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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호루스의 두 형태, 연장자 호루스와 어린 호루스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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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Horus)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신으로 일반적으로 태초의 다섯 신 중 마지막으로 태어난 연장자 호루스와 삼촌인 세트를 물리치고 세상의 질서를 회복한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어린 호루스 두 신을 지칭한다. 호루스는 새로 상징되는 신들 중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 호루스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다양한 비문에서 매우 다르게 묘사되어 진짜(?) 호루스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호루스’라는 이름은 ‘멀리 있는 자’라는 뜻의 이집트어 ‘호르(Hor)’의 라틴어 형태로 하늘의 신으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매의 신 호루스. 출처>구글 검색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의 형제인 연장자 호루스는 영어로 위대한 호루스(Horus the Great) 또는 이집트어로 하르웨르(Harwer)와 하로에리스(Haroeris)로 알려져 있다. 어린 호루스로 알려진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은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그리스 신 하르포크라테스로 변신했다. 하르포크라테스는 ‘어린 호루스’라는 뜻이지만 이집트 신 호루스와는 달랐다. 하르포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침묵과 비밀의 신이자 비밀을 지키는 신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날개 달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어린 호루스는 주로 태양 뿐만 아니라 달과도 관련된 강력한 하늘의 신이었다. 그는 이집트 왕족의 수호자이자 잘못에 대한 복수자, 질서의 수호자, 두 땅 즉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통합자였으며 세트와의 전투를 바탕으로 이집트 통치자들이 전쟁 전에 정기적으로 소환하는 전쟁 후에는 그를 경배하는 전쟁의 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루스는 태양신 라와 결합해 라-하라크테가 되었다. 태양신 라-하라크테는 낮 동안 하늘을 항해하며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이중 왕관을 쓴 매 머리 남성으로 묘사되었다. 라-하라크테의 상징은 호루스의 눈과 매이다.

 

연장자 호루스는 세상이 창조된 직후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가 결합해 태어난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신들 중 하나이다. 그의 형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함께 대지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호루스는 하늘 특히 태양을 다스린 태양신이었다.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서는 호루스가 하토르의 아들인 반면 또 다른 버전에서는 하토르의 아내이며 때로는 호루스의 어머니, 아내, 딸이기도 하다. 이집트에서 알려진 최초의 신성한 이미지 중 하나는 태양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호루스를 상징하는 범선을 탄 매이다. 호루스는 또한 창조신이자 자비로운 보호자로 묘사된다. 이집트 종교에는 결국 호루스라는 신에 흡수된 매 신(조류 신)이 있었다.

 

호루스의 눈. 출처>구글 검색

 

상이집트의 동쪽을 의인화한 신 두난위와 같은 일부는 초기 역사에 등장하는 반면 몬투와 같은 다른 일부는 나중에 유행했다. 호루스와 두난위의 초기 연관성은 학자들에 의해 도전을 받았지만 나중에 호루스-아누비스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두난위는 상이집트의 18번째 놈(Nome. 고대 이집트의 행정구역)의 지역신이었고 반면 호루스는 전국적으로 널리 숭배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이난나처럼 호루스의 형상도 두난위처럼 지역 신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호루스는 이집트의 종교 발전 초기에 전국적인 신으로 완전히 현실화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즉 호루스는 이집트 판테온의 가장 초기의 신들 중 하나였다. 그의 이름은 왕조 시대 초기부터 입증되었고 나르메르 석판(Naemer Palette. 기원전 31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의 석판)에 ‘습지 거주자들’을 막은 것으로 기록된 매 신이 아마도 호루스였을 것이다. 이집트 왕조 이전 시대 통치자들은 ‘호루스의 추종자’로 알려졌는데 이는 이집트 역사상 훨씬 더 이른 시기에 호루스 숭배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멀리 있는 자’로서의 그의 역할에서 호루스는 ‘멀리 있는 여신’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 임무는 태양신 라에서 나갔다가 돌아와 변신한 하토르 및 기타 다른 여신들과 관련이 있었다. 한다. 태양과 달은 밤낮으로 세상을 지켜보는 호루스의 눈으로 여겨졌지만 문제가 있거나 의심스러울 때 그들에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매로 상상한 호루스는 라에서 멀리 날아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위로를 가져올 수 있었다.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3150년~기원전 2613년)부터 호루스는 이집트 왕 즉 파라오와 연결되었다. 물론 나중에 통치자들은 스스로를 어린 호루스와 연관시켰다. 초기 파라오의 상징인 세레크(Serekh. 궁전 정면의 전망과 왕실 앞뜰의 평면도를 결합한 장식용 비네트)는 횃대에 앉아있는 매로 묘사되었다. 그 결과 호루스에 대한 봉헌은 이집트 전역에 퍼졌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호루스를 기리는 전통이나 의식이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는 호루스에 대한 다양한 별명과 역할을 낳았으며 결국 그는 연장자 호루스에서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자식 즉 어린 호루스로 변모하게 되었다.

 

어린 호루스. 출처>구글 검색

어린 호루스는 때때로 나이 많은 신 즉 연장자 호루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언급되지만 빠르게 그를 가리고 그의 속성 중 많은 부분을 취했다. 이집트를 통치한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23년~기원전 30년)에는 연장자 호루스가 어린 호루스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어린 호루스 동상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어렸을 때 삼촌 세트로부터 숨어 지내야 했던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루스는 자신이 어렸을 때 고통을 겪었고 연약하고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았기 때문에 고통받는 인류를 돌보겠다는 신들의 약속을 대효하게 되었다. 호루스는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년~119년. 고대 로마의 그리스 철학자)가 ‘이시스의 둘째 아들’이라고 불렀던 그리스의 하르포크라테스가 되고 로마 세계에서도 계속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이러한 형태의 호루스였다. 이시스 숭배는 로마에서 가장 대중적인 신비 숭배로 기독교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하르포크라테스는 고대 로마 미술에서 어머니와 함께 묘사되는 신성한 아들이었다.

 

호루스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화 중 하나이자 이시스 숭배를 탄생시킨 오시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 이 이야기는 세상이 창조된 직후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그들이 만든 낙원을 통치하면서 시작된다. 아툼(라)의 눈에서 남자와 여자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미개하고 야만적이었다. 오시리스는 그들에게 문화, 신을 기리는 의식, 농업 기술 등을 가르쳤다. 이 시대 사람들은 모두에게 주어진 이시스의 선물로 인해 남성과 여성 모두 평등했다. 음식은 풍족했고 충족되지 않는 욕구나 필요는 없었다. 오시리스의 동생 세트는 그를 질투하게 되었고 세트가 그의 아내 네프티스가 자신을 이시스의 모습으로 변신해 오시리스를 유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러한 시기심은 증오로 바뀌었다. 그러나 세트는 네프티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오시리스에게 복수를 집중했다. 세트는 오시리스를 속여 형의 정확한 사양에 맞는 관에 눕혔고 오시리스가 관 안으로 들어가자 관 입구를 봉하고 나일강에 던졌다.

 

관은 강을 따라 떠내려갔고 결국 비블로스(지금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근처) 해안에 있는 능수버들나무에 걸렸다. 그곳의 왕과 왕비는 그 아름당무과 달콤한 향기에 감탄했고 나무를 잘라 궁전의 기둥으로 삼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세트는 오시리스의 권력을 찬탈하고 네프티스와 함께 이집트를 통치했다. 그는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물려준 선물을 무시했고 그 땅은 가뭄과 기근을 겪었다. 이시스는 세트가 그를 추방한 곳에서 오시리스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다녔다. 마침내 이시스는 비블로스의 나무기둥 안에서 그를 발견하고 왕과 왕비에게 부탁해 집으로 데려왔다.

 

세티 1세 사원의 호루스 부조. 출처>구글 검색

오시리스는 이미 죽은 상태였지만 이시스는 자신이 오시리스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동생 네프티스에게 약초를 캐러 가는 동안 세트로부터 남편의 시체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세트는 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으러 갔다. 오시리스 시체를 지키고 있던 네프티스를 본 세트는 그녀를 속이고 오시리스 시신을 조각 내어 나일강에 뿌렸다. 이시스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남편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는 겁에 질렸다. 네프티스는 언니가 없는 동안의 일을 소상하게 얘기해 주었다. 두 자매는 오시리스 시신을 다시 찾아와 물고기에게 먹힌 성기를 제외하고는 다 다시 짜맞췄고 급기야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다. 오시리스는 부활했지만 더 이상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산 자들을 통치할 수 없었다. 그는 지하세계로 내려가 그곳에서 죽은 자들의 군주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나기 전 이시스는 자신을 매로 변신시켜 그의 몸 주위를 날아다니며 그의 씨앗을 끌어들여 호루스를 임신하게 되었다. 오시리스는 지하세계로 떠났고 이시스는 세트로부터 자신과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의 삼각주 지역에 숨었다.

 

이시스는 유난히 긴 진통으로 힘든 임신을 견디고 삼각주 늪지대에서 홀로 호루스를 낳았다. 그녀는 세트와 그의 악마들로부터 자신과 아들을 덤불에 숨겼고 치유의 여신 셀케트가 그녀에게 준 일곱 마리 전갈 경호원과 함께 밤에만 음식을 먹으러 나갔다. 셀케트(다른 신화에서는 네이트라고도 함)는 이시스가 밖에 나가는 동안 호루스를 지켜 보았다. 이시스와 셀케트는 호루스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삼촌에게 도전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때까지 그를 양육하고 교육했다. 호루스와 세트 사이의 전투에 대한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제20왕조(기원전 1090년~기원전 1077년)의 문헌인 ‘호루스와 세트의 경쟁’으로 이 문헌은 강력한 아홉 신들인 엔네아드(Ennead) 앞에서 벌어지는 법적 재판을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호루스는 아홉 재판관 중 한 명인 세트에게 오시리스로부터 왕권을 빼앗았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대부분의 신들은 호루스의 손을 들어 주지만 최고신인 라는 호루스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으며 세트가 더 나은 통치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루스와 세트는 어느 쪽이 가장 잘 통치할 수 있는지를 두고 전투에서 경쟁해야 했다. 이 전투 과정에서 호루스는 한 쪽 눈을 잃고 세트는 거세되지만 결국에는 호루스의 승리로 끝난다. 이 전투는 8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라는 호루스가 왕좌에 오를 권리를 계속해서 거부한다. 한편 이시스는 아들과 세트의 통치 하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해 세트의 궁전 앞에서 울기 시작한다. 세트가 나와서 그녀를 보고는 이유를 묻는다. 이시스는 어떤 사악한 남자 즉 그녀의 남편 동생이 남편을 죽이고 그의 땅을 빼앗고는 외아들의 생명을 노리고 전갈들이 살고 있는 늪과 덤불로 추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트는 이시스의 이야기를 듣고는 분노하며 그 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는 자기가 가서 이 사람을 찾아 이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여자와 아들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겠다고 맹세한다. 이시스와 다른 신들은 변장을 풀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고 세트는 자신의 말대로 호루스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 후 세트는 이집트 국경 너머의 사막 땅으로 추방되고 호루스는 어머니와 이모 네프티스를 배우자로 삼아 아버지의 왕좌를 물려받게 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재판은 좌절한 신들이 호루스에게 유리한 분쟁의 중재자인 현명한 네이트 여신에게 의지할 때까지 80년 동안 지속된다. 그녀는 세트에게 사막 지역의 통치권을 주고 호루스는 비옥한 나일강 계곡을 다스릴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세트가 척박한 사막을 다스리는 대신 두 명의 외국 여신 즉 시리아의 전사 여신 아나트와 페니키아의 하늘의 여왕 아스타르테를 배우자로 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신화는 세트가 사막 지역 뿐만 아니라 외국 땅의 사람들과 어떻게 연관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세트를 물리치고 질서를 회복한 호루스는 호루-세마-타위(Horu-Sema-Tawy. ‘두 땅의 통합자, 호루스’라는 뜻)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부모의 정책을 복원하고 나라를 부흥시키며 지혜롭게 다스렸다. 이러한 이유로 제1왕조부터 이집트 왕들은 호루스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대관식 때 통치할 호루스 이름을 선택했다. 오시리스는 질서를 확립한 후 지하세계로 내려간 첫 번째 이집트 왕인 반면 호루스는 세트에 의해 전복된 질서를 회복하고 이집트를 혼돈에서 조화로 일으킨 왕이었다. 그래서 이집트 왕들은 자신들을 살아 있을 때는 호루스, 죽어 있을 때는 오시리스와 동일시했다. 그들의 통치 기간 동안 그들은 이시스의 보호를 받는 호루스의 물리적 현현이었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의 다른 많은 왕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1274년 카데쉬 전투 이후 ‘펜타우르의 시’(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에 대한 람세스 2세의 군사적 승리에 대한 공식 이집트 기록)에서 이시스와 호루스의 보호를 언급한 것으로 유명하다.

 

호루스는 이집트의 다른 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숭배되었다. 신전은 신을 위한 집으로 지어졌고 그의 동상은 대제사장만이 참석할 수 있는 성소 내부에 배치되었다. 호루스 신전의 제사장들은 호루스와 결합하고 그들의 어머니 이시스로부터 보호를 주장했기 때문에 항상 남성이었다. 수행 사제들은 다른 신전과 마찬가지로 갈대밭의 내세를 반영하기 위해 건설된 사원 단지를 관리했다. 사원의 반사 연못은 신성한 뱃사공 흐라프헤프(Hraf-hef. ‘자신을 뒤돌아보는 자’라는 뜻)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영혼만이 노를 저어 건너가는 백합 호수(또는 꽃의 호수)로 알려졌다. 신전은 사후 세계의 궁전이자 신의 집이었고 꽃으로 장식된 안뜰은 호루스의 정원이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거나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꿈을 해석할 때 호루스 신전의 안뜰을 방문한다. 그들은 또한 조언, 징조의 해석, 의료 지원, 결혼 상담, 악령이나 귀신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호루스 신전을 방문한다. 호루스 숭배 중심지는 호루스가 어릴 때 숨었던 델타 지역의 켐과 호루스가 눈을 잃은 장소인 페였다. 상이집트에서 호루스는 에드푸와 콤 옴보스에서 하토르 및 그들의 아들 하르솜프투스와 함께 숭배되었다. 에드푸는 매년 신성한 매의 대관식을 열고 있다. 다른 왕실 축제와 마찬가지로 이 의식은 왕의 권한 부여와 그의 통치권 회복과 관련이 있었지만 헤브 세드 축제(Heb Sed Festival. 파라오의 지속적인 통치를 기념하는 의식)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호루스의 보호를 원하는 사람들은 호루스 부적을 몸에 지니기도 했다.

 

호루스는 죽은 자의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는 네 아들을 통해 사후 세계와 연결되었다. 이 네 아들은 네 방향을 상징하며 각각의 신은 여신의 보호를 받았다. 동쪽의 신이자 위를 보호하며 네이트 여신의 보호를 받는 자칼 신 두아무테프, 폐를 보호하고 북쪽을 상징하며 네프티스 여신의 보호를 받는 개코원숭이 신 임세티, 간을 보호하고 남쪽을 대표하며 이시스 여신의 보호를 받는 인간 형상의 신 케베세누에프, 창자를 보호하고 서쪽을 상징하며 셀케트 여신의 보호를 받는 매의 신 하피 등이 그들이었다. 이 장기들은 카노푸스 단지에 보관되었다. 호루스는 떠난 이들과 남은 자들의 보호를 위해 장례식 때 소환되었다.

 

호루스 숭배는 오시리스 신화가 대중화되었을 때 이미 고대에 이루어졌으며 이 신화는 오시리스와 이시스, 호루스 숭배를 국가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시스 숭배는 무역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로 전파되었고 3~5세기경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이 되었다. 호루스는 어린 호루스 형태로 이시스와 함께 전파되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기독교 도상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시스 숭배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은 기독교가 단순히 재포장된 이시스 숭배이거나 호루스가 부활한 예수의 원형이라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집트의 종교적 신념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개념은 거부한다. 위대한 신이자 최초의 왕인 오시리스조차도 죽은 후에 지상의 군주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죽은 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이승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종교적 신념은 그것이 훨씬 더 긴 영원한 여행의 일부분일 뿐이며 이미 내세로 떠난 사람은 다시 이승에서 환영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되었다. 이집트인들의 내세는 이승에서의 삶의 거울과도 같았다. 이승에 두고 온 사람이나 물건은 모두 갈대밭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요컨대 호루스는 네 아들을 통해 죽은 자를 돌보고 죽은 자들의 친구가 되었지만 주로 산 자들의 신이었다. 그는 필요할 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멀리 있는 신이었고 믿을 수 있는 친구였고 배려하는 형제였으며 보호자였고 삶의 위험을 헤쳐나가는 자들의 안내자였다. 그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 문화의 다른 신들과 이러한 자질과 속성을 공유하지만 이집트인들에게 호루스는 그들 자신의 신이었기 때문에 더 특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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