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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서브리미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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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최근의 어수선한 정국에 대해 침묵과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 안듯만 못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정원(국가 정보원)을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 대상인 국정원에게 국정원 개혁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본질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일부러 본질을 흐리려고 하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회통합이다. 대통령의 사회통합능력은 여당과 야당, 정치적 지지자와 반대자간의 갈등과 반목을 조정하고 합의에 이르도록 중재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여전히 제3자적 입장에서 행여 흙탕물이라도 튀길세라 성(城) 안에 갇혀 도도한 공주 놀이만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지금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은 민생안정이라며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와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고 그것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며 야당을 비판하면서 민생 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야당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지시다. 게다가 박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이 지난 지금 지난 대선에서 밝혔던 많은 민생 공약들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작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부터 '민생'은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낸 민생 공약들은 취임 6개월만에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논란을 피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 행위가 '민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틈만 나면 외치던 박근혜 후보의 '민생'은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방 18번처럼 불러대는 '민생' 노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게끔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진흙탕 싸움만 하고 있는 정치권과 달리 국민들에게 대통령은 오늘도 '민생' 고민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정작 취임 6개월 동안 '민생' 관련 정책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그나마 있던 '민생' 관련 공약마저도 후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된 서브리미널 효과. 사진>뉴스엔 

 

유세나 토론, 연설 중 어떤 주제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민생'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박 대통령이 민생을 챙기는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TV에서 본 내용이지만 지식이라곤 대학 시절 들었던 교양이 다라 박 대통령의 어김없이 반복되는 '민생' 발언과 국민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각인이 심리학적으로 맞는 설명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의 반복되는 '민생' 발언과는 달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956년 제임스 비커리라는 미국의 광고업자가 독특한 실험결과를 발표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영화 상영 중에 '팝콘을 먹어라', '콜라를 마셔라'라는 메세지가 담긴 3,000분의 1초짜리 영상을 5분 간격으로 삽입했다. 몇 주 후 영화관의 팝콘과 콜라 매출이 각각 57.5%, 18.1%씩 증가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니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실험이 아닐 수 없었다. 서브리미널(subliminal) 효과란 하부 잠재의식에 특정 메세지를 주입하는 원하는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즉 실험자가 인간의 잠재의식을 자극하는 기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피실험자는 무의식 중에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브리미널 효과는 각종 광고 마케팅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치 광고도 예외가 아닌데 서브리미널 효과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인으로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꼽기도 한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의 TV광고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비난하는 일련의 단어들을 보여주면서 맨 마지막에 쥐가 나오는 짧은 장면 하나를 슬쩍 삽입했다. 당시 미국 대선은 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를 할 정도로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전체 득표에서는 이겼지만 미국의 독특한 선거 방식인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에서 5표 차이로 패배함으로써 낙선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부시의 공화당 측이 광고 마지막에 '쥐'를 삽입한 것은 유권자들의 잠재의식에 민주당이나 앨 고어 후보를 '쥐'로 인식하게끔 하는 대표적인 네거티브 선거운동이었다. 국내 일부 방송들이 민주당이나 야권 관련 보도를 하면서 화면에는 보도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북한 관련 화면이 노출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노린 꼼수일 것이다.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된 서브리미널 효과. 사진>뉴스엔 

 

필자가 박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 인식을 보면서 서브리미널 효과를 떠올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던 제임스 비커리의 실험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첫번째로 지적한 것은 실험군과 대조군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매일매일 다른 관객들이 찾는 영화관에서 지속적으로 3000분의 1초짜리 광고에 노출된 실험군이 유의미한 숫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게다가 팝콘이나 콜라 판매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당시 기술로는 3000분의 1초짜리 영사 기술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 제시 시간이 100분의 1초 이하면 관객들이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칠만큼 망막에 인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제임스 비커리의 서브리미널 효과 실험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났다. 하기야 발표만 있었을뿐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확인할만한 어떠한 문서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제임스 비커리의 서브리미널 효과 실험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을까.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큰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신분석학이 프로이트에 의해 체계화되어 당시 유행처럼 널리 퍼져있던 상황과 맞물려 제임스 비커리의 실험이 맹목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구체성과 논리성이 결여된 신화는 모래 위에 쌓은 성과도 같다. 파도가 미치지 않을 때까지는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작은 파도라도 모래성을 건들기 시작하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바로 신화다.

 

박 대통령의 입버릇처럼 무한반복되는 '민생'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힙겹게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이 많은 상황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공신화가 마치 우리 경제를 살릴 것 같았던 맹목적인 믿음처럼 말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민생' 발언에는 어떤 구체적인 정책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저히 힘들어 못살겠다는 서민들의 감성만 자극하고 있을 뿐이다. 모래 위에 열심히 성만 쌓고 있는 것이다. 모래성을 향해 달려오는 파도는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연못에 돌 하나 던져 생기는 파장에 불과하다. 눈에 파도라고 인식되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정치적 혼란을 적극적으로 수습하고 말뿐이 아닌 구체적인 의지와 플랜이 수반된 '민생' 정책의 수립은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국정의 최우선 순위다. 대통령은 절대 제3자도, 도도한 중세시대 공주도, 영혼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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