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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노무현은 부산으로 갔지만 유시민은 김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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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진중권·홍세화 외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2009/책보세 펴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 4.27 재보선을 보면서 이런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야권 후보가 출마한 지역 중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됐던 김해에서 패배의 쓴잣을 마신 것이다. 한편 야권단일후보가 결정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야당의 패배는 예상된 수순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였는지 아니면 무한한 정치적 야망이었는지 그 논란의 중심에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있었다. 그는 야권단일화 과정에서는 승부사적 기질이 빛을 발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허망하게도 무너지고 말았다. 얼핏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려지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승부사적 기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2년전 가슴으로 눈물 흘리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이제는 잊혀질만도 한데 어김없이 5월이 찾아오듯 밀짚모자가 꽤나 어울리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가슴 한 켠에서 선홍빛 5월의 단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그와 교류했거나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이 바친 애도의 글이다. '부끄러운 바보들이 살아서 바치는 통한의 헌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단순한 애도글을 넘어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감춰지고 왜곡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그를 역사의 한 페이지로 올려놓기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서울대 나온 놈이 낫지 않냐고?

우리사회에서 혈연과 지연, 학연은 하나의 견고한 성(珹)을 이루고 있다. 누구나 일상에서 혈연으로 태어나 지연으로 부딪치고 학연으로 술 한 잔 건네며 사는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정치적 의미에서 그것들은 극히 소수의 독점적 향유를 의미한다. 그들만의 리그는 만백성의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들고 만다. 마치 그 옛날 중국황제를 범하지 않기 조선임금은 세 계단 이상을 오르지 못했던 것처럼 그래도 서울대 나온 놈이 낫고 돈 좀 있는 놈이 낫지 않냐는 사대주의와 패배주의, 노무현의 등장은 이런 사대주의와 패배주의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일명 '비주류의 반란'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이전 김대중 전대통령도 비주류가 아니었냐고 하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비주류의 반란'은 노무현의 등장으로 실현됐다고 봐야 옳다. 비록 김대중 전대통령도 비주류였다고는 하나 오랜 민주화 투쟁 경력으로 주류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비주류 내에서도 비주류라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돌파하고 등장하지 않았는가!  이런게 바로 일상을 사는 우리네 희망이 아닐까?

이게 바로 한국의 '가진 자'들의 모습이고 이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보는 시각이다. 마치 거지 아니면 머슴 보듯 한다. 그래서 이들 가진 자들은 자기가 무슨 큰 은혜라도 베푸는 걸로 착각한다. 자기가 이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들 덕에 자기가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로 인해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정희준(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의 글 중에서-

가진 자들이 또 배운 자들이 노무현의 등장을 쉬 허락할 리 없었다.


아직도 '노방궁'이라는 사람들

국회 연설을 하기 위해 등장하는 대통령을 한껏 거만한 자세로 앉아 시쳇말로 썩소를 날리기도 했고 어느 노 언론인은 그의 칼럼에서 대담하게도 노무현 대통령 대신 '노무현씨'라는 말로 그를 비웃기도 했다. 또 어느 당돌한 여성 국회의원은 '대통령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말로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들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했다. 지금이야 노무현 정신 운운하지만 민주당 의원들도 이 광란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법이 없었다.


여기에 퇴임 후 터진 측근과 대통령 형의 비리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대통령이라고 해서 부패 수사의 예외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류를 대변하는 검찰의 수사는 이미 도를 넘고 있었다. 수사라기보다는 그를 산 채로 매장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법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기 이전에 검찰에 의하여 조선시대의 팽형(烹刑)을 당하였다. 검찰은 광장에 놓인 무쇠 섵에 노 전 대통령을 넣었다 뺌으로써 그의 육체적 생명은 붙여 놓으면서도 정치, 사회적인 생명은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노 전 대통령은 육체적 생명마저 놓아버리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조 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촌철살인은 보수 신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수신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 백미는 '노방궁' 보도다. 퇴임 후 돌아갈 봉하마을 관저를 400억짜리 아방궁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불행히도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시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 언론은 영향력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지금의 검찰은 어떠한가! 또 언론은...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은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마저 그의 죽음과 함께 묻어두려는 책이 아니다. 그에 앞서 그동안 수구언론과 검찰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주류에 의해 왜곡되었던 진실들을 바로잡는 첫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있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진실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노무현은 부산으로 갔지만 유시민은 김해로 갔다

그렇다면 남다른 승부사적 기질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대표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노무현은 부산으로 갔지만 유시민은 김해로 갔다. 부산은 노무현의 정치적 고향이다. 그러나 부딪치고 또 부딪쳤던 부산은 삼당야합 이후 그에게 예전의 부산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부산에서 노무현은 애증섞인 이방인이었다. 그는 지역감정이라는 괴물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꿈, 소위 말하는 노무현 정신을 광주가 화답한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이 갔던 김해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이미 옥토로 변해 있었다. 그가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기에는 매력적인 곳(?)이 못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 불리는 유시민이었지만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던 자신의 승부사적 기질에 정치적 야망과 욕심을 담고 말았다. 유권자들에게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몽니'로 인식되고 만 것이다. 그가 말한 '노무현 정신'은 분명 이게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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