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식 세계화의 붐을 타고 가장 큰 변신을 하고 있는 먹거리 중 하나가 막걸리다. 예로부터 농업사회였던 이 땅에서 막걸리는 농민들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박정희 정권이 쌀부족을 명분으로 한때 곡주 제조가 금지되면서 그 명맥이 끊기는가 했지만 여전히 막걸리는 서민들이 맛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한류 드라마로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막걸리는 이제 그 종류도 다양하고 고급술의 반열에까지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막걸리가 있다면 멕시코에는 뿔케(Pulque)가 있다. 용설란 수액으로 만든 술로 고대 아즈텍 시대부터 의례주로 사용되곤 했던 멕시코의 서민주가 바로 뿔케다. 용설란에 들어있는 단맛을 이용한 술로 우리에게 이 용설란은 '백년의 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100년에 한 번 개화하기 때문이 아니라 꽃이 잘 피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아즈텍 시대부터 멕시코인들의 가장 친한 벗이 되어왔던 서민주답게 뿔케에는 고대 아즈텍인들이 바라보던 세계관이 담겨있다. 즉 이 세상은 창조와 파괴의 연속이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게 뿔케다. 아즈텍인들의 이런 세계관은 요즘 '지구 종말'이라는 호사가들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아즈텍 신화에 따르면 치치미틀이라는 어둠의 신이 있다. 어둠은 파괴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어둠의 신이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여기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즉 파괴를 통한 새로운 세상의 창조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파괴의 신들은 끊임없이 창조의 신들과 투쟁한다. 어둠의 신이 존재한다면 새벽의 신과 태양의 신이 존재하는 게 신화의 세계다. 뿔케는 이 어둠의 신 치치미틀의 파괴행위로부터 생성된 창조의 산물이다.
아즈텍 신화에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곡물(옥수수)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신들이 보기에 인간이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였을 게다. 왜 그랬을까? 신의 존재는 인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그 신을 창조한 조물주(?)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즐겁게 신을 받들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에 쾌락이라는 성정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아즈텍의 신들은 인간들이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케찰코아틀은 땅과 물을 상징하는 창조의 신이다. 케찰코아틀은 인간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음료를 생각해 낸다. 케찰코아틀은 용설란의 신 마야우엘을 찾아간다. 케찰코아틀은 마야우엘과 함께 하나의 커다란 나무로 합체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파괴의 신이자 어둠의 신인 치치미틀이 이를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다. 치치미틀은 이 나무를 갈기갈기 찢은 다음 다른 파괴의 신들에게 삼켜버리도록 했다. 다행히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던 케찰코아틀은 치치미틀이 하늘로 돌아간 후 지상에 남겨진 마야우엘의 조각들을 모아 땅에 묻어주는데 훗날 땅에 묻힌 마야우엘의 뼈조각들로부터 뿔케의 원료인 용설란이 생겨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파괴와 창조의 부산물이었던 뿔케는 16세기 스페인의 침략으로 또다른 파괴와 창조의 길을 걷게 된다. 비록 아즈텍 문명은 사라졌으나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도입된 증류법은 뿔케를 다시 데킬라(Tequila)라는 세계적인 술로 거듭나게 한다. 흔히 데킬라는 칵테일로 만들어 마시기도 하지만 멕시코인들은 다른 술과 섞어 마시지 않고 소금을 묻힌 잔에 라임과 곁들여 마신다고 한다. 그렇다고 뿔케의 생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데킬라의 탄생과 맥주의 유입으로 한때 막걸리처럼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으나 멕시코인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뿔케는 여전히 멕시코 서민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술로 남아있다.
'신화와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수수 알갱이가 형형색색인 이유 (36) | 2011.07.18 |
---|---|
그림 속 비너스는 왜 조개 위에 서 있을까? (33) | 2011.07.08 |
개[犬]는 불온한 인간의 업보였다 (65) | 2011.06.15 |
헤르메스의 난잡한 사랑에서 파생된 단어들 (52) | 2011.06.13 |
신화로 본 반값 등록금과 MB의 운명 (25) | 2011.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