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쥐뿔도 없는 그대들, 기죽지 마라

반응형

김금희(1979~) <센티멘털도 하루이틀>/2012

 

중년이 되어 되돌아본 20대의 기억은 늘 회한으로 가득하다. 20대에 꾸었던 꿈이 도달한 자리가 40대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꿈을 고스란히 담고 살아가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꿈과는 저만치 멀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꿈이란 게 현실에 이상을 보태 뿌린 씨앗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영글기에는 토양이 너무도 척박하고 햇빛은 늘상 구름 뒤에 숨어있고 비는 과도한 폭풍우만 동반한다. 특히 소위 IMF 세대라 불리고 청년실업의 원조격인 40대 중년들에게 20대의 방황은 결코 남 일 같지 않은 동지애적 센티멘털을 자극한다.

 

김금희의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2012년을 사는 20대의 이야기다. 입술보다는 엄지의 진화가 더 빠르고, 이슬보다는 아메리카노를 더 즐기고, 현실보다는 가상세계를 더 신뢰하는 그들. 기성세대는 그런 그들을 보고 보수화되었다고도 하고 부모세대의 피와 땀으로 쾌락을 즐긴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어느 순간에 고정되어 있는 듯 그들의 감성을 좀체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저자는 기성세대와 절대 교집합이 없을 것 같은 그런 20대의 감성을 센티멘털로 대신했다. ‘센티멘털 20대가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기도 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또 화석과도 같은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소리없는 절규이기도 하다.

 

 

소설은 독자에게 과제부터 덥석 안기고 만다. <센티멘털도 하루이틀>화가 조장은의 세번째 개인전 제목이라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 때문이다.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인 것 그저 제목만 차용했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화가 조장은의 세번째 개인전 센터멘털도 하루이틀을 꼭 봐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떨어낼 수가 없다. 어쨌든 주어진 과제이기에 어렵사리 찾은 조장은의 세번째 개인전 센티멘털도 하루이틀의 사진 몇 장. 소설의 감성적인 분위기와 화가의 유쾌한 그림일기는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2012년 저자가 바라는 20, 청춘의 의미는 2009년 그림일기 속에 있는 것이다.

 

주인공 의 센티멘털은 삼수생이 되고 애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그나저나 삼수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김과 홍에게 어떻게 알리나. 스물한살에 애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나는 마당 평상에 걸터 앉았다. 수능을 망친 표는 결과도 안 보고 외국으로 떠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나는 말리지 않았고 임신했다는 말도 안 꺼냈다. 표는 매사에 진지해서 오히려 상황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내가 널 쿨하게 놔주마, 이렇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중에서-

 

여느 20대의 얘기일 수 있지만 여느 20대도 주인공 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힘들 듯 하다. 사회의 시선, 부모의 욕심 그렇게 20대는 성인이라는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애어른을 강요받는다. 보다 큰 현실적인 문제는 삼수생 미혼모가 살아가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유일 것이다. 묵직해진 아랫배 때문에 레깅스나 원피스 대신 후드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 는 그렇게 집과 병원을 오가며 부모에게 이 사실들을 털어놓을 기회만 엿보고 있다.

 

’, 또는 20대의 센터멘털은 다름아닌 방황이다. 내 삶의 방식보다는 관습과 사회적 통념에 나를 맡겨야만 하는 현실. 그래서 나는 수학강사가 싫다며 공사장 인부, 농산물 직판장 배달원, 삼겹살집 아르바이트 등 신성한 육체노동을 하며 축구심판 3급 자격증을 딴 김(양아버지)이 홍(엄마)의 핀잔에 다시 학원강사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고 만다.

 

난 좀 실망했다. 모험의 세계로 떠난 칼잡이가 조용히 돌아와 푸줏간에서 고기 써는 걸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내 미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대학부터 붙어야겠지만.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중에서-

 

소설 속 또 하나의 20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의 재수학원 동기인 . ‘는 인터넷과 트위터에 빠져있다. ‘문상맨이라는 오프라인에서의 별명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보다 서정적인 이름을 온라인 닉네임으로 가지고 있는 는 트위터에서 만난 남자의 문상을 가지만 결코 알은체는 하지 않는다. ‘는 몰래 사람들 얼굴을 보러 오는 것을  별이 거기 있고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보고 싶어한다는 알 수 없는 말로 설명한다. 온라인에서는 슬픔이 사라지냐는 의 질문에 대한 의 대답에서는 이 시대 20대의 고민과 방황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유해야 할 것도, 고쳐주어야 할 것도, 철마다 갈아주어야 하는 것도, 심지어 소리도, 냄새도, 빛도, 어둠도, 내 몸도, 죽음도 없다. 마는 그래도 우리의 흔적들은 그곳에 남을 거라고 했다. 그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이고 그렇기에 무한한 인터넷을 떠돌며 영원이 남을 수 있다.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중에서-

 

이제 방황은 끝내야 한다. 그간의 날들과 결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좋아질 건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감상적으로 살 수는 없다. 제 나이 때마다 할 일이 있는데 감상적으로 굴지 마라, 센티멘털도 하루이틀이지.”라는 김의 말이 닳고 닳은 냉소이긴 하지만 20대에게는 20대만이 꿀 수 있는 꿈이 있다. 20대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분명 있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20대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로 충분한 나이다.   

 

대학생들이 여당의 모 유력 대선후보 사무실 앞에서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다 직원들에게 끌려나오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공공기관의 청년고용 3%도 다 눈가리고 아웅이었다는 보도도 있다. 선거 때는 모든 게 다 잘 될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그들의 변죽은 화장실 들어갔다 나올 때 딱 그 짝이다. 아니 원래 그런 부류의 동물들이다. 그 놈의 눈높이는 어디까지 낮춰야 하나. 낮추다 낮추다 이제는 땅 속에서 하늘을 보게 생겼는데. 그러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쥐뿔도 없는 것들의 허세로 치부하기 일쑤다.

 

저자가 조장은의 톡톡 튀는 그림일기를 제목으로 차용한 데는 이 시대 20, 청춘에게 보내는 이런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변변한 스펙도, 든든한 배경도 그렇다고 기성세대의 작은 위안조차도 받지 못하는 쥐뿔도 없는 그대들, 기죽지 마라.

 

사진>네오룩(http://www.neolook.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