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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일상탈출을 갈구했던 아내의 꿈과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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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한 강/1997년

 

모 결혼정보회사가 이혼 남녀 9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 남성은 경제적 요인, 시댁·처가간 갈동, 성격·가치관의 차이, 배우자의 불건전한 생활 순으로, 여성은 경제적 요인, 배우자의 불건전한 생활, 시댁·처가간 갈등, 성격·가치관 차이 순으로(충청일보 인용) 조사됐다고 한다. 결혼도 이혼도 자유로운 시대라지만 이혼은 결국 가정이 무너지는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각자의 활동영역을 존중하며 이어나가는 부부생활에서 대화의 부족은 이 모든 이혼 이유들을 아우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죽 했으면 개그 코너의 제목이 '대화가 필요해' 였을까.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한강의 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도 주인공 부부의 판타스틱한 비극은 소통 부재의 현실을 극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얼핏 여성의 문제를 다룬 듯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부 사이의 갈등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의 화자가 남편에서 작품 중간에 아내로 바뀐 것도 소통하지 못한 현대 도시인의 부부관계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남편이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날 아내는 햇볕이 드는 베란다에서 식물로 변해 있었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하필 아내는 식물로 변해 있었을까. 

 

자유를 갈구했던 아내에게 결혼은

 

현대인들의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이라면 우울(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아내의 우울증은 '멍'으로 상징된다. 등허리에 갓난아이의 손바닥만하게 생긴 연푸른 피멍은 점차 푸르스름하게 몸 전체로 번져 결국 식물이 되어간다는 설정이다. 아내의 '멍'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가장 먼 곳, 지구 반대편까지 떠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아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지긋지긋했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인구 칠십만이 모여 산다는 거기서 천천히 말라 죽을 것 같아. 수백 수천 동 똑같은 건물에, 칸칸마다 똑같은 주방에, 똑같은 천장에, 똑같은 변기, 욕조, 베란다, 엘리베이터도 싫어. 공원도, 놀이터도, 상가도, 횡단보도도 다 싫어. -<내 여자의 열매> 중에서-

 

그런 아내와 달리 남편은 번잡한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다. 그런 아내가 도시의 일상에 익숙했던 남편과 결혼을 선택한 것은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자유에의 갈망을 결혼을 통해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아내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얼마 안되는 자금을 아파트 전세금과 결혼비용에 다 털어 부은 것도 그 죽을 놈의 사랑이 자신의 꿈을 실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서였다. 그러나 연애 시절부터 아내의 꿈을 익히 알고 있었던 남편에게 아내의 선택은 아내가 꿈꿔왔던 자유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내가 꿈꿔왔다는 자유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쉽사리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리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것을 위해 그녀가 세웠던 계획이라는 것들 역시 어린아이 같은 것,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몽상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점을 아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며, 그 깨달음은 어쩌면 나로 인한 것이었으리라는 자부심 섞인 추측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일말의 감동을 느꼈다. -<내 여자의 열매> 중에서-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식어가면서 아내의 꿈은 '멍'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뭐라고 해', '병원에 가긴 간 거야', '의사가 뭐래' 라는 남편과의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아내의 깊숙한 곳에 있는 자리잡고 있는 마음의 병은 토악질을 반복하면서 차츰 아파트 베란다 밖 세상에 대한 갈구로 표출된다. 저자는 이런 남편이 답답했던지 화자를 아내인 '나'로 돌려 아내가 앓고 있었던 마음의 병이 비롯된 원인과 아내가 꿈꿔왔던 자유의 실체에 대해 설명하기에 이른다. 

 

식물이 된 아내의 꿈과 그 한계

 

자신의 실존에 대한 회의를 느낀 아내가 행한 첫 번째 변신은 '결혼'이었다. 그러나 남편과의 소통 부재는 아내의 실존성에 대한 회의를 더 부추길 뿐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병이 단순히 결혼생활의 권태로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가장 먼 곳'에 대한 꿈을 스스로 식물로 변신함으로써 이루고 만다. 

 

어머니, 자꾸만 같은 꿈을 꾸어요. 내 키가 미루나무만큼 드높게 자라나는 꿈을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윗집 베란다를 지나, 십오 층, 십육 층을 지나 옥상 위까지 콘크리트와 철근을 뚫고 막 뻗어 올라가는 거예요. 아아, 그 생장점 끝에서 흰 애벌레 같은 꽃이 꼬물꼬물 피어나는 거예요. 터질 듯한 팽팽한 물관 가득 맑은 물을 퍼 올리며, 온 가지를 힘껏 벌리고 가슴으로 하늘을 밀어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이 집을 떠나는 거예요. 어머니, 밤마다 그 꿈을 꾸어요. -<내 여자의 열매> 중에서-

 

아내가 식물로 변신한 대목에서 독자는 이 소설이 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게 아닌가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내의 변신, 고작 정적인 식물에 그침으로써 아내가 된 여자의 삶과 꿈의 '가족', '가정'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서야 가능하다는 상징으로 해석이 가능하니 말이다. 어쩌면 남편의 자부심, 즉 아내의 꿈이 비현실적이었다는 깨달음을 합리화시켜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그런 거창한(?) 메세지보다는 고독한 현대인과 고독을 더욱 더 중증으로 만든 소통 부재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내의 탈주 욕망과 식물로의 변신으로 형상화했을 것으로 본다. 

 

저자의 소통이 부재한 현대인에 대한 시선은 식물이 된 아내를 보는 남편의 태도를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머금어 보았다. 매끈한 껍질에서는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힘주어 깨물었다. 내가 지상에서 가졌던 단 한 여자의 열매를. 그것의 첫맛은 쏘는 듯 시었으며, 혀뿌리에 남은 즙의 뒷맛은 다소 씁쓸했다.

…중략

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 아내의 꽃이 붉게 피어날까. 나는 그것을 잘 알 수 없었다. -<내 여자의 열매> 중에서-

 

분명 남편은 아내가 식물이 되어가는 줄도 모를만큼 아내에게 무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봄에도 그 자리에 아내가 다시 돋아나서 '내 아내의 열매', '내 여자의 열매'를 맛볼 수 있을까 라는 희망에서 남편 또한 아내를 떠나 살 수 없는 외로운, 고독한 현대인의 일상을 살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렇게 외로운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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