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북/최일남/1986년
1981년 5월28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는 ‘국풍(國風) 81’이 열렸다. ‘민족단합의 대합창’이라는 구호로 5일간 진행된 이 행사는 1만 3000여명의 연예인과 동아리 대학생들이 참가했고 행사장을 찾은 인원만도 1000만명에 달했다. 행사기간 동안 야간통행금지도 일시 해제할 만큼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에게 ‘국풍81’은 사활을 건 대규모 행사였다. 특히 대학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탈춤을 비롯한 풍물 동아리를 참여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신군부의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신군부 주연 관제언론 조연의 '거대한 민중문화 축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민화를 노린 국가 주도의 '놀자판'으로 판명되기에 이르렀다.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탄생한 제5공화국의 신군부 세력들에게 5월은 아킬레스건이자 정통성 없는 정권이 국민들의 망각을 간절히 염원한 아픈 역사의 상징적 계절이었다. ‘국풍 81’은 바로 신군부의 이런 염원을 담은 '거대한 관제 이벤트'였다. 특히 1970년대 이후 각 대학의 전통문화 동아리가 독재타도와 민주화 열기의 선봉에 섰던 만큼 신군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대학생들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풍81' 행사에 대학 내 탈춤이나 풍물패 동아리의 참여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풍 81’에 참여했던 대학 전통문화 동아리는 졸업생과 군복무 중이던 학생들을 동원한 위장극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부분의 대학 풍물 동아리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조직된 대학내 전통문화 동아리들은 사회변혁과 민주화 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근대화와 산업화 이후 팽배해진 전통문화는 고루하고 진부하다는 인식과 달리 어떻게 정치적으로는 변혁과 민주화와 진보의 상징이 되었을까. 최일남의 소설 <흐르는 북>에서는 우리 옛것을 둘러싼 삼대의 갈등을 통해 전통문화의 본질이 결코 진부하지도 결코 버려야 할 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들불처럼 솟아났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그 울림이 시나브로 심장에 전달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민노인을 중심으로 한 삼대의 갈등은 북이 그 단초를 제공한다. 평생을 북을 치며 가족을 버리고 방랑하다 예술인으로 산 민노인과 그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 때문에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들,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의 광대로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할아버지와 소통을 꾀하고 있는 손자. 삼부자가 겪고 있는 세대간 갈등은 1980년대를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를 에둘러 보여주는 소재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북으로 대표되는 전통문화가 아버지 세대에서 진부한 가치로 전락하는 데는 역사적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극복하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문화는 아픈 과거의 기억일 뿐 보존과 계승의 가치는 그리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근대화가 서구화와 동일시 되면서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미국의 저속한 문화 이식은 이런 전통문화에 대한 편견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근대화 주도세력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이었다는 것은 일제의 조선문화말살정책이 여전히 재고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었음을 의미한다.
친일파와 쿠데타 세력에 의한 근대화 과정에서의 청산하지 못한 왜색문화에 미국의 퇴폐적인 문화까지 이식되면서 전통문화의 복원은 진부한 가치로의 회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가치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음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손자 성규가 봉산탈춤 발표회에 할아버지의 북장단을 참여시키고 어느날 데모하다 잡혀갔다는 설정은 이런 시대적 배경의 상징일 것이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심리적으로 격리시키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하려는 모순을 저도 이해합니다. 노상 이기적인 현실에의 집착이 그걸 누르는 데 대한,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의 감각까지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고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 나이는 또 할아버지의 생애를 이해합니다. 북으로 상징되는 할아버지의 삶을 놓고 아버지와 제가 감정적으로 갈라서는 걸 비극의 차원에서 파악할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광대 기질에 철저하여 가족을 버린 건 비난받아야 할 일이나, 예술의 이름으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름대로의 예술을 완성했니?"
"그건 인식하기 나름입니다. 다만 할아버지에게서 북을 뺏는 건 할아버지의 한을 배가시키고 생의 마지막 의지를 짓밟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만은 갖고 있습니다." -<흐르는 북> 중에서-
어쩌면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세력들에 의해 주도된 근대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근대화 이전의 과거 세대와 근대화 이후 미래세대가 결합해 끊어진 전통문화의 맥을 복원함으로써 현실과 이상, 안정과 변혁의 세대간 갈등의 화합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즉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복구를 통해 세대간 갈등의 봉합은 물론 과거와 현재의 오점들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장농 속에 감춰둔 북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북으로 대표되는 전통문화가 결코 진부한 가치가 아닌 진보와 미래지향적 가치의 근원임을 되새기고 있는 소설이 바로 <흐르는 북>이다.
제1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에서 '흐르다'는 표현은 세대간 단절이 아닌 연속성과 화합의 의미이기도 하면서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왜곡된 역사에 대한 정화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여전히 학교교육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전통문화, 아직도 전통문화는 진부하다는 편견, 역사는 흐른다는 간단한 진리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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