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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모성애의 정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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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천(愛泉)/김채원/1984년

 

이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는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으면 젓가락을 채 놓을 새도 없이 쓰러진 엄마, 쓰러진 엄마 품에는 어린 딸이 안겨있었다. 무너지는 건물로부터 딸을 보호하려는 듯 엄마는 자신의 머리로 대신 충격과 고통을 감내하였나 보다. 2008년 중국 쓰촨 대지진 당시 공개된 이 사진은 모성애의 실체를 확인한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도대체 모성애가 뭐길래.

쓰촨성 대지진 당시 이 사진 말고도 모성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연은 또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대는 한 아이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조대를 놀라게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아이의 생존만이 아니었다. 발견 당시 아기 엄마는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벽을 지탱한 채 품 속에 아이를 넣고 있었다고 한다. 아기 옆에 놓인 엄마의 휴대폰에는 "사랑하는 아가, 만일 네가 살아남게 된다면 엄마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을 꼭 기억하렴."이라는 문자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제 아무리 과학이 생명의 비밀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 둘 파헤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이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면 바로 모성애일 것이다. 여자가 아니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가 되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르는 인간의 본성, 정작 어머니 본인도 그 실체에 대해서는 설명가능한 어떤 단어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 작가 김채원은 그런 모성애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지금은 어머니가 된 '소자'라는 여성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과연 독자들은 '소자'의 성장통을 보면서 모성애의 본질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자의 성장통은

여성의 심장에 모성애라는초자연적인 힘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지는 과정

 

흔히 볼 수 있는 사내아이의 성장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커튼 뒤에서 숨죽이고 비밀스런 풍경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듯이. 여전히 우리의 눈과 뇌는 삼엽충 화석처럼 수억년 동안 딱딱하게 굳어져 있을 테니까. 상상 속의 분홍색 커튼 뒤에 숨겨진 비밀도 사내아이의 그것과 별찬 차이가 없지만 굳이 호기심을 발동시키려 하는 것은 균형이 깨진 사회의 속물적 근성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 김채원은 '그래 여자아이의 성장통은 사내아이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소자의 성장 과정에서 앓고 있는 성장통은 여자가 되는 과정이고 어머니가 되는 과정이며 종국에는 여성의 심장에 모성애라는 초자연적인 힘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지는 과정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김채원의 소설 <애천>은 마치 뭇남성들에게 들려주는 여자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자는 검은 코트를 입은 부인이 보호자인 듯 자연스럽게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니다. 그 날 극장에서는 '애천'이 상영되고 있었다. 소자는 여러 해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주제음악을 들으며 언젠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분수에 동전을 넣어보리라 상상한다. 중학교 입시에 낙방한 소자의 일상은 늘 이렇게 영화와 함께다. 소자는 영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소자는 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지금의 과정을 건너뛰어 여자가 되는 상상을 한다. 

 

소자는 여느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2차 성징을 겪으면서 자기만의 비밀을 차곡차곡 채워간다. 그 과정에서 소자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기도 한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은밀한 행위를 하기도 하고 동네 어린 계집아이의 치마 밑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강간당하는 상상까지 한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내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몽글하게 올라오고 있는 가슴을 누군가 한없이 만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조선옷 치맛말기로 결코 아무도 알 수 없도록 가슴을 꽉 동여매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도처에 비밀은 속삭대고 있었다. 형자가 생리를 시작한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애천> 중에서-

 

언니 형자의 비밀은 곧 자신의 그것이기도 했다. 이런 소자에게 또 하나의 비밀이 생긴다. 오빠 승일의 출생에 관한 비밀이다. 소설 전반에는 영화 '애천'의 주제곡이 잔잔하게 흐른다. 영화 '애천'의 원제는 1954년 개봉된 'Three Coins In The Fountain'이다. 로마에 여행온 세명의 미국 여인들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 사랑을 빈 끝에 멋진 남자와 맺어진다는 이야기다. 소자에게 '애천'의 주제곡이 익숙했던 것도 오빠 승일이 아코디언을 연주해가며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소자에게 하나 더 얹혀진 비밀, 승일의 출생에 관한 비밀은 저자가 모성애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여동생이

오빠를 수태하는

충격적인 엔딩의 진실

 

머리 위로 무수히 날아가는 총알을 보며 생각했었지. 저 총알과 내가 같다고 말이지. 저 총알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르고 쏘아지는 방향대로 그냥 날아가는 것이니까. 물론 쏜 사람은 적을 향해 쏜 총알이라는 걸 알겠지만 말이야. 바로 그것처럼 나 역시 내가 왜 여기서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지 모르는 거야.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전우들이 순식간에 시체로 뒹굴고 하는데, 그러나 신은 내가 어째서 태어나서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았지. 단지 총알이 모르듯이 그걸 내가 모르고 있는 것분이라는 생각을 했었어. -<애천> 중에서-

 

승일은 아버지가 다른 오빠다. 먼친척 집에서 키워지다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채 어머니에게로 온 승일은 17살에 한국전쟁 소년병으로 참전해서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자매에게 승일은 같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빠의 대신이었다. '쓰리 코인즈 인 더 화운티 뎃즈 와이……'를 즐겨부르던 승일은 어느 날 회사 체육대회 도중 졸도하여 죽고만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승일은 고독병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에서 승일의 존재와 출생의 비밀 그리고 사인일지도 모를 고독병은 단순히 승일이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개인사의 결과물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충격적인 장면을 볼때 승일의 고독병은 여성들이 떠안아야 할 사회의 고통인 동시에 모성애의 힘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적 의미이기도 하다. 승일으리 고독병은 고독한 사회로 치환되고 고독한 사회는 온갖 부정적 언어들이 총망라된 인간사회의 본래적 모습이나 다름없다. 소자가 성장과정에서 보고 쌓아두었던 이 비밀들은 어머니가 되어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베일을 벗게 된다.

 

소자는 손을 내밀어 아직도 어둠 속에서 떠돌고 있을 듯한 그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승일아라고 자신의 아들처럼 조그맣게 부르며, 그의 손을 잡아 가슴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투둑, 하고 끓어오르던 피가 터져버리는 느낌을 체득했다. -<애천> 중에서-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해왔던 오빠에 관한 비밀과 고독한 삶을 살다 죽은 오빠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오빠를 수태하는 상상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이것은 어머니가 돼서야 비로소 갖게 되는 모성애를 형상화한 것이다. 승일의 고독병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온갖 어두운 부분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가슴으로 보듬어 줄 수 있고 그게 바로 모성애라는 것이다. 영화 '애천'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도 모성애의 본질이 사랑과 연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결코 세속적이 아닌 그런 사랑 말이다.

 

어머니가 된 소자의 상상 속에서 그 아이(승일)가 자꾸만 동전을 집어 던지고 있는 샘물은 세상에서 어머니만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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