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박근혜의 풍모에서 품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이길 수 없다. 딱 한 사람 문재인뿐이다.”
2011년 1월17일 한겨레 신문에 인용된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이하 김어준)의 말이다. 실시간으로 정보들이 쏟아지는 현실 속에서 결코 흥행하지 못할 것 같던 팟캐스트 붐을 일으키고 있는 김어준은 2011년 신년특집으로 하니TV의 팟캐스트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서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을 지목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에 대해 약속을 지킬 것 같고, 예측 가능하며, 측근에게 사사롭게 이익을 나눠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현재 그 위치를 독점하고 있는 정치인은 박근혜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즉 부동의 대선후보 1위인 박근혜의 대항마로 문재인을 지목한 것이다.
1년 전 당시 문재인은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의미있는 지지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민주당의 잠룡 중에서도 거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을만큼 그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은 김어준의 예상대로 야권의 강력한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김어준은 벌써 1년 전에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김어준은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이라는 부제를 단 <닥치고 정치>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주장을 명토박고 있다.
책 제목에서 김어준다운 쾌활함과 거침없는 내공이 느껴진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네티즌이 뽑은 '201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닥치고 정치>를 뒤늦게 손에 쥐게 됐지만 오히려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2011년 11월까지만 해도 문재인이 야권의 강력한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하리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가. 모 신문에서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 조사에서 안철수와 박근혜를 제치고 1위까지 치고 올라가지 않았는가 말이다. <닥치고 정치>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김어준식 직설화법으로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사실은 행간을 읽지 않고도 그가 주장했던 '문재인 대망론'을 재확인하기 위해 출간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어준은 말한다.
그냥 다이렉트하게,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해 보자고.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당들 행태가 이해 안 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에게 이번만은 닥치고 정치, 를 외치고 싶거든. 시국이 아주 엄중하거든, 아주. -<닥치고 정치> 중에서-
이 책의 출간 의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김어준은 책 머리글에서 이게 다 조국 덕이라고 말한다. 김어준이 스펙, 얼굴, 기장, 음색, 사상 등을 내세우며 진보진영의 토탈 패키지라고 믿었던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의 바람이 잦아들고 만 것이다. 그 대안으로 김어준은 문재인을 지목한 것이다. 김어준은 오늘날 한참 왜곡된 한국정치의 현실을 진보와 보수 개념 정립으로부터 시작한다. 김어준이 일상 용어로 풀어낸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은 정치공학이 아닌 감성이 승패를 판가름할 것으로 예측한다. 철저하게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김어준은 진보와 보수가 후천적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공포로 불확실성을 설정하고 이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식이 바로 진보와 보수의 원형질이라는 것이다. 보수는 이 불확성의 공포가 존재하는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인식한다. 결국 보수는 당연한 생존권리로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기질적 보수가 '우파'라는 정치세력으로 불려질 수 있는 요인으로 김어준은 '자존심'을 꼽는다. 그런데 한국의 우파는 이 자존심이 없는 겁먹은 동물이라는 게 김어준의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BBK도 이런 보수의 원형질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 진보는 정글의 공포가 주는 불확실성에 대한 반응으로 정글 그 자체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기질이다. 보수의 본능적 반응과 달리 진보는 논리적 대처를 통해 공포를 나눠 각자에게 분담된 공포의 몫을 줄여가면서 공포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평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고 진보가 모든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도 있듯이 진보는 스스로 지적인 우월성을 주장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 오만은 진보를 대중과 격리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김어준은 이렇게 좌와 우의 개념을 통해 한국정치의 현실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망론'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김어준은 2012년 정치상황을 전망하면서 필연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가장 강력한 박근혜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의 되풀이한다. 문재인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본 김어준은 문재인에게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멋진 남자'의 모습이 보였나보다. 참, 여기서 최근 '나꼼수'에서 논란이 되었던 마초 논쟁이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선택할 때 논리를 동원하는 건, 그 사람에게 꽂힌 마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은 자기 마음을 줄 사람, 그 마음이 배신당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것이다. 두리번거리다 문재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아,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이 박근혜와 똑같은 지점에서 맞설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어. 그리고 그때부터 2년후에 문재인이 뜰거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거고" -<닥치고 정치> 중에서-
한편 김어준은 박근혜를 비판할 때 주로 내세우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대중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박근혜의 최대 장점으로 사사롭지 않다는 것을 내세운다.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어떻게 일군 국가인데 하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박근혜에게 국가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에게 정치는 효도이자 제사라는. 이런 박근혜와 맞서기 위해서는 야권에서도 사사롭지 않은 사람이 대선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사롭지 않은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그러면서 박근혜의 사사롭지 않음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아버지의 유산이니 상속 받겠다는 것은 한편 가장 사사로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에게는 국가를 이끌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효도에 철학이 필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김어준이 처음 문재인을 알아본 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였다고 한다. 백원우 의원의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말폭탄에 대해 문재인이 사과하는 것을 보면서 비겁하다거나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경우가 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흉내내거나 훈련할 수 없는 타고난 애티튜드의 힘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정치인 중에는 박근혜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그런 애티듀드. 김어준은 그 때 문재인이 박근혜와 똑같은 지점에서 맞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어쨌든 2011년 서점가의 흥행을 주도했던 <닥치고 정치>를 통해 문재인의 존재감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에 올해 초 SBS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알려지면서 일약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김어준의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대로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야인으로 지내왔던 문재인은 이번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부산 사상구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현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산은 새누리당의 견고한 아성이다. 이제 냉혹한 정치현실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는 오로지 문재인 자신의 몫이다. 한가지 조언한다면 이제 국민들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연기된 눈물이 아닌 국민들의 아픔에 본능적으로 흘리는 눈물 말이다.
혹독한 검증이 때로는 말도 안되는 인신모독이 쏟아지는 정치현실에서 김어준의 '문재인 대망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지켜보는 것은 이번 총선과 대선의 관전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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