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죽음의 신 헬, 헬조선으로 부활하다

북유럽 신화▶작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폭탄주 경험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취업 걱정에, 업무 스트레스에 탈출구라고는 술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기업들은 구인란에 허덕이는데 흥청망청 놀고 있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라며 혀를 차는 기성세대들도 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명 꼰대들의 자기 합리화일뿐이다. '헬조선(Hell朝鮮)'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우리 사회가 재산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신분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술은 청년들이 이 지옥같은 한국 사회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북유럽 지하 어딘가에 있을 죽음의 신 헬(Hel)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하다니 못내 씁쓸할 뿐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헬(Hel)은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 중국 신화의 서왕모처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다. 헬은 북유럽 신화의 대표적인 트릭스터인 로키(Loki)와 거인 앙그르보다(Angrboda)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늑대 펜리르(Fenrir)와 뱀 요르문간드(Jormungand)와는 남매 지간이다. 이들은 신들의 황혼(라그나로크) 때 신들과 최후의 일전을 벌일 것이다. 

헬의 이름에는 '숨는 것'이란 의미가 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헬(Hell, 지옥)과 어원이 같다. 원래 헬은 요툰헤임에서 오빠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오딘이 향후에 엄청난 불행과 재앙을 초래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펜리르는 포박을 하고 요르문간드와 헬은 지하 세계로 추방해 버렸다. 헬은 보기만 해도 오싹할 정도로 얼굴 반쪽이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들은 헬에게는 지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당연히 헬은 죽은 자들을 심판할 책임이 있었다. 특히 살아 있을 때 죄를 지은 사람들은 반드시 헬을 마주쳐야만 했다. 알다시피 전투에서 죽은 전사들은 오딘이 주관하는 발할라로 인도되었다. 


헬의 고문실은 강 한가운데 있는 망자들의 섬에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죽은 자들 중에는 죽은 자들의 손발톱으로 만든 배인 나글파르(Naglfar)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에게 머리 셋 달린 개인 케르베로스(Cerberus)가 있다면 헬에게는 지하 세계를 지키는 경비견 가름(Garmr)이 있다. 최후의 전쟁 때 티르(Tyr)는 바로 이 가름과 싸우다 목에 가름의 이빨이 박힌 채로 죽게 된다. 이 때 가름도 함께 죽는다.  

헬의 궁전을 엘류드니르(Eljudnir)라고 하는데 그 성벽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다고 한다. 엘류드니르 궁전의 입구 문턱은 '낙하의 위기'라는 뜻의 파란다 포라드(Fallanda Forad)라고 불렀고 헬의 침대는 '병상'이란 뜻의 코르(Kor)로, 침대의 커튼은 브리캰다 볼(Blikjanda Bol)이라고 해서 '빛나는 재앙'이라는 뜻이란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답게 헬이 식사할 때 사용하는 접시는 '공복'이라는 의미의 홍(Hungr)이라고 불렀고 칼은 수르트(Sultr)라고 해서 '굶주림'을 뜻한다고 한다. 지하 세계를 지배한 막강한 신이었지만 라그나로그 때는 헬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어차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었으니 종말 이후에도 지하 세계를 계속 지배하지 않았을까.


태어날 때 물고 나온 수저로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는 청년 세대. 아니라고 그래도 어딘가에는 빛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외치는 언론들. 먹고 사는데 무슨 일은 못하냐는 시대의 지진아 꼰대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안전사고들. 연일 쏟아지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패륜 범죄들. 헬조선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성정이나 성격을 논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부조리와 불합리가 청산되지 않고 켜켜이 쌓여가는 지금의 사회 구조가 헬조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신은 지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산 자가 지하 세계로 갈 수 없듯이 제 아무리 신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신이 지상으로 올라올 수는 없는 법이다. 더 이상 죽음의 여신 헬(Hel)을 지상으로 소환해서는 안된다. 그럴려면 잘 지워지지 않을 만큼 쌓인 부조리와 불합리를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사진>죽음의 신 헬, 지하세계를 지키는 개 가름. 출처>구글 검색◈자료>북유럽 신화사전/비즈앤비즈, 신화와 전설/21세기 북스, 북유럽 신화/나무의 철학, 그리스 신화밖에 모르는 당신에게/행성비, 포털(뉴스) 검색

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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