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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배추값 폭등으로 떠올린 군시절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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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이었는지, 1995년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상병쯤 되었으니까 1994년이 맞나보다. 나는 강원도 철원에서 포병 측지병으로 복무했다. 말이 측지병이지 주특기보다는 각종 작업과 대민지원으로 26개월을 채웠다. 특히 김장철이 다가오면 배추 수확을 위한 대민지원도 늘 우리 분과 몫이었다.

그날도 기상점호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그날따라 식당안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먼저 배식을 받은 이들도 다들 궁시렁궁시렁...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무뚝뚝한 남자들만 모인 그곳에서 수다떠는 소리가 담을 넘고 있었을까? 내 배식 차례가 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삼시 세끼 빠지지 않는 메뉴라 있으면 젓가락만 깔짝깔짝 거리지만 정작 없으면 밥먹은 것 같지 않은 마력을 가진 그것....바로 김치다. 그날도 어김없이 김치가 나온 건 분명했다. 그런데 희멀건게....배추 김치가 아니라 양배추 김치였다. 게다가 절도가 생명이어야 할 군인들을 수다쟁이로 만든 건 양배추 김치를 당분간 먹어야 한다는 취사병의 말이었다.


취사병 말대로 우리는
한 달 넘게 양배추 김치를 먹어야 했다. 짠밥(?) 좀 있는 병장 고참들은 식당 뒷문을 통해 식당 주방을 침입해 간부들에게만 배식되는 배추 김치를 얻어먹곤 했다. 짠밥에서 밀리는 나로서는 고스란히 한 달을 넘게 양배추로 배추 김치를 대신해야만 했다. 임연수어 튀김까지 나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최악의 식단이었다. 군발이에게 그나마 낙(樂)이라곤 식사 시간밖에 없었는데...국가를 지켜야할 우리에게 나를 먼저 지키는 게(?) 급선무였다. 김치가 없으니 말이다. 차마 양배추 김치를 김치라 부를 수 없었다. 그 때는....

먹는 둥 마는 둥...매주 배급되는 빵과 맛스타(요즘도 나올라나...), 전투식량이 그렇게 맛있는 줄 그 때 처음 알았다. 졸지에 대민지원도 경쟁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특권이 되고 말았다. 아삭아삭한 우리 배추로 만든 김치의 소중함을, 조선놈은 김치없이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는 한 달이었다. 정말 악몽이었다.

그 때 배추 한포기 값이 5,000원으로 언론에서는 '김(金)치'라는 표현으로 배추 파동을 보도하곤 했던 시절이었다.

15년이 훌쩍 지난 오늘, 조간신문을 보니 배추값이 포기당 1만5천원이란다. 그나마 15년 전 '김(金)치'는 저렴했구나싶다. 덩달아 무 값도 1년 전보다 2.5배나 폭등했다고 한다. 비단 배추나 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고 한다. 올 추석에는 나물없는 차례상을 차렸다고 할만큼 서민들의 생활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외치는 이들에게서 나왔던 이율배반적인 'MB물가'라는 것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재래시장 돌아다니며 주름깊게 패인 상인들 부둥켜 안고 흘렸던 'MB의 눈물''악어의 눈물'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아침이다.

정부에서는 배추를 포함한 농산물 가격 폭등의 원인을 이상기온 탓이라고는 하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4(死)대강 사업으로 사라진 농지가 얼마인가! 세계인들과 약속한 남양주 세계유기농대회도 4대강 사업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뿐만 아니다. 정부 정책 어디에도 서민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철만 되면 반짝하는 생색내기용 정책으로 오히려 서민들 등골은 한반도 모양처럼 휘어져만 가고 있다.

환경파괴하는 삽질에는 수십조원을 펑펑 써대지만 눈물마저 말라버린 서민들에게는 돈안들고 생색내기 좋은 립서비스만 난무하는 시대다. 올 겨울 우리는 태어나 가장 비싼 김장 김치를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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