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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6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의 기억이 불안한 이유 (15)

김성동(1947년~)/민들레꽃반지/2012년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낭월리 뼈잿골.

 

현재는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이곳 골령골(뼈잿골)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합동 위령제가 열린다.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된 민간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다. 가족이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성묘조차 할 수 없었던 유가족들은 2000년이 돼서야 그 비극의 장소가 골령골이라는 것을 알았고, 2011년에 비로소 국가인정 하에 합동 위령제를 열고 있다. 도대체 한국전쟁 당시 산내 골령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들은 가족의 죽음을 쉬쉬하고 변변한 제사조차 지내지 못했을까.

 

1992년 한 시사 월간지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후 남한지역에서 단일지역으로는 최대 학살지로 꼽히는 곳이다. 일명 '산내 집단학살 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이 끔찍한 민간인 학살은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제주 4.3사건 관련자를 포함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 충남북 일원의 보도연맹원 1,800여 명이 CIC(육군 특무부대)와 헌병대,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돼 산내 골령골에 암매장된 사건을 말한다.

 

어디 산내뿐이었겠는가. 한국전쟁을 전후해 희생된 보도연맹원만 2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이 낳은 비극의 역사가 바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발굴 작업으로 비극의 현장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지만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또 하나의 비극임을 반증해 준다. 

 

김성동의 소설 <민들레꽃반지>는  망백의 노인과 예순을 훌쩍 넘긴 아들 김씨가 어느날 '○○ 1234부대'에서 날아온 「6.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접수」라는 편지 한 통을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이야기이고 그 과거의 기억은 오롯이 현재를 지배하면서 우리사회의 왜곡된 소통구조를 고발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고장난 수도관을 둘러싼 보일러쟁이와 김씨와의 실갱이는 저자의 메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소구로 보인다. 

 

남한지역내 최대 학살지라는 산내 뼈잿골은 주인공 김씨의 아버지이자 '한전희'라는 이름의 망백 노인의 남편이 묻혀있는 곳이다. 아무리 컴퓨터 오작동이라고 생각하려해도 연좌제라는 말도 안되는 악법이 없어진 지 삼십년이 되었지만 속으로는 더욱더 완강하게 관리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머니 앞으로 온 「6.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접수」라는 편지를 김씨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망백의 노인 어머니의 정체는 이 편지 한 장 때문에 독자들에게 폭로되고 만다.

 

6.25가 일어나기 해 반 전에 예비검속으로 잡혔다가 6.25가 터지던 해 7월 첫때쯤 학상당한 남편을 둔 아내한데. 그것도 그냥 여느 아내가 아니라 남조선로동당 외곽단체인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면당 위원장을 지내며 '공산세상을 이루고자 견결히 투쟁해온 사람'한테. 이른바 국가보안법에 걸려 6년 징역을 살았고 더하여 한차례 집행유예 전과까지 있는 사람한테. 이른바 '국보 전과'까지 있는 사람한테. -<민들레꽃반지> 중에서-

 

주인공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어머니, 망백의 노인은 '진빨'이다. 소설은 1969년 대검찰청 수사국에서 비매품으로 나온 『좌익사건실록』이라는 책에 나와있는 어머니 한전희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공개한다. 어머니는 모르고 있지만 김씨는 그 책을 본 적이 있는 어머니 관련 대목의 제목은 「한전희 북괴 고무찬양 사건」으로 어머니 이름이 나오는 꼭지는 한군데 더 있다. 제목은「여맹원 북괴 찬양고무 사건」.

 

그러나 현재 한전희, 어머니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망백의 노인에 불과하다. 문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초례청에 선 새각시처럼 정성껏 단장을 하고는 「조선여자청년동맹가」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조선공산당 만서이!", "위대헌 지도자 박흔옝 동지 만서이!", "친일 친팟쑈 및 민족반역자럴 제외헌 조선민주주의 림시증부 수립 쵝진 만서이!"를 외치고 있으니 혹여 보일러쟁이가 알아들을까봐 김씨는 안절부절이다.

 

수도관 어디가 얼었는지 눈자라기(아직 꼿꼿이 앉지 못하는 어린아이) 오줌발 떨어지는 것 마냥 졸졸졸 나오는 수돗물은 냉랭한 남북관계일 수도 있고 소통부재의 우리사회에 대한 저자의 시선일 수도 있다. 거기에 치매 걸린 어머니의 황당한 노래와 구호는 우리사회의 열린 정도를 가늠해 줄 척도인지도 모른다. 계곡물을 집안으로 흐르게 해주는 수도 파이프를 두고 보일러쟁이와 김씨가 벌이는 논쟁은 남북관계와 이념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다. 지금 당장 물이 콸콸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수도 파이프의 언 부분만 찾아내 잘라버리면 된다. 그러나 날이 풀리면 그 수도 파이프를 연결하는 데 만만찮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냉각된 남북관계와 소통부재의 현실은 최근 '종북논란'이라는 구시대적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실체도 불분명한 '종북'의 개념과 도대체 어떻게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근거도 증거도 없이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사상검증의 잣대를 무자비하게 들이대고 있는 게 요즘이다.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그저 민주주의를 빛나게 하는 겉치레일 뿐이다. 21세기 한국판 마녀사냥이고 매카시즘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면, 어머니는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지만 왜 그토록 위험천만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또 형무소에서도 영치시키라는 것을 단식투쟁 끝에 얻어냈다는, 아버지와의 사랑의 징표였던 민들레꽃반지를 제삿날 쓰일 제기라도 닦는 것처럼 닦고 또 닦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 가운데 가장 빛났던 순간 또는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데, 어머니 또한 많은 사람들 손뼉소리를 받으며 연설을 하고 노래를 가르치고 또 정의로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아름다운 사람들 뒷바라지를 하는 틈틈새새로 『자본주의의 한계『레닌주의의 기초』같은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던 세월로 돌아간 것인가, 아니면 숫제 그 시절을 살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민들레꽃반지> 중에서-

 

어쨌든 김씨는 보일러쟁이와 멀어지려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치매 노인의 가장 행복했던 날의 기억마저도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지켜봐야 하는 것은 오늘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는 비상식과 구태가 마치 상식이고 정의인양 행세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죽음에 직면한 망백의 노인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종북주의자'라는 비수를 꽂을만큼 요즘 우리사회는 비정하고 잔인한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을 추억할 자유도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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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1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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