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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드리는 제안, 대한민국을 책 읽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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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책 읽는 나라로”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은 그래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가을은 또 떠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정처없이 걷고 싶은 계절이 바로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진짜 얼굴이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하고 노래하는 시인은 있지만 '가을에는 책을 읽게 하소서' 라고 노래 부르는 시인은 없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책을 가장 읽지 않는 계절이라는 모순은 이해 차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소통인지도 모른다. 어느 신문을 보니 출퇴근 시간에 가장 호감가는 여자는 '자리를 양보하는 여자'란다. 그렇다면 남자는 어떤 모습이 이성으로 하여금 호감을 불러일으킬까. '책 읽는 남자' 라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여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고, 책 읽는 남자가 그리 흔한 풍경은 아니라는 말일 게다.

 

한가로운 가을 날 오후 공원 잔디밭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보는 사진, 옥토끼 연인이 산다는 달나라에서나 볼성싶은 풍경, 어쨌든 가끔씩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 어색한(?) 풍경을 보며 낭만이란 술 한 잔의 여유와는 또 다른 뭔가가 있을 성 싶을 때가 있다. 지극한 자연스러움이 이국적인 풍경의 하나로 기억 속에 박제된 현실,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왠지 맞지않은 옷을 억지로 팔다리에 끼워넣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현실, 그렇게 하나의 행동이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손발이 오글거리는 경험이 있고서야 가능한지도 모를 일이다.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훔치며 정처없이 걷는 나그네의 봇짐에 책 한 권이 비집고 들어가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보다.  

 

형형색색의 변신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가을, '독서의 계절'이 무색해지는 이 가을은 또 하나의 복병이 찾아왔으니 대통령 선거다. 투표야 겨울에 한다지만 가을을 오롯이 만끽해야만 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일이다. 저마다 머슴이 되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머슴 한 번 제대로 부려보겠다고 눈을 부라린다. 그러나 '이성의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이성적인 선택은 가뭄에 콩나듯 동물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가을은 그렇게 양자의 치열한 눈치 싸움을 견뎌내며 이성과 감성이 교차한 혼미한 정신만을 남겨둔 채로 시나브로 저물어 갈 것이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는 게 인간 이성의 불편한 진실이다.

 

말, 말, 말…. 올 가을은 그렇게 '말[言]들의 향연'이 대중을 여름의 뜨거운 열기  한복판으로 다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눈을 크게 치켜 떠보고 귀를 쫑긋하게 세워보지만 겨울이 채 다 지나기도 전에 가슴을 치며 후회하곤 하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여태 그래 왔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면서도 지독한 중독성이 있어 자칫 한눈을 팔다보면 가상과 현실의 애매한 지점에서 갈피를 못잡고 헤매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머슴을 부려보겠다는 속는 자의 비애다. 머슴은 힘만 세다고 해서 요령만 있다고 해서 덥석 붙잡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속는 자의 다양함만큼이나 두루두루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당신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이리 사설이 길어 할 것이다. 별 거 없다. 머슴을 뽑는 기준에 이것 하나도 추가했으면 하는데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으니 그저 나라도 나서봐야지 하는 것 뿐이다. 게이트 키핑(Gate-keeping)이라고 하던가? 우리 언론에게는 뉴스가치로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던가보다. 지난 9월22일에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작가회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33개 독서 관련 시민사회단체가 이번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주요 정당 및 후보자들에게 '책 읽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확고한 독서 관련 정책 공약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단체들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책을 멀리하고 책을 우습게 아는 '위기의 사회'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정부가 2012년, 올해를 '독서의 해'로 지정했지만 국민이 체감할만큼 책 읽는 문화가 진흥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도 어렵다며 책을 읽는 시민, 성찰하는 시민, 비판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지식 접근의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 돈이 없더라도 원한다면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 정보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시민 각자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창출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다며 대선 후보들에게 10대 제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그리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그들이 얼마나 이 제안에 귀를 기울여줄지는 모르겠지만 머슴이 되고자 했으니 단 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하는 바램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에 책과 독서와 도서관 문화의 진흥을 절감하고 있는 우리들 시민사회 제 단체는 “대한민국을 책 읽는 나라(a Nation of Reader)로”, “책으로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민운동을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1. 대통령 후보자는 “책 읽는 나라” 공약을 제시해야 합니다.

 

201212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주요 정당 및 후보자들은 “대한민국을 책 읽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확고한 공약을 내놓아야 합니다. 책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민(저자, 독자, 교사, 학부모, 도서관인, 출판서점인, 시민운동가, 독서활동가)의 눈으로 지지 후보를 가릴 것입니다.

 

2. 정부는 독서정책의 기반부터 다져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독서권(책 읽을 권리)을 적극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고, 예산을 투자해야 합니다. 정부 중앙부처에 독서정책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사회 각 분야별로 독서 생활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해야 합니다.

 

3. 지자체의 독서진흥 시책을 독려해야 합니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책읽는 도시’ 정책을 열심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의 민주적, 자치적 역량의 성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정부는 광역 시·도와 기초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독서문화 및 도서관 진흥정책을 펼치도록 유도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4. 공공도서관이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되도록 육성해야 합니다.

 

정부는 문화국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확고한 국가 도서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도서관은 지식기반사회, 정보사회, 창조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문화인프라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지식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면서 높은 공익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안전망이며, 지역공동체와 자치의 중심센터이고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정보-문화-교육의 중심이며 ‘시민의 대학’이자 ‘창조와 생산의 기지’입니다. 지역의 공공도서관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도서관의 공공서비스를 감당할 인력을 법적 기준에 맞게 배치해야 합니다

 

5. 미래 세대가 책과 학교도서관에서 희망을 품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는 입시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하여 왜곡된 형태로 과열되고 있는 교육열을 독서열로 전환해야 합니다. 게임과 인터넷, 텔레비전, 휴대폰 등의 영향으로 자라나는 세대의 독서량과 독서시간이 줄어들고 있는데, 독서교육이 공교육 속에서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도서관이 본래의 교육적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진흥법>을 하루 빨리 개정하여 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 및 정규직 학교사서가 배치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도서관의 장서 기준을 확정하여 학교도서관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6. 좋은 책이 공급되도록 출판정책을 혁신해야 합니다.

 

정부는 출판문화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출판문화산업의 각종 지표는 정체와 빈사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기금 조성, 완전한 도서정가제 확립, 동네서점의 육성, 국제경쟁력 강화와 전문인력 양성 등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또한 도서관의 자료 구입비를 획기적으로 증액하여 양서를 나라 곳곳에 보급해야 합니다

 

7. 대중매체에서 좋은 책 정보를 접하고 싶습니다.

 

정부는 언론과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을 책 읽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적극 전개해야 합니다. 신문과 잡지, 공중파 방송, 케이블티브이 등 각종 매체를 활용하여 좋은 책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독서 생활화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방송법>을 개정하여 책과 독서에 관련된 문화 프로그램을 방송시간의 1% 의무 편성해야 합니다. 책 소개 전문 케이블티브이 추진도 지원해야 합니다.

 

8. 책으로 정보 격차를 해소해야 합니다.

 

정부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과 독서장애인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또한 지역 간 격차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지식정보복지 체계 구축에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9. ‘평생 독서’를 장려해야 합니다.

 

정부는 책 읽는 가정, 책 읽는 직장, 책 읽는 마을, 책 읽는 병영, 책 읽는 병원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시민이 모이는 어디에나 책이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라, 평생학습시대에 맞는 ‘평생 독서’ 환경을 지원해야 합니다. 생애 주기별로 독서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을 전개해야 합니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북스타트 운동을 더욱 폭넓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어린이도서관,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등의 독서활동, 어르신들의 독서활동 등을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병영에서는 일과시간 중 독서시간을 확보함으로써 군복무 기간 동안 자기 계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병영 독서를 지원해야 하며, 각종 병의원에서도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독서환경을 조성하고 독서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지역과 직장에서 다양한 관심에 따라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독서 모임을 만들고 지원해야 합니다

 

10. ‘시민 인문학’을 지원해야 합니다.

 

독서문화 진흥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와 봉사 수준, 시민 상호 간의 신뢰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시민적 자질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각종 시민 인문학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국가 및 각 지방자치단체의 독서 관련 축제를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시민 인문학의 잔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낮은 곳으로 임하는 시민 인문학’의 각종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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