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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80년 광주에 갇혀사는 어느 공수부대원의 소리없는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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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1950~)<자메이카여 안녕>/「문예중앙」1986년 여름호

 

내일이면 5.18민주화운동 31주년이다.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들이 산적해 있건만 31주년을 즈음해 들려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일부 보수단체가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광주시민학살은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며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에 대해서도 훼손된 명예를 회복시키는 역사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살인정권을 이토록 옹호하고 신격화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고비고비마다 좌절된 잘못된 과거청산의 후유증일까? 뼛속까지 스며든 권위주의 망령의 부활일까? 선홍빛 선명한 5월에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눈먼 자 아니 눈을 가린 자들의 광란의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아무리 망각하려한다 해도 80년 5월 광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였고 아픔이었으며 이제는 현대사의 슬픔을 넘어 또 다른 역사 발전의 비옥한 토양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5월이 오면 당시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구름 위에 숨었던 그날의 진실은 햇빛이 비추면 세상에 드러나겠지만 5월 광주를 온몸으로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타고 기억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다. 그들이 고통의 나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화해와 용서는 어색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 80년 광주의 악몽에 고통받고 있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가해자였다. 그러나 또 분명한 것은 그들도 국가권력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바로 80년 광주에 진압군으로 들아가 무참한 살육의 당사자였던 공수부대원들이다. 김유택의 소설 <자메이카여 안녕>은 그날의 악몽에서 방황하고 있는 어느 공수부대원이 세상으로 나오고자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80년 광주와 트라우마


 

저자 김유택은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원죄의식을 갖고 있는 양심적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광주를 말하기 힘들었던 시절인 1980년대, 저자는 그날의 진실을 어느 공수부대원의 소리없는 절규로 대신 폭로하고 있다. 또 광주의 가해자로서 특전사 대원은 또다른 국가권력의 피해자로서 80년 광주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받고 있다. <자메이카여 안녕>은 광주를 잊지말자는 저자의 메세지가 공수부대원을 통해 그려짐으로써 용서와 화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배경은 군 병원이다. 억압과 폭력의 시대를 보여주는 데 이만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하사가 입실하게 될 정신병동은 광주를 딛고 출현한 살인적이고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의 광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사가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이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저자의 전작 소설들과 소설 속 하사에 대한 묘사에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또 당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때 직접적인 표현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쉽게도 그의 전작 소설들은 읽어보지 못했다. 자료를 찾아 보건데 저자는 <목부 이야기>라는 자전적 소설과 다른 여러 소설들을 통해 광주 변두리에 살면서 겪었던 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죄의식을 자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요란한 공수부대 마크를 단 얼룩무늬 복장을 했다는 점과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는 묘사를 통해 주인공 하사가 특전사 대원임을 유추할 수 있고 또 그가 염산을 마시고 정신병동에 들어오게 된 것은 광주에 투입되어 직접적으로 살인에 관여했건 아니면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트라우마(외상후 정신장애)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사를 제외하면 이 군병원 환자들은 지극히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마치 그날의 아픔과 오늘의 폭압을 모르는 것처럼...그러나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강요당하고 있는 침묵의 상징이다.  

붉은 노을이 끝나는 사막을 횡단하는 칭기즈칸의 병사들처럼, 볼가 강에 유배되어 사역하는 러시아의 죄수들처럼 그들은 묵묵히 또는 비통한 신음을 참아내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행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었다. -<자메이카여 안녕> 중에서-     

 

자메이카여 안녕  

 

왜 하필 '자메이카여 안녕'이었을까? 군병원 노래자랑에서 하사가 부른 노래의 제목이 그것이었다. 물론 노래자랑 관객으로 참석했던 하사가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해서 사회자가 무대에 오르게 했지만 정작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핼리 벨라폰테의 노래이기도 한 '자메이카여 안녕'은 신대륙에 노예로 팔려가는 흑인들의 아픔이 서려있는 현장인 자메이카가 배경으로 여행의 종착지인 그곳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하사가 굳이 이 노래를 부르려 했던 것도 광주를 잊고싶은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오른 하사가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의 옷을 쥐어뜯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 하사가 백차에 연행되는 것으로 보아 하사의 이 돌출행동은 80년 광주에 대한 폭로이자 그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던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소리없는 절규로 해석된다. 한편 저자에게는 광주를 잊지않으려는 역설이기도 하다. 연행되어 가는 하사를 바라보며 <허무집>이란 시집을 읽고 있던 우상병의 혼잣말은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고 주인공 하사가 광주현장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이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땅엔 세상을 어렵게 살려는 사람들이 꼭 있지······" -<자메이카여 안녕> 중에서-

2년전 쯤으로 기억된다. 5.18광주항쟁 당시 광주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던 전직 공수특전여단 대원에게 법원은 시민들을 사살한 충격으로 정신질환(트라우마)을 얻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국가유공자 요건 비해당결정 처부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소송 원고인 전직 공수여단 대원은 광주현장에 투입되어 시민들을 학살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다 선임들의 구타에 정신분열증세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전역 후에도 지나가는 군인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세로 고통을 받아왔다고 한다. 

광주항쟁이 있은 후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피해자였던 광주시민들도 가했자였던 공수부대원들도 그들의 아픔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가권력의 폭력이 멈추지 않는 이상.....또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날선 칼날 양쪽 끝에 선 광주시민들과 공수부대원들에게 공통의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 모두 국가권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한편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방해하는 자들처럼 광주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무도한 자들도 있다. 단순한 돌출행동이라면 모르겠지만 혹시나 암묵적으로 그들을 배후조종하는 권력이 있다면 역사의 단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망각'이라는 단어가 혼란스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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