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서는 주인공 철호의 고난을 치통으로 형상화한다. 치통을 끝내는 방법은 앓는 이를 빼면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철호 앞에 펼쳐진 고난의 연속을 상징한다. 철호는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삶에 대한 의욕으로 발치를 결정한다. 그러나 출혈 때문에 양쪽 어금니를 동시에 빼서는 안 되는 것을 병원을 옮겨가며 양쪽 다 빼고 만다. 치통이 사라진 철호의 미래는 과연 밝은 세상의 그것이었을까. 소설은 철호가 과다출혈로 택시 안에서 죽어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치통. 그것은 통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다. 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일까 한 번 충치로 이를 앓게 되면 통증도 통증이지만 온 신경이 바짝 긴장해서 세상이 다 노랗게 보인다. 차라리 아프기만 하다면야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지만 치통은 그런 인간의 인내를 무색하게 만들고 만다. <오발탄>을 비롯한 많은 문학에서 치통이 삶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혹자는 고른 이와 건강한 치아를 오복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어릴 적부터 치아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요즘이야 주거공간으로서 아파트가 대세인지라 요즘 아이들은 경험하기 힘들겠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아이의 이가 빠지면 그 이를 지붕 위로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까치가 물어가서 새 이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까치의 ‘치’가 이를 의미하는 한자 ‘치(齒)’와 동음이라는 데서 유래한 설화가 아닐까 싶다. 한편 유럽에서는 이빨 요정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빠진 이를 베개 밑에 놓고 자면 이빨 요정이 밤에 몰래 가져가고 대신 은화를 놓고 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메소포타미아 신화에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충치가 생기는 원인을 신화적으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이야 충치의 원인을 치아 표면을 감싸고 있는 세균막인 플라크에 의해 음식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산이 치아 표면을 손상시킨다는 것쯤이야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고대인들은 이런 충치의 원인을 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충치를 치료하는 데도 적절한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비옥한 토지 위에 형성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화다.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즉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고대 수메르인의 신화로 이어진 바빌론인들의 신화를 포괄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달리 태양보다는 달의 운행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즉 하늘의 신 안(An)이 대지의 신 키(Ki)와 결합해서 대기의 신 엔릴을 낳았다. 또 엔릴은 대기의 여신 닌릴과 결혼해서 달의 신 난나를 낳게 된다. 농경사회의 특징이 그대로 신화와 결합된 것이다.
치통에 관련된 신화는 수메르인들에 이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한 바빌론인들이 새해 축제에서 암송했던 ‘에누마 엘리시’라는 창조 서사시에 등장한다. 수메르 신화의 안은 바빌론 신화에서는 아누(Anu)로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한다. 토판 형태로 발견된 ‘에누마 엘리시’는 신들의 계보와 마르둑이 죽인 티아마트의 몸에서 하늘과 땅이 창조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마르둑이 신들의 통치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빌론 신화의 천지창조 단계에서 마지막에 작은 벌레 하나가 등장하는데 이 벌레가 입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아누가 하늘을 창조한 후에 하늘은 대지를 만들고, 대지는 강을 만들고, 강은 개천을 만들고, 개천은 도랑을 만들고 그리고 도랑은 벌레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벌레가 샤마시(태양신) 앞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벌레의 눈물은 에아(아누, 물의 신이기도 하다) 앞에까지 흘러 내렸다고 한다. 벌레는 샤마시에게 무엇을 먹을 것으로 줄 것인지 물었다. 샤마시는 잘 익은 문화가 열매와 살구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벌레는 샤마시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나를 도랑에서 들어올려 사람들의 이 사이에 놓으소서. 그래서 나를 거기의 찌꺼기를 먹으며 살게 하소서. 이에 흐르는 피를 빨며 그 턱부리에 살며 찌꺼기를 먹겠나이다. 그 곳에 자리를 잡고 그 밑뿌리에 앉겠나이다.
고대 바빌론인들은 이 벌레 때문에 충치가 생긴다고 생각했단다. 샤마시는 벌레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벌레여!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
에아가 그의 팔의 힘으로 너를 짓이길 것이다.
고대 바빌론인들은 썩은 이를 치료한 후에 이 주문을 세 번에 걸쳐 다시 암송했다고 한다. 제의 의식으로서의 신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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