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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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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을 앞둔 소녀의 눈에 비친 여자의 일생 중국인 거리/오정희/1979년 나는 다시 손안의 물건들을 나무 밑에 묻고 흙을 덮었다. 손의 흙을 털고 나무 밑을 꼭꼭 밟아 다진 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며 장군의 동상을 향해 걸었다. 예순 번을 세자 동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두 계절 전 예순다섯 걸음의 거리였다. 앞으로 다시 두 계절이 지나면 쉰 걸음으로 닿을 수가 있을까. 다시 일 년이 지나면, 그리고 십 년이 지나면 단 한 걸음으로 날듯 닿을 수 있을까. - 중에서- 오정희의 소설 는 성장소설이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에서는 남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는 열 두살 소녀가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성 작가의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라는 점에서 남자 아이의 성장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
아버지의 가부장적 폭력과 딸의 충격적 일탈 저녁의 게임/오정희/1979년 악보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성재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해 귀가 멀어버린 여자다. 어느 날 트럭의 경적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앞서 가다가 트럭 운전수로부터 뺨을 맞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곤 했던 아버지 때문에 오빠와 어머니가 죽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만 있을 뿐 지금은 치매에 걸려있는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다.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건강에 욕망에는 무한한 집착을 보인다. 어느 날 탈주범이 그녀의 집을 침입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잊었던 과거를 생각해 내고는 잃어버렸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저녁 습관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화투놀이, 그날 밤 그녀는 다시 시작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