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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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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만들어낸 세계, 유토피아 엘포의 유토피아 기행/엘포 지음/우현주 옮김/서해문집 펴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2009년, 이탈리아의 만화가 엘포(본명 잔카를로 아스카리)는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를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무한경쟁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1880년대 라파르그의 글은 마치 지금 이 시대를 위한 것만 같았고, 이에 영감을 얻은 그는 인류 역사상 더 나은 미래, 즉 유토피아를 꿈꿨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포의 관점은 이제까지의 유토피아 이야기와는 그 결이 다르다. 플라톤의 《국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비롯한 유토피아 소설들,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들의 ‘이상으로서의 유토피아’가 기존의 유토피아 담론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엘..
일회성 분노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경비원/뉴엔 녹 투안(Nguyen Ngoc Thuan, 1972~, 베트남) 작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입주민의 폭언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 오던 70대 경비원이 분신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다. 때마침 터져나온 '갑의 횡포'와 맞물려 그동안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은 현직에서 은퇴한 고령으로 한 명의 노동자이자 이웃이고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잠을 설치며 하루 12시간 노동한 댓가는 고작 8~90만원으로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일 년도 지나지 않은 그저 해만 넘긴 것 뿐인데 지금 경비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정..
국가는 왜 자국민, 민간인을 죽였는가 가면권력/한상훈 지음/후마니타스 펴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 강제규 감독)에는 주인공 진태(장동건)의 여자 친구 영신(이은주)이 죽창을 든 한 무리의 청년들에게 끌려가 즉결 처형 직전까지 내몰리는 장면이 나온다. 청년들에게 끌려가면서 영신은 절규한다. 쌀을 준다고 해서 가입했을 뿐 무슨 단체인지도 몰랐고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여기서 영신이 말한 단체가 바로 국민보도연맹이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관련자들의 사상 전향을 목적으로 만든 관변 단체로 회원이 30만명에 달했다. 문제는 각 지역별로 할당된 회원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좌익 관련 혐의가 없는 사람들까지 국민보도연맹원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30여만명에 달했던 국민보도연맹원은 '..
루신과 프로스트의 '길'을 통해 본 희망의 본질 고향/루신(魯迅, 1881~1936, 중국)/1921년 고향의 이미지는 흡사 어머니를 떠올린다. 생명의 근원이면서 끝없는 회귀 본능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고향은 늘 그립고 애틋하다. 오죽했으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나 호마망북(胡馬望北)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면 제 살던 언덕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고, 호나라의 말도 호나라에서 북풍이 불어올 때마다 그리움에 북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물며 미물인 여우나 말도 이럴진대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평생을 외지에 떠돌다가도 나이가 들고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것이 인지상정이다. 타향에서 화려한 사후를 맞느니 고향 땅 어딘가에 한 줌의 흙이 되고픈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한편 누구든 태어난 곳이 따로 있지만 누구나 ..
도대체 아내가 뭘 훔쳤길래 가난한 사람들/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1802~1885) 숙자와 숙희 자매, 동수와 동준 형제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숙자와 숙희 자매 어머니는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라도 있는 숙자, 숙희 자매와 달리 동수와 동준 형제는 부모 모두 집을 나가버렸고 형인 동수는 본드를 흡입하는 등 비행 청소년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명희의 등장은 전혀 미래가 없을 것 같던 아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된다. 한편 명희 또한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과거를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명희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의 끈을 다시 부여잡는다. 명희 또한 아이들을 돌보면서..
XX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정상일까 다움/오 은/창작과 비평 2013년 가을호 파란색과 친숙해져야 해/바퀴 달린 것을 좋아해야 해/씩씩하되 씩씩거리면 안돼/친구를 먼저 때리면 안돼/대신, 맞으면 두배로 갚아줘야 해 인사를 잘해야 해/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받아쓰기는 백점 맞아야 해/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돼/밤에 혼자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해/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해/대신, 집안 부끄러운 일은 쓰면 안돼/거짓말은 하면 안돼 꿈을 가져야 해/높고 멀되 아득하면 안돼/죽을 때까지 내 비밀을 지켜줘야 해/대신, 네 비밀도 하나 말해줘야 해 한국 팀을 응원해야 해/영어는 잘해야 해/사사건건 따지고 들면 안돼/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도 돼/대신, 정말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야만 해/가족을 지켜야 해 학점을 잘 받아야 해/꿈을 잊으면 안돼/대신..
30년대 흉가에 투영된 21세기 싱글맘의 현실 흉가/최정희/1937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아빠나 엄마 중 한 명과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구 즉 싱글맘, 싱글대디 가구가 159만에 이른다고 한다. 10년 전에 비해 47만 가구가 늘어난 수치로 이 중 싱글맘 비중이 78%라고 하니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가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여기에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직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버거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싱글맘을 위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싱글맘이 느끼는 가장 큰 사회적 장벽은 무엇일까. 싱글대디..
현대를 사는 고독한 군상들의 자화상 최인석의 /1990년 한때 우리나라는 가족계획의 성공 국가로 꼽혀왔다. 좁은 국토와 제한된 부족한 지하자원으로 인해 가족계획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가족계획 정책은 현재 국가 경쟁력 약화라는 아이러니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되는 싱글족의 유형도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의미하는 DINK족(Double Income No Kids)에서 '누에고치'라는 말에서 유래한 코쿤족(Cocoon, 외부로 나가는 대신 가상현실에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싱글족)까지 생겨났다. 최근에는 '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의 줄임말로 일정한 직업 없이 필요할 때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