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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정치와 우정 사이, 친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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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진(巴金, 소설가, 중국, 1904년~2005년)의 수필 '친구'를 읽으며 떠오른 상념

 

"친구끼리 한 얘기인데 이걸 가지고 확대해석을 하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구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늘 그렇듯 차분하다. 언론이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신중하다'라는 게 이런 걸까 싶다. 한쪽에서는 '협박' 공방이 한창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말이다. 어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쪽과 새누리당이 금태섭 변호사와 정준길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공보위원 사이의 전화통화에 대해 ‘불출마 협박’ 공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신중하다'란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때로는 현실인식이 부족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전투구로 인식되는 정치판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해 자신에게 호의적인 언론을 등에 업고 알맹이는 없지만 왠지 그럴 듯 하게 포장되는 '이미지 정치'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비치기도 한다.

 

어쨌든 금태섭 변호사와 정준길 공보위원 사이의 전화통화를 두고 '불출마 협박'이니 '우정어린 충고'니 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보니 이 공방이 이제 '친구 논쟁'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나 보다. 아무리 정치가 삼류라고 하지만 참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는데 내친 김에 '친구'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내 생명이 그리 길지는 않겠지만 짧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한 줄기 밝은 빛이 있었고, 그 빛은 내 영혼의 어두움을 밝혀주고 내 삶의 빛이 되어 주었다. 그 빛이란 바로 우정이다. 우정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우정 덕분에 틀에 박힌 가정불화로 인해 생긴 어두운 그림자도 쓸어낼 수 있었기에 나는 '우정'이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 마지 않는다. -바진의 수필 '친구' 중에서-

 

누구는 말한다, 책과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고. 또 누구는 말한다, 책과 친구는 적을수록 좋다고. 책과 친구를 양질로 따지기는 뭐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보기에 책과 친구도 그 양과 질의 경중이 있나보다. 아니나 다를까. 정준길 공보위원은 트위터에 금태섭 변호사와 대학 시절 찍은 사진을 올리며 둘은 친한 친구 사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금태섭 변호사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건 뭐 짝사랑도 아니고…….

 

아무튼 좀 유치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준길 공보위원이 과거 사진들까지 들춰내며 호소하려는 것은 협박이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조언 아니면 친구의 파멸을 막아보려는 진심어린 충고였음을 강조하려는 것일 게다. 바진이 말한 친구처럼 말이다. 

 

친구는 잠깐이고 가족은 영원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신념을 발견했다. 사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만약 나에게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쯤 얼마나 형편없는 모양으로 변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나를 살렸다. 그들은 우리 가족이 나에게 주지 못했던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우정, 도움, 격려는 몇 번이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건져내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한없이 관대했다. -바진의 수필 '친구' 중에서-

 

그러나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정준길 공보위원의 주장에서 그렇게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칼만 안들었지 정치판은 영화 <친구>의 그곳보다 더 냉정하고 살벌한 곳이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정준길 공보위원이 정말 금태섭 변호사를 친구라고 생각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통화를 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 있다. 보도내용을 보면 정준길 공보위원은 금태섭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안철수 원장한테 꼭 전해라. 주식 뇌물 사건과 최근까지 만난 목동 여자 문제까지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 나오면 죽는다."

 

한겨레 신문을 보니 이 말을 들었다는 목격자까지 나왔다고 하니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대선을 앞두고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말을 친구의 진심어린 충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문장의 앞뒤 문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말이 대화 중에 불쑥 튀어나왔다기보다는 사전에 의도된 말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그 정보의 출처는 어떻게 되는지…….

 

이러다 '협박'과 '우정'이 같은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도 안된 말을 가지고 친구를 윽박지르는 게 우정이 아니다. 바진이 말한대로 친구란, 또 우정이란 '내 삶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만약 등불이라면, 내 빛으로 어두운 곳을 밝히겠네." 내가 한 줄기 빛이 될 수 없다면 장작이라도 되어야겠다. 그래서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기를 뿜어내고, 내 몸을 불살아 사람들에게 조금의 따뜻함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진의 수필 '친구' 중에서-

 

친구의 한자어는 '친할 친親'에 '오래될 구舊'다.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온 사람이 바로 친구다. 오랜 세월 같이 웃고 같이 울었던 사이가 친구다. 그래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친구다. 친구의 꿈을 좌절시키기 위해 '진심어린 우정'(?)의 전화를 걸었던 양반이 이제와서 친구 운운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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