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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이집트 최고신 아문에 필적한 누비아 전쟁의 신, 아페데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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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데마크(Apedemak)는 고대 누비아(오늘날 수단 북부와 이집트 남부의 나일강 계곡을 중심으로 한 지역)와 쿠시(누비아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 기원전 780년경~기원전 350년경) 판테온의 주요 신이었다. 종종 인간 몸통에 사자 머리를 가진 남성으로 묘사되는 아페데마크는 쿠시 왕국의 부유한 대도시 메로에 사람들이 숭배하는 전쟁의 신이었다. 아페데마크에 대응하는 이집트 신은 없었다. 전쟁의 신으로서 아페데마크는 메로에 사람들에게 군사력, 군사적 정복, 제국의 상징이었다. 아페데마크는 또한 나파타 시대(기원전 900년경~300년경) 국가가 후원한 이집트 신 아문(Amun)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동일한 수준의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누비아 전쟁의 신 아페데마크. 출처>구글 검색

 

사자 상감 장식은 원래 매장지에서 매우 존경받는 개인을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초기 케르마(수단 북부의 고대 지명으로 기원전 3천년경부터 번영했던 쿠시의 중심지) 사자 형상이 진화해 아페데마크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케르마인들이 후기 나파타 시대와 메로에 시대처럼 봉헌된 신전을 갖춘 신들로 그들을 숭배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전설, 구전, 민속의 상징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아페데마크는 주로 메로에 시대에 등장한다. 아페데마크의 이전 신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신은 예술과 부적에서 사자가 중요했던 케르마 문화의 신화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의인화된 방식으로 묘사된 아페데마크는 다른 나일강 유역 문화의 다신교 전통이 아닌 정령숭배 전통에서 숭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기원전 3세기까지 아페데마크는 상 누비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페데마크에게 봉헌된 수많은 신전은 수도 메로에 남쪽의 부타나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더 북쪽 지역에 그를 숭배하는 장소가 없다는 것은 그가 남쪽에서 기원한 신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페데마크는 주로 전쟁의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정복과 군사적 기량의 신으로도 여겨진다.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의 사자 사원과 나카의 성역에서 발견된 부조에서 아페데마크는 가죽 갑옷이나 흉갑을 착용하고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데 이는 역사 전반에 걸쳐 누비아인과 관련된 무기이다. 다른 표현들은 아페데마크가 적을 죽이거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적의 사슬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페데마크는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부조에 등장하기 때문에 주로 전쟁의 신으로서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또 아페데마크는 창조신이자 풍요의 신으로도 간주된다.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에 있는 사자 사원의 한 찬송은 그를 ‘무사히 깨어난 자’, ‘생명의 주인’ 등의 이름으로 모든 인간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신으로 부르고 있다이 역할에서 아페데마크의 또 다른 예로는 나카 성역의 부조가 있다. 여기서 아페데마크는 풍요의 상징인 곡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록 아페데마크가 이런 역할로 등장했다는 증거나 그렇게 명확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 두 중요한 신전에서 일부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페데마크 나카 신전. 출처>구글 검색

 

제국의 메로에 신으로서 아페데마크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고 합법화하는 과정에도 소환된다. 여러 부조는 왕실 임명식, 선거, 대관식 과정에 있는 왕과 왕비를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아페데마크는 그들의 팔꿈치를 만져 새로운 왕족으로 임명한다. 아페데마크는 또한 전사, 용기, 왕권 및 왕족 그리고 그의 배우자인 달의 여신인 아메세미(Amesemi)와도 관련이 있었다.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년~기원전 1069년)에는 이집트 신 아문이 누비아 최고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메로에 시대에 아페데마크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아문은 토착 아페데마크와 동등하거나 더 중요한 신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문의 물 및 풍요와의 연관성(나일강의 범람과 관련된) 또한 아페데마크와 같았다. 아문과 함께 아페데마크는 기둥 부조와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 신전 내부에서 볼 수 있듯이 왕권을 부여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임명하는 신이었다. 아페데마크와 아문이 누비아 판테온에서 비슷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두 신이 판테온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두 신 사이의 일종의 긴장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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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서부 부타나 지역에는 이 신에게 봉헌된 메로에 신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카, 메로에 및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 등에 아페데마크 신전이 있다. 메로에 신전의 아페데마크에 관 정보도 곧 나올 예정이다. 현재 연구되고 출판된 두 주요 신전은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의 사자 사원과 나카의 아페데마크 성역이다. 그러나 일부 문학 출처에서 언급된 것처럼 아페데마크 숭배가 수행되는 비공식적인 장소가 더 많았을 것이다.

 

뱀으로 묘사된 아페데마크. 출처>구글 검색

 

아페데마크의 가장 초기 모습은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의 사자 사원에 있다. 누비아 아르네카마니 왕의 통치 기간인 기원전 3세기 후반에 건설된 이 신전은 아페데마크에 관한 최초의 표현이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사원 단지에는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지만 그의 묘사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아페데마크가 주요 신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북쪽 벽을 따라 있는 부조에는 아페데마크가 양 머리의 아문, 사티스, 호루스, 이시스 등 다른 누비아 및 이집트 신들과 함께 등장한다. 잘 보존되지 않은 서쪽 벽에는 아페데마크로 인식할 수 있는 인물의 일부만 포함되어 있다. 신전 일부 기둥이 일반적인 사자 머리 형태의 아페데마크를 포함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완전한 사자 형태의 아페데마크일 수도 있다. 벽에 새겨진 여러 찬양은 누비아의 부타나 지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일부 학자들에게 이곳이 아페데마크 숭배가 시작된 곳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신전의 다른 찬송들은 창조신이자 풍요의 신으로서의 아페데마크 역할을 암시한다.

 

나타카마니와 왕과 아마니토레 여왕 통치 통치 기간인 기원전 1세기경에 세워진 나카 성소는 카르툼(수단의 수도)에서 약 1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지에는 많은 건축물과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무사와라트 에스 수프라의 이전 사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성소에서 아페데마크는 활과 화살통을 들고 나타나 사냥꾼이자 전사의 신으로서의 아페데마크를의 속성을 강조한다. 아문과 아페데마크의 출현은 이 지역의 신들 간의 공통 통치 의식을 암시한다. 이 유적지에서 아페데마크에 대한 두 가지 특이한 표현은 많은 논란의 원인이 되었다. 벽의 측면을 따라 아페데마크는 네 개의 팔과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사자 같은 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기둥에는 아페데마크가 인간 몸통과 사자 머리를 가진 커다란 뱀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액막이 특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아페데마크는 인간 몸통에 사자 머리를 가진 남성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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