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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내 글을 국가가 관리한다고?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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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를 구축해서 올 2학기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한다. 또 입학사정관은 그동안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학생들의 독서 여부를 가늠했던 방식 대신 이 시스템을 통해 창의적 체험활동의 제1항목인 '독서 활동'을 평가하는 근거로 삼는단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담긴 자료는 빠르면 2011년 대입전형부터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 과도한 개인 신상정보와 도서관 이용 및 독서활동 기록을 누적하게 된다며 시행을 철회하고 독서교육의 새 판을 짜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에는 전교조 및 참교육 학부모회,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등 20여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부가 독서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데 왜 독서관련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는 것일까?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교과부가 밝힌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골자는 학생들이 책을 읽고 서평 및 감상문 등 다양한 창의적 활동 기록을 독서교육지원시스템(www.reading.go.kr)에 남기면 해당교사가 이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입학사정관의 창의적 활동 평가기준으로도 활용된다.

우선 정부의 발상은 잘못된 독서문화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누구나 인식하듯 어릴 때부터 독서를 하지 않는 아니 책읽을 기회를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암기 위주의 현행 입시제도 때문이다. 토론이나 체험학습보다는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하는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은 방치한 채 강제로 책읽기만 강요한다면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순간 옷매무새는 이미 흐트러지고 다시 단추를 풀어야만 하는 상황을 반복해야만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독서문화를 걱정한다면 현행 입시제도를 뜯어고치는 과감한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수백만 명의 개인신상정보가 고스란히 인터넷상에 노출됨으로써 해킹과 각종 정부 임용시험에서의 악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에서는 해킹의 문제점을 정부에 항의했다고 한다. 정부의 해법은 강력한 보안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답변뿐이었다고 한다. 정보화 시대에 대한 현정부의 안이한 현실인식이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입맛대로 인재를 고르겠다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껏 보았듯이 해킹기술은 IT기술 발전속도보다 결코 뒤처지는 법이 없다. 또 정부는 이 시스템에 담겨있는 개인신상정보들을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창작활동이 미래를 위한 보여주기식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또다른 사교육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정부 들어 사교육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일선 학교에서의 영어교육 강화를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현행 입시제도 아래에서는 누구나 예상가능한 결과였다. 이번에 교과부가 2학기부터 본격 시행한다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으로 독서 관련 사설 입시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라는 예상은 불보듯 뻔하다. 창작활동을 대학입시의 합격기준이 된다니 어느 부모가 체계적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학원을 마다하겠는가! 우리의 교육현실을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답답할 뿐이다.

자발적 행위인 독서를 강제적으로 활성화시킨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 독서는 가장 순수한 자발적 행위의 발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말도 안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바람직한 독서를 위한 제반환경들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독서는 문화를 배우는 과정이고 글쓰기는 창작의 일환이다. 과거 김대중 전대통령이 문화에 대해 강조했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것' , 이 단순한 원칙이 독서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가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독서는 계량화할 수 없는 삶의 경험이다.

이런 문제들을 도외시한 정부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현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독단과 독선의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서라도 이 시스템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잘못된 우리 교육과 독서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의 성명서 중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공교육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독서활동의 전 과정을 대학입시와 연동시키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독서활동은 문화자본의 소유와 그 정도에 따라 확연히 차별적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독서환경과 그에 따른 능력 및 활동을 대학입시와 연결시키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을 학력의 불평등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운위하면서 마음의 양식인 독서에 관해서는 불평등을 방치 혹은 장려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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