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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초경을 앞둔 소녀의 눈에 비친 여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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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리/오정희/1979년

 

나는 다시 손안의 물건들을 나무 밑에 묻고 흙을 덮었다. 손의 흙을 털고 나무 밑을 꼭꼭 밟아 다진 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며 장군의 동상을 향해 걸었다. 예순 번을 세자 동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두 계절 전 예순다섯 걸음의 거리였다. 앞으로 다시 두 계절이 지나면 쉰 걸음으로 닿을 수가 있을까. 다시 일 년이 지나면, 그리고 십 년이 지나면 단 한 걸음으로 날듯 닿을 수 있을까. -<중국인 거리> 중에서-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는 성장소설이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에서는 남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중국인 거리>는 열 두살 소녀가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성 작가의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라는 점에서 남자 아이의 성장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체적인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은밀하다' 정도? 여기서 은밀하다는 말은 관음적 호기심이나 폐쇄성이 아니다. 한 소녀가 여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자연적 역할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과 오버랩되면서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이라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열 두살 소녀인 주인공 '나'가 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혼란스런 심정은 '중국인 거리'라는 낯선 풍경으로 상징된다. 지금이야 너무도 흔한 풍경이지만 당시만 해도 차이나 타운은 이국적이면서도 신비스런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경험이 있는 어른들에게야 차이나 타운을 오가는 중국인들이 '뙤놈' 정도에 불과하지만 어린 소녀에게는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복잡한 마을인 것이다. 특히 중국인 거리를 가득 메운 야릇한 냄새는 소녀가 여자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성장통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공복감 때문일까. 산토닌을 먹었기 때문일까. 해인초 끓이는 냄새 때문일까. 햇빛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치마 밑으로 펄럭이며 기어드는 사나운 봄바람도 모두 노오랬다. …중략…. 그래도 메스꺼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해인초의 거품도, 조개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도, 해조와 뒤섞이는 석회의 냄새도 온통 노란빛의 회오리였다. -<중국인 거리> 중에서-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해인초 끓이는 냄새처럼 온통 노란빛이다. 이 낯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중국인 남자는 소녀가 성장 과정에서 거쳐야 되는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소녀와 중국인 남자는 서로 응시만 할 뿐 대화는 없다. 그들만의 밀어를 통해 소녀는 조금씩 여자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즉 소녀에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장본인이 바로 중국인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잊혀진 꿈속을 걸어가듯 노란빛의 혼미 속에서 마주친 중국인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알지 못할 슬픔이 가슴에서부터 파상을 이루며 전신을 퍼져나간다. 소녀가 중국인 남자에게서 비롯된 감정은 스스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면 속에 잠재된 여성성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중국인 거리> 중에서-

 

드디어 초경을 경험한 소녀는 비로소 여자가 되었지만 소설은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아픈 체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여성의 삶을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여성 작가에 의한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전쟁의 비극과 그 비극이 구현된 여성들의 삶은 소녀의 성장통을 더욱 아프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 비극적인 체험들은 소녀가 사회에 대한 자각의 과정이기도 하다. 

 

제분공장에 다니는 친구 치옥이, 양공주로 동거하던 흑인 병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매기언니,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나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 거의 기계적으로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어머니는 여자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어머니가 여덟 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겪는 산고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초경을 경험하는 마지막 장면은 소녀에게 성장이라는 것을 결코 밝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다산이 축복이라는 남성적 시각에 대한 반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는 단순히 여자가 된다는 의미를 넘어 여성으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인 셈이다. 

 

저자가 설정한 차이나 타운이나 중국인과 주인공 '나' 주변의 아이들도 사회로부터 소외된 부류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알을 깨는 고통으로 여자가 된다는 것은 차별적 여성성이 아닌 인간의 반쪽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바램이자 의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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