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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긴긴 겨울밤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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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벗어나라

 

신화 읽기의 핵심은 알쏭달쏭한 이야기 속에서
상징(메타포, metaphor)
을 찾는 것이다. 가령 그리스 신화에서 '외짝신 사나이'로 불리는 영웅이 있다. 이아손, 영어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姓)인 Jason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바로 이아손이다. 이아손은 삼촌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고국으로 가는 도중에 물살이 센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한 노파를 업어서 강을 건너게 해 준다. 무사히 강은 건넜지만 이아손은 신발 한 짝을 물살에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외짝신은 이아손이 조국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아손이 업어서 강을 건너게 해 준 그 노파가 다름아닌 헤라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는 왜 쓸모없는 신발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웠을까. 신발은 삶과 죽음의 경계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는 신발을 중심으로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 서있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꼭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아두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신화의 상징으로 적절한 예가 됐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신화는 픽션이긴 하지만 인류가 걸어온 매 순간순간 일어났던 일들을 가상의 세계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신화읽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읽기를 권장하면서 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벗어나라'는 엉뚱한 부제를 달고 말았다. 그리스 신화를 신화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단군신화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그리스 신화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문화는 기독교의 헤브라이즘과 더불어 서양문화의 원류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서양문화는 전세계 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 과정이야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편 그리스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양고전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밤길을 걷는 나그네의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리스 신화를 신화의 전부인양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그리스 신화 말고도 무수히 많은 신화들이 있다. 오히려 내 삶을 지배하는 사상은 그리스 신화가 아닌 내가 서 있는 이 땅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 때문에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세계 각국의 신화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어쨌든 문화의 핵심은 다양성이지 않은가.

다음에 추천하는 신화들은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 일부다. 내가 읽은 신화도 있고 짬짬이 들춰보고 있는 신화도 있다. 무엇보다도 낯설지 않은,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신화가 소개되어 있는 책들을 추려보았다. 신화읽기는 재미있어야 하니까. 긴긴 겨울밤, 무료하지 않게 때로는 신화 속 이야기에 푹 빠져 하얗게 지새보는 것도 겨울이 주는 또 하나의 낭만이 아닐까. 참고로 예전에 한 번 소개했던 신화는 제외시켰다.  

 

페르시아 신화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그 유명한 <아라비안 나이트>도 페르시아 지역이 주무대라는 사실은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같은 중동국가지만 민족 구성에 있어서도 다른 중동국가들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는 이슬람교(시아파 이슬람)가 국교로 채택되어 있지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조로아스터교(백화교)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신화는 바로 이 조로아스터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핵심인 선과 악의 대결을 축으로 신들의 행적과 영웅, 전설적인 동물들에 관한 페르시아인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페르시아 신화에 서양의 전쟁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이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침략자가 아닌 영웅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궁금하다면....우리나라에 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설화가 페르시아 신화에도 나온다는 사실. 그 주인공이 바로 알렉산더라면...

 

스칸디나비아 신화

올해 개봉했던 영화 중에 <토르: 천둥의 신>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난 꿀떡같은 호기심에도 끝내 보지 못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의 신인 토르는 신들간의 전쟁을 일으킨 죄로 신의 자격을 박탈당한 채 추방되고 마는데....이 토르가 바로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던 결코 낯설지 않은 전제를 상기한다면 조금은 벗어난 추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으면서 무척이나 어려웠으니까. 물론 나만 어렵게 느껼 수도 있겠다. 스칸디나비아 신화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비롯해 아이슬란드와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에 내려오는 전설들을 중심으로 다루어진다. 스칸디나비아 신화를 이해하는 핵심은 그 지역의 기후적, 지리적 특성이다. 척박한 지리적 특성을 헤쳐나가기 위한 영웅들의 활약상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많은 유럽 축구 구단의 엠블럼이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게다가 세계적 문화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원형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신화라는 사실....


아즈텍과 마야 신화

2012년 지구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겠는가? 스피노자의 말대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과연...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느닷없이 웬 지구 종말? 아즈텍과 마야 신화를 들어본 적 있다면 아마도 지구 종말에 관한 각종 보도나 방송 프로그램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호사가들의 주장일 뿐이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속에서 나름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즈텍과 마야 신화가 지구 종말을 운운하는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는 바로 파괴와 창조의 순환이라는 아즈텍과 마야 신화의 특성 때문이다. 서로 근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상 아즈텍과 마야 신화는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 선세계와 파괴와 창조의 순환, 인신공양 등...특히 인신공양 전통은 서구 침략자들에게 학살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자행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란체스코 선교회 지도자들이 마야의 전승신화를 집대성한 <포폴부> 작가들의 주장대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문명은 철저하게 파괴되었지만 그 신화만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이유다. 한편 다양한 동물들의 신화적 의미의 어원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한층 배가될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

잠시 추억을 되살려 세계사 시간으로 들어가 볼까. 세계 4대 문명 중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명은? 기억이 새록새록 할 것이다. 정답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세계 4대 문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명 발생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문자가 가장 먼저 생겨난 지역이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수메르인들이 토판에 남긴 기록들을 복원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불행히도 메소포타미아 신화가 전하는 지역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비인륜적인 제국주의 전쟁이 한창인 이라크가 그 중심이다.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를 뒤로 한 채 처절한 생존투쟁을 해야하다니 이보다 비극적인 역사가 있을까 싶다. 기존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보다 무려 1,500년이나 앞선 <길가메시 서사시>가 바로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한다. 

 

변신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서 벗어나라며 무례한 제안을 하고보니 왠지 아쉬워할 독자들이 많은 것 같아 그리스 신화 대신에 그리스 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변신 이야기> 추천하고자 한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토마스 불핀치라는 가난한 은행원을 일약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구전과 문학에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해서 하나의 책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스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비롯해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시대를 주름잡았던 많은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원형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올림포스를 중심으로 살아갔던 많은 신들이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변신시키는 이야기다. 올림포스가 신들의 세계이니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마법과 마술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시다. 꽤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신들의 이름이 그리스식과 로마식으로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령 아프로디테와 비너스는 한 명의 신이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아프로디테로 로마 신화에는 비너스로 등장한다. 책에 따라서는 각주에 온 신경을 빼앗기기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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