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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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18 남성의 상징 헤라클레스는 왜 하필 여장을 즐겼을까 (22)
이윤기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2007년/웅진 지식하우스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게 베르사이유 궁전의 드넓은 뜰을 태양신 아폴론의 이름을 본떠 '아폴론의 뜰'이라고 이름지었단다. 뿐만 아니라 베르사이유 궁전의 수많은 방들에도 저마다의 고유한 이름을 지었는데 '아프로디테의 방', '아르테미스의 방', '아레스의 방', '헤르메스의 방'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는 '헤라클레스의 방'도 있는데 이 방의 천장에는 프랑수아 르무안이 그린 '헤라클레스 예찬'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 이 그림의 네 모서리에는 힘과 인내, 가치, 정의를 상징하는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이 18세기 군주로 하여금, 아득한 신화시대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곱씹어보게 했을까? 헤라클레스의 '힘', '인내', '가치', '정의' 때문이었을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4>는 저자 이윤기의 이런 의문으로 시작된다. 저자가 베르사이유 궁정, 아니 '헤라클레스의 방'에서 받은 영감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의 대표작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중 헤라클레스의 행적만을 모아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라는 부제로 시리즈 네번째 이야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4>를 내놓았으니 말이다. 저자가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통해 구구절절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상징으로서의 신화다. 그렇다면 헤라클레스의 행적만을 모은 네번째 이야기도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픈 신화의 상징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제우스의 못말리는 바람끼가 화근이 되다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가 난봉꾼이라는 사실은 그리스 신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험난한 여정도 제우스의 못말리는 바람끼에서 시작된다. 제우스의 바람끼는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어느날 인간세상을 내려다본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 알크메네에게 마음을 뺏기고는 알크메네의 연인 암피트리온으로 변장해서 삼일밤을 뜨겁게 보낸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알크메네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쌍둥이 아닌 쌍둥이를 낳게 된다. 한 명은 제우스의 씨인 헤라클레스이고 또다른 한 명은 암피트리온의 아들 이피클레스였다. 늘 남편 제우스의 바람끼에 진절머리가 났던 헤라 여신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헤라클레스가 태어날 당시 제우스는 '오늘 한낮에 여자 다리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기'를 아르고스의 지배자로 세우겠다는 약속을 한다. 남편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득한 헤라가 제우스를 결코 아르고스의 지배자로 세울 리 만무했다. 여신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헤라는 해산의 여신이기도 했다. 헤라는 알크메네의 출산에 맞춰 스테넬로스의 아내 니키페의 복중에 있던 일곱 달 된 자식을 급하게 출산시켰다. 이 아이가 바로 헤라클레스에게 시련을 줄 운명을 타고 태어난 칠삭둥이 에우리테우스이다. 그런데 어떻게 에우리테우스가 아르고스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까. 제우스의 자손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텐데 말이다. 헤라의 영악함을 너무 무시하지 마시라. 에우리테우스의 아버지 스테넬로스는 페르세우스의 손자이고, 페르세우스는 또 제우스의 아들이니 분명 제우스의 피붙이가 맞다. 헤라클레스가 태어난 사실을 몰랐던 제우스는 헤라의 잔꾀로 에우리테우스를 아르고스의 지배자로 임명하고 만다. 

그러나 여기서 또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헤라클레스의 시련은 제우스의 바람끼에서 비롯되었지만 헤라클레스 자신의 광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도 헤라의 농간이다. 남편에 대한 증오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신 중의 신인 남편 제우스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 화풀이를 제우스의 피붙이인 헤라클레스에게 할 수 밖에....

타고난 장사인 헤라클레스는 성격도 다혈질이었던 모양이다.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모르겠지만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음악 스승인 리노스를 악기로 쳐서 죽이게 된다. 헤라클레스의 이런 성격을 간파한 헤라는 뤼사(발광)와 마니아(광기)라는 여신을 보내 포도주에 취하게 한 다음 자식을 죽이고 아내 메가라를 죽이게 만든다. 술에서 깨어난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죽이도록 자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 헤라클레스의 존재를 알게 된 제우스가 그를 아르고스의 지배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헤라클레스의 죄를 씻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터, 에우리테우스에게 보내 12가지의 과업을 주고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과업이었지만 헤레클레스가 누구인가. 제우스의 아들이 아닌가. 즉 헤라클레스는 반신반인이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 상징하는 것

여기서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헤라클레스가 차근차근 수행해 나갔던 과업들은 대부분 인간세상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같이 기억해 두길 바란다. 12가지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영웅의 호칭을 얻게 된 헤라클레스. 12가지 과업을 다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중 한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들이 가장 흥미있어할 이야기로...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아홉번 째 과업은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뺏어오는 것이었다. 아마존은 '젖(마모스)'와 '없는(아)'의 의미로 여자만의 여인 왕국이다. 아마존족 여인들은 한 해에 한번씩 남자들을 납치해 씨를 받고는 죽여버리는 기이한 풍습이 있었다. 비록 여인 왕국이었지만 이들의 힘과 무기 다루는 솜씨는 어떤 남자도 당해낼 수 없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케스토스 히마스'라는 허리띠가 있었던 것처럼 아마존 여왕에게도 이와 비슷한 마법의 띠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존 여왕도 남자 중의 남자 헤라클레스를 알아보았던 것일까. 여느 남자들과 달리 아마존 여왕은 헤라클레스를 환대했다. 여기서 또 헤라의 농간이 시작된다. 헤라의 이간질로 아마존 여인들과 헤라클레스 사이에는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진다. 물론 짐작대로 헤라클레스의 승리였다. 어쨌든 헤라클레스는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빼앗은 것은 물론 12가지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다. 아! 이제 쉬고 싶다.

헤라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광기가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에...12가지 과업을 완성하고도 헤라클레스는 종살이를 전전하게 된다. 여기서 독자들은 남성의 상징 헤라클레스의 기이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여장을 하고 괴상한 행동을 하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이다. 헤라클레스를 헐값에 산 소아시아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와의 애정행각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 헤라클레스는 여장을 하고는 옴팔레 여왕을 등에 태우고 다니기도 하고 여종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으며 경비병들과 마주칠 때면 궁전 시녀들이 그러는 것처럼 교성을 지르며 돌기둥에 숨기도 했다. 헤라클레스가 힘과 남성의 상징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행동들이다.

이제 헤라클레스가 여장을 하고 옴팔레와 애정행각을 벌였던 장면과 더불어 12가지 과업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짐작했다시피 헤라클레스의 여장과 12가지 과업은 속죄의식과 관련이 있다. 다혈질인 자신의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광기에 사로잡혀 아내와 자식을 죽였던 헤라클레스는 남성의 몸이지만 인간의 근원이 된 여성의 몸을 빌어 원죄를 씻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또 12가지 과업의 수행은 반은 인간이었던 헤라클레스를 통해 인간이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속죄의식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즉 헤라클레스의 시련은 인류가 걸어온 길이고 또 걸어가야 할 미래인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저자가 베르사이유 궁전의 '헤클레스의 방'에서 보았던 천장화 모서리에 그려졌던 '힘', '인내', '가치', '정의'의 그림은 영웅의 자질이자 인간이 품어야 할 본질인 것이다. 삶의 무게가 중력의 힘으로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저자가 책 속에서 말한 영웅의 정의가 새삼 긴 여운으로 남는 오늘이다.

영웅을 영웅이게 하는 것은 오랜 방황과 모험 끝에 그가 누리게 되는 행복이 아니다. 영웅의 모험은 행복에 이르는 도정이 아니다. 영웅의 행복은 또 다른 모험을 준비하는 순간의 짧은 잠과 꿈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 잠자고 오래 꿈꾸는 자를 우리는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잠과 꿈을 깨우는 자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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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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