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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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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예루살렘 광기 예루살렘 광기/제임스 캐럴 지음/박경선 옮김/동녘 펴냄 펜타곤과 미국 패권의 비극을 다룬 《전쟁의 집》 저자 제임스 캐럴이 이번에는 인간의 광기로 얼룩진 폭력의 장소, 예루살렘을 고발한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사제로 지내면서 외려 이분법적인 종교적 사고에 물음을 던지며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던 때에 그의 마음이 동한 곳은 예루살렘으로, 1973년 초여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성지순례를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신앙에 대한 확신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예루살렘 성지에 있는 모든 교회에 있는 복제화 수점과, 예수가 처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고난의 길로 알려진 ‘십자가의 길’ 14지점이 중세 후기 그리스정교회의 관광 독점에 대응하고자 프란체스코회에서 만들어 낸 것임..
진짜 보수란 이런 것 출처>경향신문/특파원 칼럼 '누가 진정한 보수주의자인가' 뜨거운 지난 두 달이었다. 6월6일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시민 감시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행보는 그가 러시아에서 임시 피난처를 제공받으며 잦아들었다. 스노든을 성토하면서도 국가안보국 개혁을 논하던 미국 의원들은 알카에다 테러 경보령과 재외공관 잠정 폐쇄에 맞춰 3주간 휴가를 떠났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가치의 전파를 사명으로 표방하는 미국 정부는 그들 표현대로라면 ‘불투명하고, 정보기관의 감시가 더 심한’ 러시아가 본국 송환 시 박해의 우려가 있다며 스노든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준 것이 치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결정을 비난하며 내달 러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보이콧 가능성도 내비쳤다..
국가폭력을 대하는 두 작가의 같은 듯 다른 시선 임철우의 (1984년)과 이창동의 (1985년)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야당 최고위원이 테러를 당했다. 평범한 우리네 이웃처럼 보이던 한 중년의 여성은 '김대중 노무현 앞잡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집회현장에 뛰어들어 정동영 최고위원의 머리채를 잡아흔들었다. 비단 정동영 최고위원만이 아니다. 최근들어 진보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이 중년 여성에게 21세기는 여전히 '빨갱이' 소탕에 혈안이 된 반세기 전의 그 날에 불과했던 것일까? 분노보다는 연민과 안스러움이 앞서는 이유는 누가 그녀를 과거 속 악몽에 내던졌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백주대낮에 야당 지도자를 상대로 자행된 테러에 대해 일종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찰을 보면서 또다른 형태의 국가폭력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
지리산 뻐꾸기가 평생 간직한 회중시계의 비밀 문순태의 /1988년 인터넷 서점을 뒤져봐도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책이 마치 운명이었던 것마냥 어느날 책장 깊숙한 곳에서 아무렇게나 누워서 나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휴지가 밀리지도 않을만큼 묵은 먼지가 쌓인 책표지는 세정제를 동원하고서야 비로소 제 빛을 찾는다.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세월에 익을대로 익은 캐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던 깨알같은 글자들이 흑백필름 돌아가듯 하나 둘 추억을 끄집어낸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가 다가 아니라는 철없는(?) 생각에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샀던 그 책, 문순태의 는 20년을 훌쩍 넘은 시간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책 표지에 실린 작가의 젊었을 적 사진은 초로의 노인이 되어 인터넷 속에 남아있을 뿐..
판타지로 읽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꿈 신채호(1880~1936)의 /1928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씨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땅 찾기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고 있는 현실과 반대로 남편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아들임을 밝히기 위해 기나긴 법정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한 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국이 광복된 지 64년이나 지난 2009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앞서 1986년 호적을 취득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에 살았어야 할 신채호 선생 후손이 자부심 대신 사치를 얘기한 현실에 가슴 아플 뿐이다. 20세기 초 1,2차 세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