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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김동인의 <배따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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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동생의 불륜? 그는 왜 배따라기를 불렀을까?

김동인/배따라기/1921년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1인 프로젝트 그룹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이다. 배따라기의 유일한 멤버는 이혜민이다. 왜 하필 그는 1인 프로젝트 그룹 이름을 '배따라기'라 했을까? 가수 이혜민은 몰라도 그가 만든 꽤 유명한 대중가요들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이 의문을 해결했다. <삼포 가는 길>, <59년 왕십리>, <호랑나비>, <비와 찻잔 사이>, <아빠와 크레파스>, <애증의 강>, <포플러나무 아래>...가수라는 직업적 의미와 사랑을 갈구하는 그리움이 표현된 가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룹명이다.

'배따라기'는 평안도 민요의 하나로 '배를 떠나 보내며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라고 한다. 원래 배따라기는 전국 해안 지방마다 널리 퍼져있어 뱃사람들의 고달픈 생활을 노래했다고 하나 현재는 평안도 '배따라기'만 남아있단다. '배를 떠나 보낸다'는 말에서 막연한 그리움과 회한이 느껴진다.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라는 노래도 있잖은가!

우리말로 된 최초의 단편소설

스스로 '조선말과 조선글로 씌여진 최초의 단편소설'이라고 자부할만큼 아름다운 우리말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는 평안도 민요 '배따라기'를 모티브로 한 남자가 뱃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을 보여주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만큼은 익히 들어봤을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의 대표 단편소설이다.

'하늘에도 봄이 왔다. 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만큼 하늘은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엉기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20세기 한국소설] 김동인의 <배따라기> 중에서-

대동강 뱃놀이 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던  '영유 배따라기', 장고 소리도 기생의 노래도 없었지만 '나'(작중 화자)는 익히 알고 있었다. '배따라기' 가락이 들려주는 속절없는 애처로움을...그래서 다가가 배따라기를 부르고 있는 그 남자의 사연을 들어 보았다. 배따라기에는 한 남자의 잘못된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형수와 시동생의 불륜? 쥐 때문에

그 남자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잼뱅이었다. 아니 요즘으로 치면 가정폭력을 일삼는 정신과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 그였다. 어쩌면 그는 의처증 환자였다. 아내의 살가운 성격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그 남자는 아내와 자신의 동생을 의심하고 있었다. 형수와 시동생의 불륜? 요즘에도 이런 막장 드라마는 쉬 쓰지 못할 것이다. 과연 사실이었을까?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어느날 장에 간 그 남자는 아내에게 선물해 주면 기뻐할 생각에 거울을 하나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 순간 그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오해와 불행을 자초하고 만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남자가 본 것은 저고리가 풀어진 동생과 배꼽 아래로 치마를 늘어뜨린 아내의 모습이었다. 안그래도 아내와 동생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던 차에 그는 또다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말았다. 아내와 동생의 쥐를 잡고 있었다는 해명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후 어둠이 깔리고 그는 불을 켜기 위해 성냥을 찾고 있었다. 여기저기 뒤적여도 성냥은 보이지 않았다. 옷뭉치를 들추니 쥐 한 마리가 후다닥 뛰어나오면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후회하기에는 너무도 늦어 버렸다. 아내는 바닷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이를 안 동생은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는 동생을 찾기 위해 뱃사람이 되어 떠돌아 다니며 '배따라기'를 불렀던 것이다. 그가 부른 '배따라기'의 맨 마지막은 이러했다.

'밥을 빌어서
죽을 쑬지라도
제발 덕분에
뱃놈 노릇은 하지 마라
에~야, 어그야지야'
-[20세기 한국소설] 김동인의 <배따라기> 중에서-

내선일체를 주장했던 김동인

<배따라기>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아니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로 믿고 살아왔던 나에게 김동인이 친일파였다는 기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의 역사에 대한 무지함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역사 청산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김동인은 소설 <백마강>을 통해 조선 젊은이들의 징용을 선동하고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는 내선일체를 주장했다고 한다. 국민정서와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여전히 그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동인도 <배따라기>의 그 남자처럼 평생 연유 배따라기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역사와 그 역사에 조금이나마 동조했던 이들의 진심어린 반성은 아름다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받았을 감동을 제대로 지켜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고 역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씁쓸함을 뒤로 한 채 <배따라기>의 첫 장을 다시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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