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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황순원 곡예단 피에로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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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사/황순원/1952년

 

왁자지껄 도때기 시장같던 분위기가 일순간 숙연해진다. '오늘도 아슬아슬 재주 넘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곰이네. 난장이 광대의 외줄타기는 아름답다, 슬프도다, 나비로구나'. 그리고는 억눌렸던 감정이라도 폭발시키 듯 숨가쁘게 전개되는 가사와 경쾌한 몸짓이 무대를 장악한다. 그 짧은 난장은 이내 다시 가슴을 후벼파 듯 느리게 느리게 감성을 자극한다. '커다란 무대 위에 막이 내리면 따스한 별빛이 나를 감사네. 자주빛 저 하늘은 무얼 말할까. 고요한 달 그림자 나를 부르네'. 끝맺음은 흥청망청 춤을 추다 숨쉴 틈도 주지않고 '헤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짧은 공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절되고 알 듯 모를 듯한 여운만 길게 남는다.

 

참 많이도 불렀다. 아니 그렇게라도 폭발하고 싶었다. IMF라는 대혼란이 지나가고 1년. 어줍잖은 대학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사과정을 마쳤지만 갈 곳이 없었다. 누구나 다 그러했던 시절이지만 고통은 늘 세상에서 나에게만 닥쳐온 운명 같았다. 그런 '나'들이 하나 둘 모이면 거한 소주 한 잔에 마치 익숙한 일상의 여정처럼 노래방엘 갔고 늘 마지막은 크라잉 넛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었다. 얼키고 설켜 그야말로 소음뿐이었지만 한바탕 지르고 나면 숙이 후련해졌다. 어쨌든 또 내일부터는 뭐가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대에만 오르면 관객의 배꼽을 죄다 빼놓는 삐에로처럼.

 

 

황순원의 소설 <곡예사>는 1952년에 발표되었다. 황순원 문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6.25. <곡예사>도 그런 황순원 문학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곡예사>의 주인공이 바로 황순원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소설보다는 한 편의 수필을 읽은 듯 뒤끝이 단정하고 때로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고는 그만의 사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던 시절의 얘기랄까? 아무튼 짧은 소설 속에서 '곡예사'가 연상시키 듯 눈물과 웃음이 교차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은 한국전쟁 중 주인공 '황순원'이 대가족을 이끌고 당시 피난지였던 대구와 부산을 전전하며 삶의 터전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대구에서도 그랬는데 피난지를 부산으로 옮겨 와서도 변호사 댁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과 전쟁의 상흔을 어느 정도 비껴가고 있는 변호사 가족과의 대립은 거대한 사회 변화에 결코 쓰러질 수 없는 그래서 비가 멎으면 다시 고개를 드는 풀처럼 역사의 질곡을 이겨내야만 하는 민초들의 일상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주인공 '황순원'에게 닥쳐온 시련은 전쟁도 전쟁이지만 당장 살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그야말로 쪽방 신세지만 그나마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망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있다. 주인이 화장실 사용을 꺼려해서 따로 뒷간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식모를 가장한 주인의 친척을 들이기 위해 방을 내놓으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가족에게 생존은 또 하나의 전쟁이다.

 

풍경 달린 현관물을 열고 나서니, 응접실 앞 거기 꽃이 진 동백나무 이편에 변호사 영감이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회양목인가를 매만져주고 있다. 첫눈에도 여간 그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태가 아니었다. 좋은 취미다. 인생이란 이렇듯 한 포기의 초목까지도 아끼고 사랑하면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할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에 쫓기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곡예사> 중에서-

 

가장은 가장대로 가족의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곡예'는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의식적으로 극복해 보려는 주인공 '황순원'의 의지가 응축된 상징적 표현이다. 고통과 슬픔과 분노도 무대에만 오르면 웃음으로 전환해야 하는 곡예사의 운명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위안만이 생존의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은 전쟁이 남긴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나는 곡예사라는 말을 떠올렸다. 옳아. 지금 나는 진아를 어깨에 올려놓고 곡예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진아도 내 어깨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고, 선아는 나비의 곡예를 했다. 남아는 자전거 곡예를 했다. 이 남아가 이제 몇 센트의 군표를 위해 그 꼬마와 같은 지랄을 해야 하는 것도 일종의 슬픈 곡예인 것이다. 그리고 동아의 풀리즈 쌜 투미도 그런 곡예요, 이들이 가슴이나 잔등에서 또는 허리춤에서 담배 보루며 껌곽을 재빨리 꺼내고 넣는 것도 훌륭한 곡예의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황순원 곡예단의 어린 피에로요, 나는 이들의 단장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무대는 이 부민동 개천 둑이고. -<곡예사> 중에서-

 

혹자는 그럴 것이다.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상에만 치우친 소설이지 않냐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으면 비루한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해야하지 않냐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현실을 고민하고 손에 잡히는 해답의 열쇠를 풀어놓는 게 작가라면 우리는 작가를 너무 신적 영역에까지 올려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보잘 것 없는 얘기만으로도 독자들은 나 아닌 주변을 걱정하고 사회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는 끔찍한 괴물이다. 그 괴물의 공격 앞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학을 가장한 현학인지도 모르겠다. 황순원의 전쟁의 참혹성과 비인간성에 관한 고민은 전쟁 이후에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주인공 '황순원'의 아이들에 대한 소박한 바램만으로도 전쟁의 비인간성은 만천하에 폭로되지 않았을까.

 

그저 원컨대 나의 어린 피에로들이여, 너희가 이후에 각각 자기의 곡예단을 가지게 될 적에는 모쪼록 너희들의 어린 피에로들과 더불어 이러 무대와 곡예를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거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쓸데없는 어릿광대의 넋두리였습니다. 자, 그러면 피에로 동아 군의 독창을 경청해 주십시오. -<곡예사> 중에서-

 

'황순원' 곡예단의 공연은 내일도 계속된다. 전쟁이 끝나도 언제가 그 끝이 될지 모르지만.

 

그러면 여러분, 오늘 밤 프로는 이것으로 끝막기로 하겠습니다. 준비가 없었던 탓으로 이렇게 초라한 곡예가 되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내일을 기대해 주십시오. 우리 곡예단을 이처럼 사랑해주시는 데 대해서는 단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그러면 안녕히들 주무세요. 굿바이! -<곡예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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