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짓은 무엇일까? 가차없이 리듬체조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긴 다리와 큰 눈, 작은 얼굴 등 신체조건 때문에 서양의 전유물로만 알았던 리듬체조가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최고의 흥행종목이었다. 바로 손연재 선수 때문이었다.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매트 위에만 올라서면 천상에서 날갯짓 하는 한 마리 새가 따로 없다. 어디 한 구석 예쁘지 않고 귀엽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TV에 공개된 손연재 선수의 발은 반전도 이런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슈즈를 벗은 발 사진에서 발톱은 모두 빠져 있고 발가락은 모두 휘어져 있었다. 그러면서 발목이나 아킬레스건은 부상을 달고 사는 편이라고 말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영광은 없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손연재 선수의 얘기처럼 운동선수들이 가장 번번하게 다치는 신체 부위 가운데 하나가 아킬레스건이다. 그만큼 신체 중에서 가장 약한 부위이면서도 운동선수들에게는 치명적인 부상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언급할 때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신은 인간의 신체 부위 중에서 왜 하필 아킬레스건을 가장 약하게 또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만들었을까? 신화 속에 그 해답이 있다.
▲사진> 구글 검색
해부학적으로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은 종골건이라고도 한다. 장딴지 근육을 하퇴삼두근이라고 하는데 하퇴삼두근은 비복근과 비목어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하퇴삼두근 아래쪽은 건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들이 합쳐져서 강한 힘줄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킬레스건이다. 쉽게 말하면 발뒤꿈치 바로 위쪽에서 피부를 통해 만져지는 부분이 아킬레스건이다. 이 힘줄에 부자연스러운 방향의 운동력이 작용하면 힘줄이 끊어지는 수가 많은데 봉합수술로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일반인과 달리 힘줄에 끊임없이 운동력을 가해야만 하는 운동선수들에게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상이면서 운동선수로서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나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2004)를 본 독자라면 아킬레우스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우스는 아주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아니 신이면서 인간이기도 했던 반신반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반신반인이 된 것은 델포이 신탁 때문이다. 델포이 신탁은 신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다. 그런데 델포이 신탁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장차 아버지를 능가할 운명이었다. 이러니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연모했던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테티스와 선뜻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신 중의 신이면서 난봉꾼이었던 제우스가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를 테티스의 짝으로 결정해 버렸다. 이런 이유로 아킬레우스는 신과 인간의 특성을 반반씩 갖고 태어난 것이다.
▲영화 '트로이' 중에서. 사진>구글 검색
신이었던 어머니 테티스는 이런 아들의 태생에 대해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처럼 아킬레우스를 불사의 존재 즉 신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테티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르는 강인 스튁스강에 아킬레우스의 몸을 담갔다. 그런데 테티스가 잡고 있었던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만은 강물에 닿지 않아 훗날 아킬레우스의 ‘유일하고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즉 어머니 테티스의 노력으로 거의 신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발뒤꿈치만은 인간의 신체였기에 어쩌면 이 부분 때문에 그는 죽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킬레스건의 유래가 된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가 ‘유일하고 치명적인 약점’이 된 것은 영화 ‘트로이’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영웅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은 해괴망측한 여성 편력으로 독자들의 배꼽을 잡기도 한다. 헤라클레스가 여장을 즐겼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지만 아킬레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그가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는 과정은 여장을 즐겼다는 헤라클레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또 델포이 신탁 때문이기도 했다. 아킬레우스가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신탁도 있었지만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도 함께 얻었다. 결국 신탁은 절대 틀린 법이 없었다. 반신반인이었기에 인간 아버지 펠레우스를 능가할 수 있었고 또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어머니 마음 어찌 그런가! 테티스는 아들의 운명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트로이 전쟁 참여를 막기 위해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여자로 변장시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사연은 이렇다.
▲영화 '트로이' 중에서. 사진>구글 검색
트로이 원정을 앞둔 그리스 사령관 아가멤논은 여러 왕국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모으게 했는데 당시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테티스가 아들 아킬레우스를 리코메데스 왕의 궁전에 보내 처녀로 변장하게 한 뒤 공주들 사이에 숨어 살게 했던 것이다. 이런 아킬레우스를 찾아낸 이는 트로이 전쟁의 또 다른 영웅 오디세우스였다.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의 또 다른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아킬레우스가 궁전에 숨어있다는 것을 안 오디세우스는 방물장수로 변장해 궁에 침입했다. 오디세우스는 공주들 앞에서 물건을 펼쳐 전을 벌였는데 그 물건 중에는 무기도 섞여 있었다. 왕의 딸들은 장신구 같은 것을 만졌지만 아킬레우스는 그만 무기를 만지고 만 것이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설득으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전쟁 영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장렬한 죽음과 함께.
하지만 트로이 전쟁에 참여해서도 아킬레우스의 여성과 관련된 일화는 계속된다.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전리품을 두고 불화를 빚은 것이다. 그 전리품이란 다름 아닌 브리세이스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결국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우스를 뺏기고 트로이 원정 참여를 거부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했던(?)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와 함께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헥토르의 동생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고 죽게 된다. 급소도 아닌 발뒤꿈치를 맞고 죽었다는 게 선뜻 이해할 수 없겠지만 신화는 유일하게 인간의 신체 부위였던 아킬레스건 때문에 아킬레우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아킬레스건’이 ‘유일하고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현대적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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