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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는 왜 독가마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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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1950년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성인이라면 가장 친숙한 작가 중 한 명이 황순원이 아닐까 한다. <소나기>, <별>, <학>, <독 짓는 늙은이>,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 교과서에 직접 실렸거나 비중있는 수업 부교재로 다뤄진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그의 한국 문학사적 위치를 떠나 유독 교과서에 그의 작품들이 많이 실린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우선 <소나기>나 <별>에서 보듯 10대의 감수성이 녹아든 그래서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는 교육의 특성상 순수문학을 추구했던 황순원의 작품세계가 교과서와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른다. 한편 그가 추구했던 순수문학이 반공이데올로기를 의식한 자기검열의 결과라는 어느 비평가의 설명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껴가지 못한 작가의 아픔이 시대적 아픔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평안도 지주집안 출신이었다는 이력과는 사뭇 다르게 해방공간에서 그는 급진적 개혁에 반대해 월남해서는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좌익적 성향의 소설을 썼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당국에 자수해서는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고 하니 지식인 황순원, 문학인 황순원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황순원의 대표작 <독 짓는 늙은이>도 그의 이런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명장면은 역시 주인공 송영감이 독가마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부분이다. 송영감의 이 극단적 행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주제의식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송영감은 다시 일어나 가마 안쪽으로 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지금의 온기로써는 부족이라도 한 듯이. 곧 예삿사람으로는 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데까지 이르렀다.·····송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아주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나간 자기의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독 짓는 늙은이> 중에서-

어떤 이는 이 비장한 장면을 두고 장인정신의 발로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확대해석이지 싶다. 소설 속 어디에도 옹기쟁이로서의 예술적 집념을 추측할만한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영감이 옹기쟁이로서의 삶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가난 때문에 조수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유일한 희망인 아들 당손을 입양보내지 않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독 짓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삶에 대한 열정을 예술적 혼으로 연결시킨다면 가능한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이의 몸을 녹여만든 에밀레종이나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를 연상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

그렇다면 그가 독가마에 몸을 던진 장면을 어떤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야 될까? 앞서 살펴본 그의 독특한 이력과 연관지어볼 때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표현은 아니었을지 싶다. 전근대와 근대의 가치체계 속에서 아내를 빼앗은 젊은 조수와의 대결구도와 아들 당손의 입양을 두고 갈등하는 송영감의 내면에 잠재된 전통적 가치체계를 고수하려는 집착은 그가 외압에 따른 가시적 변절과 달리 양심적 변절을 거부하려 했던 그의 자화상을 투영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아내를 두고도, 아들의 입양을 두고도 패배자였던 그가 시대에 편승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려는 비장한 각오를 독가마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표피적 관찰만 한다면 현실에 대한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저항의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아내를 빼앗긴 것도 당손을 입양보낸 것도 가난의 결과였고 옹기쟁이 송영감으로서는 극복하기 힘든 벽이었을 것이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그에게 남은 선택이 죽음뿐이었고 그 죽음은 현실에 대한 최후의 저항이지 않았을까?

신화에서 신들의 행적 하나하나에서 메타포를 찾아내 듯 소설을 읽는 재미도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않나싶다. 읽는 이의 감상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건 전혀 엉뚱한 해석이건 중요치 않다. 꼭 비평가의 화려한 미사어구에 짓눌릴 필요도 없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가 바로 그 소설의 주제이고 메세지이기 때문이다. 그저그런 소설이 될 뻔했던 <독 짓는 늙은이>는 독가마 속에 기어들어가 앉은 송영감의 최후로 마무리되면서 그 죽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누구나 읽어봤을 <독 짓는 늙은이>, 당신이 생각하는 송영감 죽음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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