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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일란성 쌍둥이를 둘러싼 배꼽빠질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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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십이야, Twelfth Night>/1601~1602년

세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의 원제는 <Twelfth Night>다. 굳이 한자를 빌린다면 <十二夜>로 12일째 되는 밤을 의미한다. 즉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 되는 1월 6일이다. 왜 하필 1월 6일일까. 서양에서 이 날은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진다. 다만 이탈리아 계통의 설화를 취재해 만든 <십이야>는 이탈리아의 오시노 공작을 환영하기 위해 1월 6일 엘리자베스 여왕 궁전에서 초연됐다고 하니 그런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이라 추정된다. 또 서양에서는 1월 6일이 크리스마스 시즌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니 기나긴 축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흥겨운 연극을 올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세익스피어의 <십이야>는 이탈리아의 Gl'ingannati라는 희극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Gl'ingannati는 시에나(이탈리아의 도시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라고 한다)의 Accademia degli Intronati 가 주도해 1531년에 쓴 희극이다. 이 대학(?)에서 주최한 최초의 대중 연극으로 1532년 축제의 마지막 날 상연되었으며 이 대학 연극의 전형이 되었고 주로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했다. 이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각국에 소개되었으며 세익스피어의 <십이야>도 그 중 하나라고 한다.

<십이야>는 세익스피어가 남긴 희극 중 가장 완성도 높은 희곡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축제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듯 희곡 장르로서의 희극(comedy)이라기보다는 요즘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유쾌하고 때로는 다소 황당하기도 하다. 그래서 배꼽 잡고 웃으면서 또다시 시작되는 지루한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십이야> 웃음 코드의 핵심은 일란성 쌍둥이다. 특히 흔하지 않게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로 인해 벌어지는 황당하면서도 유쾌한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배꼽을 잡게 한다. 일란성 쌍둥이에 얽힌 재밌는 에피소드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봤으리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 경험을 하나 소개한다면,

초등학교 4학년때 우리 반에는 두 명의 쌍둥이 친구가 있었다.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일란성 쌍둥이었고 또 한 친구는 이란성 쌍둥이로 흔히 볼 수 있는 형제지간의 닮음꼴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경우였다. 문제는 일란성 쌍둥이었던 친구. 외모는 물론이고 말투나 습관마저도 비슷해 늘 헛갈리곤 했다. 이 친구들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속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란성 쌍둥이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키라고 했다. 대개 동생이 형보다 크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형이 동생에게 영양분을 양보해 그런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구분하곤 했다. 

<십이야>에 등장하는 일란성 쌍둥이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는 남매지간이다.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지만 남자와 여자로 구별이 확실한데 왜 이들을 둘러싸고 황당무계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감을 둘로 쪼개듯 완벽한 분장술 때문이다.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는 어느날 항해를 하던 도중 배가 난파당하면서 일리리아 해안에서 헤어지게 된다. 먼저 바이올라는 세자리오라는 이름의 남자로 변장해 오시노 공작의 시중으로 들어간다. 이 때 오시노 공작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토비 벨치 경의 딸 올리비아였다. 그런데 올리비아는 오빠를 잃은 슬픔에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오시노 공작의 구애를 번번히 거절한다. 

오시노 공작의 올리비아를 향한 집념에는 포기가 없다. 오시노 공작은 시중인 바이올라(세자리오)를 올리비아에게 보내 계속 청혼을 한다.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올리비아가 바이올라를 보는 순간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한편 세바스찬은 안토니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올리리아로 오게 되는데 어느날 올리비아는 세바스찬을 바이올라로 착각해 성급하게 결혼을 결정하고 만다. <십이야>는 이 네명의 주인공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를 풀어나가면서 각자의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반면 <십이야>의 재미는 이 네명의 주인공들 말고도 조연들의 활약에서 더욱 배가된다. 올리비아의 삼촌 토비 벨치 경은 주정뱅이에다 체통머리라곤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는 뛰어난 대필 능력을 가지고 있다. 토비 벨치 경과 말볼리오의 장난으로 앤드류 에이크치크 경은 올리비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매번 퇴짜를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올리비아에게 청혼을 한다. 앤드류 에이규치크 경의 헛물켜는 장면이 이어질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십이야>는 세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가장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희곡이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가장 큰 의의가 고단한 일상을 사는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이에 가장 부합하는 희극이지 싶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직접 연극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아직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세익스피어가 <십이야>를 초연할 당시 공연 중간중간에 광대가 등장해 자칫 지루하게 느낄지도 모를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코너가 있었다고 한다.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관객과 배우가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의 마당놀이같은 형식이었을 것이다.

한 얼굴, 한 목소리, 한 복장, 그런데 사람은 둘이라! 이 무슨 일인가? 있으면서도 있지 않은 자연의 조화란 말인가! -<십이야> 중 오시노의 대사 중에서-

어떻게 당신이 둘로 나눠졌단 말이오? 사과 하나를 두 쪽으로 갈라놓아도 이렇게 똑같을 수는 없을 게요. 어느 쪽이 세바스찬이오? -<십이야> 중 안토니오의 대사 중에서-

***2011년 마지막 포스팅이 될 듯 합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블로거님들 남은 이틀 마무리 잘 하시고 2012년에도 늘 건강하고 웃음 가득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일부 호사가들의 말처럼 2012년에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염려는 없겠지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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