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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독서의 해에 되새기는 문고본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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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지정하기는 했지만 독서 환경은 그리 나아져 보이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무한경쟁의 입시제도로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고 성인들은 삶 자체가 전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학교나 가정에서 독서교육이 활성화되고는 있다지만 순전히 입시를 위한 도구일뿐 인성교육 길라잡이로서의 독서라고 할 수 없는 처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종이책의 위기라고도 하는 요즘 비록 오래된 글이긴 하지만 프랑스 서점 견학을 통해 얻은 독서 대중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문고본의 부활이 시대를 뛰어넘은 혜안으로 보인다. 흔히 문고본을 선진국형 독서 형태라고 하는 것도 장소와 시간을 구애받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문고본만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1994년 8월29일자 <도서신문>에 게재되었던 것을 범우사에서 매월 발행하는 <책과 인생> 5월호에 【출판비평 다시 읽기】코너에 '문고본을 아끼는 프랑스 서점'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글의 저자는 출판 평론가 이중한이다. 

 

지난주 파리의 몇 서점을 둘러봤다. 대형서점이건 소형서점이 건간에 여전히 서가 벽면의 4분의 1쯤을 문고판 시리즈가 차지하고 있었다. 여전하다고 하는 것은 미국과 달리 프랑스엔 아직 뉴미디어라는 새바람 속에 대중독서가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뜻이다. 

 

미국은 최근 몇 년 새 대중용 페이퍼백 판매량이 해마다 20% 포인트씩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컴퓨터 영상물이 늘고 있고, 오디오북도 제법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각종 생활정보용 서적도 빠르게 줄고 있다. 컴퓨터 DB시스템 속에서 인쇄된 책으로 정보를 찾는다는 일은 거의 무의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용, 오락용 대중소설 페이퍼백도 이제는 컴퓨터와의 싸움에서 그 승부가 난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상생활 방법으로서의 책읽기가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 점에서 책읽기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이 내가 받은 인상이다. 대형서점 한 벽면에 '바캉스 소설들'이라는 팻말까지 건재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록만 변하고 디자인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발견할 수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고전목록들도 재편성되고 있었고, 정말 재미있는 내용을 문고 이름의 명예를 걸고 보장한다는 질감을 새로 만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갈리마르사가 이번 여름 2백17권째를 낸 시각적 자료중심의 백과사전적 문고판 시리즈는 그것이 문고판이라기보다는 당당한 한권의 단행본으로서도 큰 업적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책값도 문고판 책값은 아니었다. 권당 80프랑이니까 우리 돈으로 1만 2천원쯤 된다.

 

그러니까 뉴미디어 속에서의 문고판은 그 나름대로 질적 책임을 새롭게 하며 그 자신이 독립된 또 하나의 출판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기준은 아동도서의 문고판들에서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최근 우리에게서 '범우문고'가 새롭게 문고판 시장에 도전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도전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만큼 또 한편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문고본을 전시해줄 서점이나 또는 어떤 판매대마저 우리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째 우물우물 문고본이 사라진 이유도 그 태반은 서점이 문고본을 홀대했기 때문이다. 값이 싼 것이 문고본이고, 때문에 문고본 팔기는 돈도 되지 않으면서 짐만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문고본을 꼭 읽어야 한다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가치라면, 국민이 사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문고판이라는 것을, 경제적 이유만으로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프랑스 서점에 문고본이 살아있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문고본을 아끼는 것이다.

 

이 글이 쓰여질 당시 필자는 군대에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며, 복학하면 컴퓨터 쯤은 해야겠다 싶어 컴퓨터 좀 한다는 쫄다구(?) 들들 볶아 독수리가 자판 위를 폴짝폴짝 거리듯 새로운 문화에 호기심이 한참 충만해 있었다. 그 때 배운 것이 '도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해 전역하고 반 년 정도 쉬고 복학 하니 학교에는 컴퓨터실이라는 것도 생기고 할 일 없이 캠퍼스를 배회하는 복학생들과 달리 후배들은 컴퓨터실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도스'라는 것은 '윈도우'라는 새로운 컴퓨터 환경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천리안'이니 '나우누리'니 하는 통신 환경에 막 재미를 붙여가는데 인터넷이라는 그야말로 변혁에 가까운 세기의 문명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으니 어눌한 복학생에게는 대략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전문가들이야 전자책의 출현과 대중화를 예견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미래였다. 어쨌든 전자책은 도서시장의 미래를 주도할 우량주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종이책은 전자책에서 느낄 수 없는 활자의 따뜻함이 있고 열독성의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자책의 활발한 보급에 흔들리고 있는 종이책 시장의 대안으로 문고본을 제시한 저자의 예지력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자가 또한 문고본을 즐겨찾기 때문이다. 문고본은 전자책의 간편한 휴대성과 방대한 저장성에 가장 근접해 있는 종이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만 해도 문고본은 서점가의 블루칩이었다. 저자의 지적대로 값이 저렴해 돈이 되지 않은 문고본은 1980년대 이후 차츰 서점의 애물단지로 전락해가고 말았다. 필자도 일반 종이책은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지만 문고본만은 서점을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집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를 때면 초라한 문고본 매대에 실망하기 일쑤다. 그 넓디넒은 대형서점에 문고본은 고작 통로 한 켠 책장 하나가 다다. 그런 곳에 있어봐야 몇 권의 문고본이 꽂혀 있겠는가. 다행인 것은 최근에 문고본 시장이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니 비로소 문고본의 가치를 알아본 모양이다. 전자책의 보급이 아니었다면 아예 설 자리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는 점이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책을 휴대하기 위해 거추장스런 가방이 필요없는 문고본은 전자책만큼이나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종이책으로서 문고본만의 매력이 있다. 이왕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니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흔들리는 종이책 시장의 구세주가 되길 기대해 본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문고본은 일제강점기 박문문고(博文文庫)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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