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국도변 단골손님이라면 옥수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늘을 찾아 앉아만 있어도 송글송글한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흐르는 한여름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찐옥수수의 유혹은 쉬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알알이 박혀있는 알갱이를 하나 둘 떼어먹는 재미가 간식거리로 넘쳐나는 요즘에도 옥수수에 손이 가는 이유는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요즘은 간단한 아침식사 대용은 물론 옥수수 수염이 다이어트에 좋다며 각종 음료로도 출시되고 옥수수를 추억의 먹거리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편 옥수수는 생명의 곡물이기도 하다. 쌀, 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인 옥수수는 사용범위가 광범위해 국제곡물시세를 주도하기도 한다. 가축사료는 물론 요즘에는 에탄올이라는 천연연료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옥수수는 기아로 허덕이는 최빈국 국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옥수수는 다분히 정치적인 곡물이기도 하다. 현정부 들어서도 남아도는 쌀재고 대신 수입 옥수수를 대북식량지원에 사용한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쌀가격 폭락 해결과 남북화해의 두 마리 토끼를 거부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신화에서 옥수수는 어떤 의미일까?
옥수수의 원산지는 남미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16세기 경에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어 ‘玉蜀黍’가 옥수수의 어원이라고 한다. 옥수수를 강냉이라 부르는 것도 중국 강남 지방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이란다.
옥수수의 원산지가 남미인만큼 아즈텍 신화에서 옥수수는 인류 최초의 먹거리로 묘사되고 있다.
세계 어느 신화에서도 신의 존재와 인류의 존재는 공생관계로 묶여있다. 흔한 말로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그 신은 바로 인간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들은 인간이 아무리 무례할지라도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들은 마련해 둔다.
아즈텍 신화에서 인간은 타모안찬이라는 곳에서 창조됐다. 신들이 인간을 창조하고 보니 걱정거리가 생겼다. 신과 달리 인간은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게 창조된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 생존하지 못하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생명체가 사라지게 된다. 지구상 동물 중 유일하게 인류에게만 이런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 먹을 식량으로 고민하던 중 케찰코아틀은 개미가 옥수수 알갱이를 물고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드디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발견한 케찰코아틀은 개미에게 어디에서 옥수수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만 가르쳐주는 대신 토나카테페틀 산으로 케찰코아틀을 인도해 주었다.
케찰코아틀이 개미를 따라 도착한 토나카테페틀 산에는 옥수수로 가득차 있었다. 케찰코아틀은 이 산을 밧줄로 묶어 인간이 있는 타모안찬으로 옮겨보려 하지만 너무 거대해서 아무리 신이라 할지라도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언의 신 옥소모코와 시팍토날 부부에게 토나카테페틀 산의 옥수수를 옮길 수 있는 방법을 묻게 되는데 나나우아친이 이 산을 깨뜨려야만 한다고 예언한다.
이때 나나우아친이 도움을 요청한 신이 바로 틀랄록이다. 나나우아친은 파랑, 하양, 노랑, 빨강의 형상을 한 틀락록의 도움으로 토나카테페틀 산을 부수고 옥수수 씨앗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다. 틀락록은 흩어진 옥수수 씨앗 중 하양, 검정, 노랑, 빨강의 옥수수 씨앗을 잡음으로써 옥수수의 신이 된다. 그래서 오늘날 옥수수 알갱이 색깔이 형형색색으로 된 것이다.
틀락록이 생명을 상징하는 데는 그의 부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틀랄록의 첫번째 부인은 꽃의 여신 소치케찰이었다. 그러나 틀락록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에 해당하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소치케찰을 빼앗기고 만다. 그래서 맞이한 두번째 부인은 물의 여신 찰치우틀리쿠에였다.
옥수수는 신이 준 생명이다. 대북쌀지원의 당위성은 차치하고라도 정부의 대북 옥수수 지원이 비난받았던 이유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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