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가 처음 만들어진 사연을 얘기하다 보면 제우스의 바람끼가 빠지지 않는다. 미로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크레타의 미노스왕이기 때문이다. 미노스왕의 어머니는 오늘날 유럽(Europe)의 어원으로 알려진 신화 속 여인 에우로페였다. 제우스는 황소로 변신해서 에우로페를 납치한 후 지금의 유럽땅을 돌아다니다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정착해 사랑을 나누고 미노스를 낳았다. 아버지의 황소로 둔갑한 엽기적인 행각 때문이었을까 미노스는 황소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운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마도 미노스에게는 여러 명의 형제가 있었나 보다.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황소 한 마리를 보내주면 제물로 황소를 바치기로 약속하고 형제들을 물리치고 크레타 섬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사람이라더니 미노스왕은 정작 왕이 되고서는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만다. 포세이돈의 복수였는지 이후 미노스왕은 해괴망측한 일을 겪게 된다.
미노스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엽기적인 부적절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하필이면 그 사랑의 대상이 포세이돈이 미노스왕에게 준 황소라니 미노스왕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자신도 암소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파시파에는 제우스처럼 자유자재로 변신할 있는 능력은 없었나보다. 고민 끝에 파시파에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발명가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다이달로스는 나무로 소를 만들어 암소 가죽을 겉에 씌운 다음 파시파에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하나 만들어준다.
다이달로스의 손재주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파이파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들어준 암소를 이용해 포세이돈 황소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고 급기야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아비를 닯든 어미를 닮든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반은 어미를 반은 아비를 닮았으니 반인반수인 미노타우로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파시파에의 부적절한 사랑은 얼마 가지않아 미노스왕에게 들키고 만다. 미노스왕은 포세이돈을 배신한 죄값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아내 파시파에를 너무도 사랑했던지 아내를 꾸짖기는커녕 미노타우로스를 숨길 방법을 궁리하다 파시파에의 부적절한 사랑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다이달로스를 불러 미노타우로스가 죽을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비밀의 장소를 하나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는 이 비밀의 장소를 탈출하는 인간이 있다면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이곳에 가두겠다고 협박했다. 이 비밀의 장소가 바로 미로(labyrinth)였다.
사랑에는 굳건한 열정과 달리 바람도 있고 부적절한 관계도 있는 모양이다.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으니 미로가 맞고 언제 달아날지 모르는 굳은 맹세가 있으니 또 미로가 맞겠다싶다.
그렇다면 미노스왕의 믿음대로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로를 탈출한 이는 진짜 없었을까? 미노스왕의 순진한 믿음은 딸에 의해서 무참하게 깨어지고 만다. 이 또한 사랑이었으니 사람사는 세상에 사랑은 없어서는 안될 공기와도 같나보다. 손으로 만질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거부며 살 수 또한 없으니 말이다.
알다시피 신화 속에서 미로를 탈출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사랑을 입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덕에 살아난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있고 미노스왕의 약속대로 이 일로 미로에 갇히게 된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로스다. 아무리 알 수 없는 게 사랑이라지만 결국 해법은 있는 법이다.
여기서 잠깐 미로를 탈출했던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부자, 연인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는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어 미로를 탈출했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은 채 태양 가까이 비행하다 그만 날개와 겨드랑이를 이어주었던 밀랍이 녹으면서 추락해서 죽고만다. 게다가 부녀지간마저 포기하고 쟁취한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의 사랑은 테세우스의 배신으로 끝이 나지만 다행히 아리아드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된다.
정말 사랑은 미로와도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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