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경향신문 2013년 10월12일/낮은 목소리로/소설가 김별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책 제목이 있지만, ‘지금 알고 있는 걸 (당연히) 그때도 알았던’ 일이 있다. 최소한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의도된, 방기된, 무책임한 욕망이 무지를 가장했을 뿐이다.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쳐 ‘공구리’를 치고 얻을 게 무엇인가. 삽질 한 번에 밥 한 술이라도 얻어먹을 욕심이 아니라면 상하좌우, 남녀노소, 이 땅에서 나고 죽고 새끼 치고 살아갈 모든 숨붙이에게 백해무익한 헛짓이었다.
캄캄한 방구석에서 나라를 근심하는 노나라 아낙처럼, 나는 홀로 분개하여 “4대강 살리기인지 뭔지를 하려거든 차라리 바벨탑을 지어라!”는 괴악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넉넉한 터를 잡아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으면 ‘그들’이 그토록 열렬히 주장하는 ‘경제 효과’가 충분히 발생할 만했다.
그러면 그 어이없는 상승의 시도가 끝내 무모했음이 밝혀진 뒤라도 흉물스러운 욕망을 증명하는 기념물로 보존가치를 얻지 않았겠는가. 탑을 건설하는데 있어 벌어질 논쟁이라 해봤자 원추형으로 할까 장방형으로 할까, 기단을 몇 층이나 올릴까 하는 것일 테니 ‘국론 분열’ 따위야 일어날 턱이 없지 않은가. 전 세계에서 전인미답의 어리석음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어 에펠탑보다 더 유명한 관광 상품이 되지는 않았겠는가. 차라리, 숫제, 오히려 바벨탑을 지었더라면 멸종위기종이 폐사되고, 문화재가 훼손되고, 농지가 감소하고, 수질이 오염되고 홍수 피해가 증가하는 일은 생겨날 리 없지 않았겠는가.
사진> 녹색연합 |
알면서도 당하는 일이라 더욱 기막혔다. 환경단체, 시민단체,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양심을 넘어서 정신이 있는 모든 이들이 반대를 하는데도 그들은 불도저를 앞세워 밀어붙였다. 그것에 깔아뭉개진 뭇 생명의 신음소리를 견디지 못한 문수 스님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소신공양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금은 정비랍시고 시멘트라도 바르고 조경이랍시고 묘목이라도 옮겨 심어서 그 정도지, 공사가 한창이던 때의 현장은 그야말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참경이었다. 깎고 파헤치고 들쑤셔놓은 자연의 환부 앞에서 죄스러워 쩔쩔 매며 신기(神氣) 없이도 예지하였다. 밀봉된 상자가 열리면 검은 새 떼가 하늘을 뒤덮고, 털어서 먼지 정도가 아닌 방사능 분진이 매캐하게 피어오르고, 세상에는 이미 알고 있었다거나 이럴 줄 몰랐다는 악다구니가 넘칠 것이라고. 사십 평생 종교와 별 상관없이 살아온 주제에 간절히 기도라도 하고 싶어졌다. 굴착기가 하루 종일 골을 파고, 덤프트럭이 밤마다 방 안에서 레이싱을 하며, 흙먼지가 방향제처럼 코끝에서 맴돌고, 카드뮴과 비소와 납으로 양념한 요리가 제공되는, (어쩌면, ‘그들’에겐 천국 같은) 지옥이 꼭 마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럼에도 결국 이렇게 되었다. 이제 와 그 쓸데없고 어이없는 일에 들어간 엄청난 비용이면 무어무어 좋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할 수 있었으리라 주워섬기는 건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나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서는 광화문우체국 앞 혜정교 터에 세발솥을 걸고 혈세를 탕진한 탐관들을 팽형(烹刑)이라도 하자고 주장하고 싶으나, 실로 그들은 명예형에 다름 아닌 그것으로 찜 쪄 죽일 만큼의 명예도 없는 인사들이다. 번연히 저질러진 담합과 비리와 포흠과 착복을 심판하는 일은 법의 몫이로되, 매년 2400억원에서 1조원까지 추산되는 유지관리비와 더불어 돈으로 셈할 수 없는 자연의 훼손에 대한 대책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구해야 마땅하다.
4대강을 살린답시고 일단 죽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도시계획과 환경공학의 전문가들은 ‘국내외의 댐(보) 폭파 기술 수준, 비용, 잔해처리, 폭파 전후의 생태계 변화’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미 지출됐기에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 비용’에 연연하기보다는 보를 전면 철거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신화 속의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을 보다 못한 신이 폭풍과 번개로 내리치면서 붕괴되었다. 막히고 고이고 왜곡된 채 가까스로 흐르는 강들이 머잖아 가해올 역습은 폭풍보다 거세고 번개보다 날카로울 것이다. 거대한 물그릇이 되어버린 강을 따라 생태계의 파괴와 수질 오염을 넘어서 문화와 역사가 파괴되는 징후가 이미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차피 무너질 바벨탑이라면 손발을 놓고 그 파탄을 기다리느니 하루바삐 폭파작전에 착수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몇 해 전 기차를 타고 낙동강 현장을 지날 때 차창 너머로 보았던 구호가 뇌리에 선연하다. ‘낙동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 ‘4대강 살리기로 녹색 선진한국 창조’, ‘4대강은 녹색 성장의 첫걸음’…. 하긴 ‘녹조라떼’도 녹색은 녹색이다. 기어이 진짜로, 이제 정말로 죽어가는 4대강을 살리는 바벨탑 폭파작전이 긴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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