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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과 김제동의 살맛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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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2011년

오늘(5월23일)은 故노무현 대통령 2주기다. 2년 전 그날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오늘 새벽 하늘도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별마저 구름에 안기고 말았더라. 그래도 오늘은 5월이 제 빛을 찾았으면 좋겠다. 2년 동안 실컷 울고 원망했으니 이제 희망을 얘기했으면 좋겠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희망에게 희망을 주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노무현이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으로의 첫 발자국을 깊게 새기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노무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니 그는 죽을 때까지 노무현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지도 모른다. 실낱 하나 들어갈가 말까 뜬 눈, 그나마 안경이라도 썼기에 망정이지 싶은 얼굴, 다리가 그의 키만한 스타들 옆에서도 결코 주눅둘지 않는 그는 바로 방송인 김제동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스타로서 그의 업적이라면 대중과 연예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가 뱉어내는 언어들은 좌중을 압도한다. 수궁에 간 토끼가 햇빛바른 바위 위에 두고 온 간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배꼽은 이미 유체이탈이다. 그는 웃음만 주는 게 아니었다. 어느 시인보다 아름답고 어느 철학자보다 세태를 꿰뚫는 그의 언어는 급기야 김제동 어록을 탄생시켰다.

 

이런 김제동이 살맛나는 세상을 꿈꾼다며, 세상에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며 누군가 만났던 얘기를 또 그들에게 들었던 얘기를 소문 좀 내면서 함께 듣고 싶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김제동의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그의 말대로 진솔하고 유쾌한 노변정담이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신영복 선생부터 청소년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는 소녀시대 수영까지, 그가 만나고 온 사람들은 세대와 직업과 정치를 초월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격식이 있을법도 한데 최유라의 말처럼 그는 만나는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김제동 특유의 웃음코드가 한 몫 하고 있다. 심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다.

김제동은 왜 이들과의 만남을 소문내고 싶었을까? 그가 꿈꾸고 있다는 살맛나는 세상과 이 만남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건 바로 소통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 이들과 또다른 소통을 시도하며 살맛나는 세상의 다른 이름인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나선 책이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이다.


이 책을 덮고 불현듯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이 스치운 것은 김제동이 노무현 아저씨 보고싶다던 절규 때문이 아니다. 김제동의 살맛나는 세상과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이 희망의 다른 이름으로 들렸고 희망을 여는 열쇠가 소통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지금은 불통의 시대가 아닌가! 힘겹게 움트고 있던 희망의 싹을 무자비하게 싹뚝! 잘라버리는 불통의 시대. 소통하고 싶다는데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는데 귀를 막고 눈을 막아 그들만의 소통으로 신선놀음에 빠져있는 시대 말이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비국과 절망이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의 되풀이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되풀이니까 백성이 참으면 안 돼요. 그건 정치적 성향이 아니에요. 그런 것을 작가가 일깨워 준다고 기분 나빠하면 문제가 심각해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이외수 편 중에서-

김제동과 함께 트위터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외수 작가의 말은 현재 우리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단면이다. 소통의 부재는 삶의 터전을 빼앗고(제주 해녀 고미자), 여당의원마저도 사찰의 대상으로 만들고(한나라당 국회의원 남경필), 상식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좌빨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만다(나우콤 대표 문용식).


김제동이 소통하는 방식은 신변잡기를 늘어놓듯 그렇게 부담이 없다. 그러나 언중유골이다. 그의 재치와 사회를 보는 안목이 어우러져 긴 여운이 남는다. 소통이 부재한 시대를 한탄만 하고 조롱만 하지 않는다. 참여를 강조하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도 품위를 접고 현장을 누비는 최일구 앵커의 말도 김제동이 소문내고 싶은 만남들이다.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맞서는 해법도 있다.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가 전한 자유의 의미가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질서에 포획당한 환경에서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 에덴이 쓴 동화 이야기를 자주 예화로 들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길섶에 있는 버섯을 가리키며 '이게 독버섯이다'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독버섯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죠. 옆에 있던 친구 버섯이 위로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일 뿐이야. 식탁에 오를 수 없다. 먹을 수 없다는 자기들의 논리일 뿐인데 왜 우리가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우리 자신이 갖는 인간적 이유, 존재의 의미를 가져야죠.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성공회대 석좌교수 신영복 편 중에서-

과연 김제동이 소문낼만한 만남들이다. 윤도현의 추천사대로 '정치적인 연예인'이 아니라 사회에 무심하지 않은 연예인이고자 하는 김제동의 소신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덤이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제2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 때는 소통을 갈구하며 사는 일상의 시민들이면 좋겠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권력에 갖혀있던 검찰과 언론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를 찾은 그들의 칼을 이용해 시민들과 소통하기 좋아하던 대통령을 숨만 쉬는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걸 두려워해서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과 언론을 다시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검찰과 언론은 굴종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들끼리의 소통을 즐기면서...

오월 햇살이 넘쳐나길 바랬는데 오늘도 그날처럼 소리없이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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