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1843년
“껌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고양이 뇌.”
한때 이런 황당한 류의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동요로 1970년대 우리말로 번안되어 어린 여자 아이의 숨가쁜 목소리로 널리 알려지게 된 노래 ‘검은 고양이 네로’를 얼핏 들으면 ‘껌은 고양이 뇌로’로 들린다고 해서 만들어진 넌센스였을 것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듯 고양이는 우리와 친숙한 동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중세 서양인들은 마녀들이 희생자들에게 주문을 걸기 위해 고양이로 변신했다고 믿었다. 일종의 미신이긴 하지만 마녀사냥이 한창인 시절에는 고양이까지도 같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검은 고양이 네로’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최근까지도 이런 미신에 근거한 고양이 대량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어 동물보호단체들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고양이가 근거 없는 미신의 희생양인 것은 아니다. 색깔 때문인지 유독 ‘검은 고양이’만 마녀의 화신으로 믿어왔던 것이다. 물론 영국처럼 검은 고양이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말이다.
내재된 범죄심리와 공포를 추적하다
최근 우리나라도 그런 서양의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검은 고양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남아있는 것은 아무래도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특징은 단 한 순간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편소설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소설의 일반적인 5단 구성(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은 무시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절정 단계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히 단편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 서구사회에서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화신이라는 주술적 믿음이 전해지고 있다.
소설 <검은 고양이>는 서양인들의 검은 고양이에 대한 주술적 믿음을 토대로 전개된다. 검은 고양이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 내면에 잠재된 범죄심리와 폭력성을 고발한다. 인간은 본디 착하게 태어났을까? 악하게 태어났을까? 즉 성선설과 성악설에 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주인공 ‘나’는 사형집행을 하루 남겨두고 있는 사형수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자기고백처럼 보이지만 막상 결말 부분에서는 ‘나’가 과연 온전한 상태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광기와 환상에 사로잡힌 편집증적 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몹시 황당무계하고 굉장히 끔찍한 이야기다. 물론 사실임에는 틀림없는 이야기지만 너무도 끔찍하고 기괴한 일이기에 다른 사람이 믿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 자신조차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니 다른 사람이 믿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치광이 짓에 지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미친 것도 아니고 또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검은 고양이> 중에서-
‘나’의 포악한 성격은 알코올 중독에 기인한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집에서 기르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의 신)의 한쪽 눈을 도려내고 급기야 나무에 매달아 교살시킨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고 시간이 갈수록 성격은 더욱 포악해지고 망상에 시달린다. 특히 우연히 기르게 된 두 번째 검은 고양이가 애꾸눈이었다는 것과 첫 번째 검은 고양이와 달리 두 번째 검은 고양이는 가슴 전체가 흰색의 반모로 덮여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공포와 포악성을 극에 달하게 한다. 특히 두 번째 검은 고양이의 가슴에 난 흰색의 반모를 보고 교수대의 형구를 떠올렸다는 것은 ‘나’가 고백하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당시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라기보다는 사형을 앞둔 ‘나’의 공포를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나’는 두 번째 검은 고양이를 죽이려다 실수로 아내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검은 고양이 때문에 느끼는 주인공 ‘나’의 망상과 포악성, 공포는 급기야 사이코패스의 특징까지 보여주고 만다. ‘나는 아내를 죽인 그날도 편안하게 잠을 잔 것이다’라든가, 아내를 살해하고 벽에 묻은 이후 사흘째 되는 날 경찰들이 가택수색을 했을 때 ‘나’가 느끼는 감정에서 엿볼 수 있다.
경찰관들은 수색 중 나를 불러 함께 집안을 샅샅이 조사했다. 최후로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그들은 지하실로 내려갔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내 심장은 마치 천진난만하게 잠들어 있는 사람의 심장처럼 태연작약하게 뛰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중에서-
검은 고양이가 마녀의 화신이라고? 고양이도 색깔로 차별당한다
주인공 ‘나’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는 결말 부분은 독자들에게도 공포 그 자체다. 아내의 시체가 발견된 벽 속에서 두 번째 검은 고양이가 ‘빨간 입을 크게 벌리고 불꽃 같은 애꾸눈을 번뜩이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대에 끌려가는 것도 이 검은 고양이의 잔악한 계교 때문이었다고 자신의 범죄 사실을 변명하기에 이른다. 인간이 본래 선하게 태어났냐? 악하게 태어났냐?는 범죄심리학의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에드가 알렌 포가 <검은 고양이>를 통해 추적한 인간 내면에 잠재된 범죄심리와 공포를 볼 때 인간의 성정을 환경이 지배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나’로 하여금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내게 한 것은 술로 인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이었으며 이로 인해 생활은 끊임없이 나락으로 추락하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더 술에 의존하게 된다. 검은 고양이에 대한 주술적 믿음은 인간의 공포와 폭력성을 드러내주기 위한 일종의 매개체일 뿐이다.
요즘 우리 생활 주변을 점령한 길고양이가 골칫거리다. 때로는 주민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애완용으로 키우다 버리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길고양이 수는 수백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급기야 중성화 수술을 해서라도 증식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편 어둠이 깔린 밤 고양이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구사회의 전통적인 고양이에 대한 특히 검은 고양이에 대한 주술적 믿음이 전파된 탓이리라.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아내를 묻은 벽 속에서 두 번째 애꾸눈 검은 고양이가 발견되었다는 설정도 마녀를 쫓기 위해 벽 속에 고양이를 가둬뒀던 서구 사회의 오랜 풍습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또 서양에서 전해지는 미신 가운데 ‘13일의 금요일’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13명이 식사할 경우 ‘캐스터’라는 고양이 조각상을 의자에 앉혀 액운을 막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검은 고양이는 색깔이 주는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런 동물로 오해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의 고양이 관련 조사를 보면 길고양이 중 검은 색 고양이의 입양률이 가장 낮다고 한다. 동서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의 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서구사회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인간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검은 고양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피부색에서 오는 인류의 오랜 차별을 합리화하기 위해 검은 고양이에 관한 잘못된 주술적 믿음을 의도적으로 생산하고 확산시켜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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