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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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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1%의 유혹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남재일 지음/천년의상상 펴냄 은 언론 및 대중문화 강의를 하며 틈틈이 글을 써온 남재일 교수가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사회 일반을 날카롭게 분석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개인, 사회, 정치, 윤리, 언어를 아우르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구체적 증상들을 진단하고, 명징한 문장과 적확한 표현으로 무심코 지나쳐왔던 일상의 문제들을 해부해나간다. 우리 삶은 어떤 거짓말과 관념들로 이루어졌는지, 개인들은 무엇에 복종하고 있는지, 지배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지 멈추어 곱씹고 되짚는다. 한 가지 상황을 바라볼 때 그것에 달라붙은 여러 기존 이미지와 거짓말을 파헤쳐 본질과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사회, 곧 행복이 오직 자본의 증식으로..
"비가 그치고 나면 하늘에 뭐가 뜨는지 아십니까?"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윤흥길(1942~)/1979년 어린 시절 어느 동네나 '광녀' 이야기 하나쯤은 있었다. 어줍잖게 왠 한자라고 한다면 소설 속 그대로 '미친년'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래도 어감 때문에 불편해 한다면 조금 순화(?)시켜 '미친 여자' 이야기로 하겠다. 어쨌든 불쑥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내용이야 동네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때로는 사실로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미친 여자' 이야기의 배경에는 늘 '비오는 날'이 깔려 있었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에도 '미친 여자' 이야기가 존재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오는 날이면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온종일 빗 속을 걸어다니면서 노래(아마도 판소리 창이었을 것이다)를 불렀는데 그 수준..
태어나 처음 만난 아버지가 불편했던 이유 봉숭아 꽃물/김민숙/1987년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마치 노래에서처럼 담장에 바짝 기대어 봉숭아꽃이 붉게 물들었다. 붉게 물든 것은 봉숭아꽃만이 아니었다.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손톱도,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꿀맛같은 단잠을 자고 있는 여동생의 손톱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동생의 손톱이 부러웠는지, 봉숭아 꽃물이 잘 물들도록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자고있는 동생을 시샘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어머니를 졸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하나에만 봉숭아 꽃잎 이긴 것을 올려놓고 이파리로 감싼 뒤 실로 칭칭 동여맸다. 동생처럼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손에는 번지지 않고 손톱에만 예쁘게 물들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것도 글자를 모를 때의 일이었지, 국..
왜 탈남자에는 무관심한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박노자/2009년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자손들이 장차 유치원 시기부터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해 ‘무한 경쟁’에 몰입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지금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우리 상황에서는, 비시장적 사회와 같은 궁극적 이상은 고사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복지 자본주의만이라도 성취하려면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에게는 왼쪽으로부터의,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계속 넣어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과 ‘왼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크게 봐서 동의어이다. ‘무한 경쟁주의’의 지옥에서 ‘왼쪽’으로의 행진만이 우리의 미래다. ..
껍데기로 가득 찬 반도, 제발 가주렴 껍데기는 가라/신동엽/1967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지난 3일 개성공단에 체류중이던 7명의 남측 관계자들이 전원 귀환하면서 2003년 착공한 지 10년만에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남쪽 입주 기업들의 경제적 손실과 개성 공단에 근무했던 북쪽 5만 여 노동자들의 생활고는 물론이거니와 남북 대결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개성 공단의 폐쇄는 한반도가 언제든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
한국인들이 어머니 손맛에 열광하는 이유 석류/최일남/2003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으스름한 저녁, 맛집을 찾아 한 번쯤 발품을 팔아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고단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현대인들에게 취미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맛있는 음식에 소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만큼 희열감에 빠져든다. 게다가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의 맛까지 경험한다면 이내 단골집으로 점찍어 두기 마련이다. 딱히 이거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뭐니뭐니 해도 맛집 여행의 백미는 '어머니 손맛'을 찾는 일일 것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맛집 삼매경에 빠져있다. 인터넷과 TV에서도 맛집을 주제로 한 포스팅이나 프로그램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인기 콘텐츠가 된 지 오래다. 맛집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의 기억이 불안한 이유 김성동(1947년~)/민들레꽃반지/2012년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낭월리 뼈잿골. 현재는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이곳 골령골(뼈잿골)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합동 위령제가 열린다.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된 민간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다. 가족이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성묘조차 할 수 없었던 유가족들은 2000년이 돼서야 그 비극의 장소가 골령골이라는 것을 알았고, 2011년에 비로소 국가인정 하에 합동 위령제를 열고 있다. 도대체 한국전쟁 당시 산내 골령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들은 가족의 죽음을 쉬쉬하고 변변한 제사조차 지내지 못했을까. 1992년 한 시사 월간지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후 남한지역에서 단일지역으로는 최대 학살지로 꼽히..
대동세상의 꿈으로 승화한 어느 노시인의 제망매가 최성각의 /1998년 “이 노래만 들으면 양심수 석방과 광주학살 진상 규명,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를 주장하며 1988년 명동성당에서 투신한 제자 조성만 열사가 떠오른다” - 강정마을 지킴이 문정현 신부가 가장 좋아한다는 이 노래, 안치환의 호소력 짙은 애달픈 목소리로 들으면 가슴 한 켠이 짠해지는 이 노래. 평생 70여 편의 시를 썼으면서도 변변한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노시인 박기동의 시 ‘부용산’이다. 부용산 오 리 길에/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의 시 ‘부용산’ 중에서- 누군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이 어딘가 처연하게 들리는 이 시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