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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긴급조치 9호 위반 리빠똥 장군, 이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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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빠똥 장군/김용성/1971년

 

박정희가 1972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따 만들었다는 유신헌법은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제한하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대폭 강화해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한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힌다. 결국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무소불위의 권력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긴 했지만 최근 박근혜 전 대표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유신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을 두고 다시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는 그들의 논리를 보며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자행되었던 '역사의 후퇴'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조치로 박정희는 긴급조치를 발동함으로써 헌법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총 9차례 공포한 긴급조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암흑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악법 중 악법이었다. 그 중에서도 긴급조치 9호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예술마저 정치도구화하기에 이르렀다.

 

김용성의 소설 <리빠똥 장군>은 1971년 6월부터 8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소설로 4년간 장교로 군대생활을 한 그의 경험을 통해 군대 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권력 과잉문제를 통해 당시 현실을 비판한 풍자소설이다. 그러나 1975년 발간된 소설집 「리빠똥 장군」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 금지되면서 암울했던 유신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는 소설 속 '리빠똥 장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리빠똥 장군'의 어떤 모습이 독재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일까? 어쩌면 박정희는 '리빠똥 장군'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리빠똥 장군>이 풍자소설이라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리빠똥'은 '똥파리'를 뒤집어 프랑스말 비슷하게 부른 조롱 섞인 말이다. 연대장인 김수진 대령은 군대내에서 장군으로 통한다. '리빠똥 장군'. 김수진 대령의 이 별명에는 권력을 향한 더럽고 혐오스런 집착을 상징한다. 이런집착에도 불구하고 대령에 머물고 있는 리빠똥 장군은 자신의 연대를 폭압적이고 비안간적인 통솔 방법으로 지휘하고 있다. 리빠똥 장군은 폐쇄된 조직이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인물일 것이다. 

 

"초급 장교들은 이론이 서지도 않는 자유주의를 철조망 안에서 내세우고 있어. 내가 빨갱이 놈들의 남침 전쟁 때 3백 회 이상이나 접전을 벌이면서 신조로 삼은 것은 군대 안에서는 자유고 평등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라는 게야. 나는 제관들을 지휘해. 제관들의 목숨은 나에게 달려 있어. 그런 책임을 국가가 나에게 부여했단 말야. 대령 계급장을 조기 좋으라고 달은 겐지 아나? 나는 이 연대 안에서 좋은 의미의 군주가 될 수 있어." -<리빠똥 장군> 중에서-

 

리빠똥 장군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고릴라 정호영 중위다. 파월 장교 출신이기도 한 정중위는 어느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리빠똥 장군에게 유일하게 도전장을 내민 인물이다. 그는 리빠똥 장군이 자리를 비운 휴일에 어깨에 별 계급장을 달고 연병장을 달려 리빠똥 장군의 폭압성을 비웃었다는 이유로 정신감정까지 받게 된다. 정중위의 이런 행동이 베트남 전쟁에서 별 계급장을 달곤했던 동료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던 트라우마인지, 아니면 조직내의 폭압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들을 고발하기 위한 의도된 연극인지는 애매모호하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부대원들에게는 소소한 웃음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도 왜 별을 달고 리빠똥 장군 앞에 시위하려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그 나름대로의 우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으나 아무래도 자신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고는 했다. 그는 조직을 운영하는 리빠똥 장군, 아니 조직에 부대끼는 리빠똥 장군이라는 미친 신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한 마리의 갑충이라는 절망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리빠똥 장군> 중에서-

 

리빠똥 장군의 폭압적 지휘는 대간첩 작전에서 절정에 이른다. 훈련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한 부대원들을 향해 포사격을 감행한 것이다. 리빠똥 장군에게 도전한 의외의 인물 송중령 때문이었다. 리빠똥 장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병자로 몰려 정신병동에 수감되고 정중위의 협조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저자는 송중령의 등장을 통해 소설이 단순히 군주로 군림하는 폭압적 지도자에 대한 풍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즉 폐쇄된 사회와 폭압적 지도자는 서로의 상황을 역이용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송중령이 '제 2의 리빠똥 장군'이 되는 과정은 이런 악순환의 반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하나의 연극을 진행중인지도 모르겠다.

 

본인 김수진 대령은 광인이 되기는 싫었으며, 군대를 떠나기는 더욱 싫었다. 본인은 아직도 본인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나쁜 점이 있었다면 본인이 살아가는 방법이 틀린 것이라고 사료된다. 이 살아가는 방법, 본인이 살던 조직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택해진 것이다. 단지 수수께끼로 남는 것은 왜 본인만 파멸하는 것인가이다. 본인은 병원으로 오기 전에 이미 죽기로 작정했으므로 소지하고 온 권총으로 자살한다. -<리빠똥 장군>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계급장을 달고 자살한 리빠똥 장군은 저자의 폭압적 권력을 향한 대단한 풍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자는 유신헌법을 통해 총통적 철권통치를 행사하려던 박정희 정권의 야심과 그 결말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주인공 김수진 대령을 '리빠똥 장군'이라는 별명을 부여함으로써 당시 장군들의 세상을 교묘하게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장군은 '리빠똥 장군'이 대중 속에 들어가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을 두고볼 리 만무했을 것이다.

 

소설 <리빠똥 장군>의 '긴급조치 9호' 위반에 의한 판매 금지는 폭압적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폭압적이고 비인간적인 독재정권으로 날개를 꺾인 문화예술인들이 비단 김용성 작가 뿐이었겠는가! 그 암울한 시대가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은 청산과 보존을 구분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비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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