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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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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 도박 그리고 불륜 이기영의 /1933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30,40대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쥐불놀이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설날 세뱃돈만큼이나 소중하게 모아두었던 빈 깡통도 보름 뒤에 있을 쥐불놀이를 위해서였다. 깡통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마른 풀이나 종이로 밑불을 놓아 불씨를 만든 다음 마른 장작을 빼곡히 채운다. 꺼지지나 않을까 깡통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모인다. 어느 틈엔가 들판은 쥐불을 하나씩 들고 나온 동네 아이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누구의 신호랄 것도 없이 각자 크게 원을 그리며 쥐불을 돌리면 겨울 들녘은 온통 새빨갛게 불춤의 향연이 한판 벌어진다. 작가 이기영의 시선은 지금 이 쥐불놀이를 향하고 있다. 한데 난데없는 불빛이 그 산 밑으로 반짝이었다. 그것은 마치 땅 위로 ..
'민촌' 쥐는 쥐인 척 해야 제격이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기영의 『민촌』/「조선지광」50호(1925.12)/창비사 펴냄 "쥐는 쥐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제격에 들어맞는 법이다. 작자는 여실하게 부르조와 연애소설이나 쓰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비위에 맞는 강담소설이나 쓸 것이지 아예 이와 같은 무모한 경거망동의 만용은 부릴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념론자이기로 이만한 이해관계는 구별할 만한 두뇌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사람이 있다면 가슴을 쓸어내려도 될 듯 싶다. 그대가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는 말이다. 쥐이면서 쥐가 아닌 양 행세한다는 이는 다름아닌 춘원 이광수이기 때문이다. 조국해방을 황국신민이 못된 아쉬움으로 토로했던 뼛 속까지 친일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추..
'홍염' 그는 왜 사위를 죽여야만 했나 최서해의 /1927년 신경향파 문학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작가들이 기존의 관념적이고 퇴폐적이며 유미적인 문학 대신 현실에 바탕을 둔 문학 운동을 기치로 출발했다. 그러나 과도기적 문학 운동의 한계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사회 불평등과 억압 구조 등에 대한 사회구조적 관점보다는 현실 고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의 행동은 늘 돌출적이고 충동적이다. 계급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다보니 소설의 결론은 살인이나 방화, 자살 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최서해의 『홍염』은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들을 두루 갖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탈출기』에서는 주인공이 항일무장투쟁에 나..
나는 이래서 XX단에 가입했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최서해의 『탈출기』/「조선문단」6호(1925.3)/창비사 펴냄 ‘조선의 막심 고리키’ 최서해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냉전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슬픔이자 아픔이다. 나의 저급한 문학적 소양을 일반화시키는 오류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과거가 그랬고 현실이 또 그렇다. 색안경을 끼고 볼 기회조차도 억압받았던 시대, 소위 좌파문학이라 일컫는 우리 소설들은 교과서에서도 외면받았고 가령 교육을 받았다손치더라도 몇 줄에 불과한 설명뿐이었다. 최서해의 『탈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약하나마 출판사가 제공한 작가 최서해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본명이 학송인 최서해는 1901년 함경북도 성진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품팔이, 나..
'목매이는 여자' 그녀는 왜? [20세기 한국소설] 중 박종화의 『목매이는 여자』/「백조」3호(1923.9)/창비사 펴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유응부를 기억하는가? 이들은 어린 임금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수양대군, 세조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역사는 그들을 사육신(사六臣)이라 부른다. 사육신과 함께 또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있다.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이들은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관직을 거부하고 재야에 묻혀 살았다. 살아서 주군에 대한 충성을 다했으니 이들을 생육신(生六臣)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가 그들을 어떻게 기억했고 또 어떻게 기억하든 그들은 멋진 남자였다. 12명의 멋진 남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가 ..
지형근, 그는 왜 노동자이기를 거부했을까? [20세기 한국소설] 중 나도향의 『지형근』/「조선문단」14~16호(1926. 3~5)/창비사 펴냄 "교직원 한 명 나와보질 않아요. 그래도 매일같이 자신의 사무실을 쓸고 닦아주시던 분들인데 그렇게 하대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더욱이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말이죠." 배우 김여진의 말이다. 그는 요즘 용업업체와의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평생 일터에서쫓겨날 위기에 처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홍익대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양대, 한국교원대 등 지성을 대표한다는 대학에서 해고의 칼바람이 북풍한설보다 더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겉으로는 용업업체와의 계약만료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학들의 의도는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바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이다. 대학 ..
고향에는 슬픈 신작로가 있었다 현진건의 /1926년 우리네 길은 꼬불꼬불 지루함이 없다. 굽이돌아 해가 드는 모퉁이에는 느티나무를 그늘삼은 큼직한 돌멩이가 있어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불쑥 튀어나온 어릴 적 벗이 더없이 반가웠다.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낯선 이와도 엷은 미소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런 길이 어느 날 논을 가로지른 아지랑이 너머로 끝이 가물가물한 지루한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 불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고향에는 신작로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신작로를 60,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생겨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신작로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탈한 식량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 우리네 꼬불꼬불했던 길을 쭉 잡아 늘어뜨린 길이 신작로였다. 신작로에는..
불은 누가 질렀을까? 나도향의 /1925년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였으며 주인의 아들을 저주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을 저주하였다.” -『벙어리 삼룡이』 중에서- 오생원집 머슴 삼룡이는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아도 상대를 원망하는 법이 없다. 사회적 약자로서 그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비록 강요된 선택일지라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고개는 몸뚱이에 대강 붙어있고 땅딸보에 불밤송이 머리를 하고 옴두꺼비마냥 더디게 걷는 삼룡이는 벙어리다. 세상 손가락질은 다 받고 살지언정 그도 사람이다. 그는 웃을 줄도 알고 울 줄도 안다. 흔하디 흔한 사랑, 그라고 못해봤을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지 마라. 뜨거운 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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