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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사상(和諍思想)은 모든 반목과 대결의 논쟁[諍]을 화합[和]으로 바꾼다는 한국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사상이다. 신라 승려 원광이나 자장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지만 통일신라의 원효대사가 집대성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그의 가장 대중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대승기신론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화쟁사상이 제기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쟁諍'의 한자어에서도 보듯 '말'에서 비롯된 대립이다. 즉 각각의 이론에 대한 아집과 배척이 횡횡한 현실에 대한 해결의 방법으로 제시된 사상이 바로 '화쟁사상'이다. 이런 반목과 대립은 원효가 살았던 시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사는 곳이라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원효는 화쟁으로 가는 방법으로 언어의 이중적 속성, 긍정과 부정의 정확한 이해를 꼽았다. 한편 언어의 이중적 속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불경의 폭넓은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여기 화쟁이 필요한 불편한 단어가 있다.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실현된 이후 정치적으로 가장 유행하는 말 중에 하나가 '통합'이니 '화합'이니 하는 세대간, 계층간, 이념간 대립의 골을 메우자는 주장이다. 수십년 간 지속된 군사정권에서는 쓰지 않던 말이 갑자기 정권교체 이후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말에서 역사 인식의 불편한 진실이 느껴지는 것은 역사적 전환점마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아픈 과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역사의 주역들이나 그 역사에 부역했던 정치인이나 언론이 그들의 기득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그럴 듯하게 대중들을 홀릴 수 있는 말이 바로 '통합', '화합'인 것이다.

 

얼핏 들으면 원효의 '화쟁사상'과 비슷한 의미인 것 같지만 사실 '통합'은 분열을 전제로 한 말이다. 즉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정치생명 연장의 명분으로 '통합'을 외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합'이란 잘못된 것, 왜곡된 것, 청산해야 될 것 등을 제대로 평가한 후에 성립 가능한 단어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볼 때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살 때가 많다. 그가 '사회통합'을 말할 때마다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효가 말한 '쟁諍'의 시초는 그의 말에서 비롯된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다수 대중들이 생각하는 가장 보편적인 역사를 그만의 아집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통합'이란 잘못된 역사의 피해자들이 용서할 수 있거나 가해자의 반성이 전제된 올바른 역사인식 위에서 가능한 말이다.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긴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생략해서는 안되는 통과의례여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게 문제였다.

 

그가 '화和'의 일환으로 택한 방법은 기자회견이었다.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그동안 완강히 거부해 오던 자신만의 역사인식에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가 잘못된 과거의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당사자가 아버지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역사인식을 거부해 왔다. 가장 상식 편에 서야 할 대통령을 꿈꾸는 그에게 이런 역사인식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역풍을 맞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문제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오후에 부산에 내려가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얘기하자고 했다. 마치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된 것 아니냐' 식이다. 게다가 학생당원들과 함께 요즘 유행하는 싸이의 말춤을 추는 것으로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해결된 모양 떠들썩한 한 때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 진정성을 가지고 바라보겠는가.

 

박근혜 후보가 살고 있는 오늘은 하루만 지나도 과거가 된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야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늘도 과거가 되고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미래도 어느 순간에는 또 과거가 된다. 잘못된 과거, 역사 청산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원효가 말한 '쟁諍'의 '화和'를 오늘 우리 현실에 비춰 재해석하자면 '쟁諍'의 근원인 잘못된 과거와 그 역사를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기초 위에서 '화和'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타고 무한 반복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2세기 경 인도의 고승 마명대사가 대승불교의 근본 교리를 이론과 실천의 두 측면에서 서술한 책 <대승기신론>의 주석서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승기신론소>는 마명대사의 불교 교리를 가장 완벽하고 독창적으로 해석한 해설서라고 할 수 있겠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를 통해 당시 인도와 동아시아는 물론 통일신라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불교의 사상논쟁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사상이라는 진속일여眞俗一如를 주장했다. 원효 하면 생각나는 해골에 고인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에피소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이 바로 <대승기신론소>이다. 천년이 지난 지금도 원효의 사상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인 이유로 나타난 분열과 반목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지사지에 기반한 독선과 아집의 타파를 통한 '화쟁和諍'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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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