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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누구나 가슴에 별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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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1915~2000)의 <별>/「인문평론」(1941.2)

그리스 비극에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자주 등장한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느날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우스를 죽이고 왕비였던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테베의 왕이 된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지만 또 다시 신탁을 통해 테베의 왕 라이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였고 테베의 왕비이자 부인이었던 이오카스테는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이 충격적인 사실 앞에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이오카스테는 자결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부모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이 그리스 비극에서 착안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만든다. 즉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 이성적 사랑을 느끼면서 아버지를 질투하고 혐오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심리학자 융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황순원의 소설 <별>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황순원의 소설 <별>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질투와 혐오의 대상이 아버지에서 누이로 바뀌었을 뿐 아이의 가슴에는 늘 죽은 어머니가 자리잡고 있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거듭나기 위한 아이의 성장통을 그린 소설이 <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아이는 일찍 죽은 어머니 탓에 애정결핍을 느끼면서 죽은 어머니에 대한 강한 집착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로 하여금 또다른 집착을 유발시킨다. 죽은 어머니와 닮았다는 누이에 대한 증오가 그것이다.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동경이 누이의 외모로 인해 훼손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은 누이에 대한 질투에서 증오로까지 확대된다.

아이는 누이의 지나치게 큰 입 새로 드러난 검은 잇몸을 바라보며 누이에게서 돌아간 어머니의 그림자를 찾던 마음은 온전히 사라지고, 어머니가 누이처럼 미워서는 안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별> 중에서-

'별'은 바로 죽은 어머니다. 어릴 적 별을 보며 누구나 상상했듯이 별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이유가 없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또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가슴에 별로 자리잡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집착은 현실과의 괴리감만 넓혀줄 뿐이다. 의붓 어머니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자신을 감싸주는 누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게 되고 자신 때문에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 있는 누이를 냉정하게 외면해야만 한다. 누이가 만들어준 인형마저도 동네 골목 안 어디엔가 묻어버리고 말았다. 환상 속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성장통이라면 언젠가 아이는 가슴 속에서 죽은 어머니를 지워야만 한다. 그 실마리는 어이없게도 누이의 죽음으로부터 찾아온다. 환상 속에서 집착으로 나타났던 죽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비로소 현실에서도 존재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별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성장통은 끝이 났을까? 소설은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 중 일정 시기만을 그리고 있다. 여전히 아이는 새로 생긴 별마저 지우려 애를 쓴다. 그렇게 아이는 온전한 인격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 -<별> 중에서-

누구나 가슴에 별을 품고 산다. <별> 속 아이처럼 성장통일 수도 있고 그저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다. 별은 바라볼 때 아름답다. 늘 바라볼 수 없는 게 또 별이다. 집착한다고 해서 낮에 별이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밤 밤하늘을 무수히 수놓은 별들 중 어딘가에는 내 별이 있지 않을까? 그 별을 살포시 품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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