버린 일요일. 인터넷 검색을 계속하다보니 친일작가 노천명과 그녀의 시집 《창변》에 얽힌 또 다른 에피소드를 찾을 수 있었다. 한겨레 신문 2004년 10월3일자에는 '노천명 친일시 또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다 상세한 내용이 소개돼 있었다.
한겨레에 따르면 노천명은 해방 후 《창변》에서 친일시 부분만 빼고 다시 출간했지만 그 흔적이 일부 남아있었다고 한다. 목차에서 친일시 제목만 나열돼 있던 마지막 페이지는 뜯어냈고 다른 시와 함께 친일시 제목이 인쇄된 부분은 친일시의 제목 부분만 창호지로 붙여 보이지 않게해서 출간했다고 한다. 뜯어낸 부분이야 확인할 수 없지만 창호지로 붙인 부분은 친일시의 제목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총 4편이었다고 한다. 그 4편의 제목은 <흰 비둘기를 날려라>,〈진혼가>, 〈출정하는 동생에게>, 〈승전의 날〉이었다.
노천명이 그렇게 바랬던 증거인멸은 그녀의 바램으로 끝났던 모양이다. 《창변》의 원본이 발굴됨으로써 그녀가 증거인멸을 시도했던 친일시 5편이 추가되었는데 제목만 본다면 <병정>, 〈창공에빛나는>, 〈학병>, 〈천인침>, 〈아들의 편지>였다고 한다.
노천명의 친일시는 그녀의 시집 《창변》에 실린 9편이 다가 아니란다. 앞서 <사쿠라 불나방>에 소개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라는 시 말고도 1944년 매일신보에 <신익>이라는 제목의 시를 또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조선인 출신으로 가미가제 특공대에 나가 최초로 죽은 마쓰이 오장을 찬양한 노래라고 한다. 마쓰이 오장을 노래했던 서정주보다 더 앞서 발표된 친일시인 셈이다.
아무리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추천시'니 '애송시'니 하면서 친일작가들의 시를 아무런 비판없이 소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아!! 짜증나....
원치 않던 해방이여!
지겨운 조선이여!
NO천명은 그리 생각했겠지
일제 찬양으로 챙긴 이름 석 자
NO천명
NO천명
이윤옥 시인의 <사쿠라 불나방> '노천명'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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