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에게 비뇨기과는 아주 특별한 추억이 교차하는 곳이다. 창피해서 고개를 떨구기도 했고, 막연한 자신감에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던 곳이 비뇨기과였다. 포경수술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오리마냥 뒤뚱뒤뚱 걷는 꼴이 무던히도 창피했고, 진짜(?) 남자가 됐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며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까지 충만하기도 했다. 확인되지 않은 지식과 잘못된 믿음이 어우러진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풍경이었다. 통과의례처럼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거쳐갔던 비뇨기과였지만 최근에는 인권과 위생 논란이 제기되면서 포경수술 비율이 예전처럼 높지 않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포경수술이 아니고도 비뇨기과는 여전히 여느 병원처럼 대놓고 다니기 민망한 곳이기도하다. 지나치게 성性과 관련된 병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비뇨기과는 신장, 요관, 방광, 요도 등 요로계와 남성 생식기계 질환을 수술하거나 시술 등을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일반적으로 비뇨기과 치료의 대부분은 전립선염이나 발기부전, 조루증처럼 생명과 직결되거나 응급을 요하는 치료는 아니다. 하지만 비뇨기과에도 응급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음경지속발기증’이라는 질환은 성적 욕구나 성적 자극과 상관없이 발기가 병적으로 지속되는 상태로 비뇨기과의 대표적인 응급 질환이다. ‘음경지속발기증’을 영어로 ‘프리아피즘(priapism)’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 신화 속 프리아포스(Priapus)라는 신에서 비롯된 용어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프리아포스 동상. 사진>구글 검색 |
대부분의 신화가 그렇듯 프리아포스의 출생에 관련해서도 두 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하나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가 디오니소스와 아도니스와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제우스까지 유혹하려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 들켰는데 아프로디테는 헤라의 저주로 기형아 프리아포스를 낳았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 프리아포스라는 설이다. 일반적으로 프리아포스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이다. 아마 두 번째 출생설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살아생전 신화의 대가였던 故이윤기 선생은 프리아포스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이 된 내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프로디테 포르네’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별명이다. ‘아프로디테 포르네’는 ‘음탕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이다. 아프로디테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람둥이 제우스만큼이나 남자 관계가 복잡한 여신이 바로 아프로디테였다. 원래 아프로디테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였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절름발이였던 헤파이스토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전령의 헤르메스와도 놀아났다. 여기서 만족할 아프로디테가 아니었다. 아프로디테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마저 유혹했다. 아프로디테가 디오니소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신이 바로 프리아포스였다.
하지만 프리아포스는 태어날 때부터 정상적인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성기는 나귀 물건만큼이나 컸고 온몸은 옹이진 근육으로 똘똘 뭉쳐져 마치 천년 묵은 올리브 나무 둥지처럼 뒤틀려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비정했다. 이렇게 흉직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들 프리아포스를 숲 속에 버린 것이다. 버려진 프리아포스는 목동들 손에 키워져 훗날 디오니소스를 수행하기도 했고, 주신을 섬기는 밀교를 그리스 전역에 퍼뜨리기도 했다.
▲프리아포스에게 쫓겨 호수에 몸을 던진 요정 로티스가 변해 태어난 꽃 '로투스(연꽃)'. 사진>구글 검색 |
그리스 신화에서 뿔은 풍요를 상징한다. 뿔이 그렇지 않은가! 꺼내도 꺼내도 계속 차오르는 화수분처럼 뿔도 잘라도 잘라도 계속 돋아나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풍요의 상징이라는 이 뿔이 프리아포스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조금만 음란한(?) 생각을 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프리아포스의 터무니없이 큰 성기도 일종의 뿔은 아니었을까? 더욱이 프리아포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자식이지 않은가! 술에 취한 남녀가 가는 곳이 어딘가? 이런 이유로 풍요의 신은 다신의 신으로도 통한다. 지나치게 고상하게 읽으면 신화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신화는 가장 통속적이면서도 가장 심오한 메타포(은유 또는 상징)가 있기 때문이다.
프리아포스 이야기가 여기서 그친다면 민망하기만 할 뿐 너무 재미없다. 프리아포스는 인간에게 아름다운 꽃 하나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 로티스(Lotis)라는 요정이 등장하는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딸이다. 프리아포스가 이 로티스를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 프리아포스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요정 로티스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는데 정작 로티스는 프리아포스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밤이 되자 프리아포스는 단풍 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는 로티스를 범하려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온 당나귀 울음소리 때문에 로티스는 잠에서 깼고 엄청나게 큰 성기와 온몸이 흉측하게 꼬여있는 프리아포스를 보고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프리아포스는 달아나는 로티스를 뒤쫓았고 신들에게 살려 달라고 외치면서 로티스는 호수로 뛰어들었다. 로티스를 가엾게 여긴 어떤 신이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꽃으로 변신시켰으니 이 꽃이 바로 로투스(Lotus), ‘연꽃’이라고 한다. 요정 로티스를 구해준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프리아포스의 아버지인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가 타고 다니던 당나귀였다고 한다.
한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오이타의 왕 드리오프스 딸인 드리오페가 이 로투스를 꺾으려다 포플러(Poplar) 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풍요’와 ‘다산’이라는 말처럼 행복한 단어가 있을까? 외모는 참 민망하게 생겼지만 프리아포스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프리아포스가 하필 비뇨기과에 놀러 간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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