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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박노해/1984년

 

지난 달 27일 공개된 한국금융연구원의 '임금없는 성장의 국제 비교' 보고서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늘 소외돼 왔던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 사이 명목 임금을 소비자 물가 상승률로 조정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2.3%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근로자 수로 나눈 실질노동생산성은 9.8% 증가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에 합당한 댓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서로 비슷하게 움직이던 실질임금과 실질노동생산성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당장이라도 선진국에 진입할 것처럼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정부 홍보와 달리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우리나라의 실질임금 수준은 심각하기 짝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위기를 겪은 국가들과 1인당 GDP가 세계 40위권 밖인 나라들을 빼고 비교하면 우리나라보다 실질임금 하락폭이 큰 나라는 영국과 일본, 이스라엘 뿐이라고 한다. 이 기간 우리나라의 실질노동생산성은 비교 대상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결국 정부와 기업이 홍보하는 대한민국의 장미빛 미래는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한 '임금 없는 성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새벽> 이후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뿐, 현장에서 느끼는 정부와 기업의 부당한 노동정책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삶은 훨씬 더 열악하고 비참하다. 올해 또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이 한 권의 시집을 꺼내든 이유이기도 하다.

 

 

말더듬이 염색공 사촌형은/10년 퇴직금을 중동취업 브로커에게 털리고 나서/자살을 했다/돈 100만원이면/아파 누우신 우리 엄마 병원을 가고/스물아홉 노처녀 누나 꽃가말 탄다/돈 천만원이면/내가 10년을 꼬박 벌어야 한다/1억원은 두번 태어나 발버둥쳐도 엄두도 나지 않는/강 건너 산 너무 무지개이다/나의 인생은 일당 4,000원짜리/그대의 인생은 얼마 -<노동의 새벽> '얼마짜리지' 중에서-

 

조금은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다. 도서출판 풀빛이 풀빛판화시선 5호로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낸 해가 1984년이니 벌써 올해로 30년이 지났다. '일당 4,000짜리' 노동자가 '시급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팍팍한 삶은 시집에 있는 그대로다. 필자가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온전히 보냈던 1980년대 당시 500원짜리 짜장면이지만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2014년 5,000원짜리 짜장면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나 마찬가지다. 생활임금에도 한참 못미치는 최저임금으로 수준으로 사는 노동자가 4백만에 육박한다니 그 가족까지 따진다면 전체 국민의 20%가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올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고/주인네는 전셋돈을 50만원은 더 올려달라 하고/이번 달엔 어머님 제사가 있고/다음 달엔 명선이 결혼식이고/내년엔 우리 민주 유치원도 보내야 한다/…중략…/민주야/저 달력의 빨간 숫자는/아빠의 휴일이 아니란다/배부르고 능력있는 양반들의 휴일이지/곤히 잠든 민주야/…중략…/선진조국 노동자/민주 아빠는 저 임금의 올가미에 모가지가 매여서/빨간 휴일날/누렇게 누렇게 찌들은 소처럼/휴일특근을 간다 민주야 -<노동의 새벽> '휴일특근' 중에서-

 

시詩에서는  취업 브로커에게 퇴직금을 모두 털리고 자살했다는 사촌형 이야기가 나오지만 요즘은 하루가 멀다하고 생계형 범죄니 더 나아가 생계형 자살이 신문과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자본이 방임한 개인의 삶들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복지가 존재해야 할, 확대돼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복지를 얘기하면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복지를 확대하면 마치 국가가 부도나 날 것처럼 정부고 언론이고 한 목소리다. 1백32만원. 요즘 세상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금액일까 싶지만 보건복지부가 정한 3인 가구 최저 생계비다. 과연 이런 터무니없는 수치를 만든 이들은 이 돈으로 살아나 봤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전혀 현실성 없는 정부의 3인 가구 최저 생계비는 해마다 진행되는 다음 년도 최저 임금의 산출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 평균 점심값인 6,219원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최저 시급이라고 결정해 놓고는 공치사 하는 게 국가의 민낯이다.

 

게다가 IMF 이후 노동 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어 놓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의 또 다른 계급은 사회 구성원간 반목과 빈곤의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세월호 선원들의 고용 형태는 우리 사회 여러 사업장에서 일상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한 반목과 불신의 벽은 거대한 장막으로 변해가고 있다. 5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아무리 뛰어난 업무 노하우를 갖고 있어도 계약이나 파견 등 비정규직은 갓 입사한 풋내기 정규직보다 못한 임금에 대우를 받기 일쑤다. 많은 기업들이 호소하는 구인난도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다. 돈 몇 푼으로 평생을 비루하게 사느니 당장은 힘들더라도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당장 취업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정부이 좋은 일자리 만들기도 이런 구조적 모순들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결국 또 다른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게 뻔하다.

 

상쾌한 아침을 맞아/즐겁게 땀흘려 노동하고/뉘엿한 석양녘/동료들과 웃음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떳떳하게 노동하며/평온한 저녁을 갖고 싶은 우리의 꿈을/그 누가 짓밟는가/그 무엇이 우리를 불안케 하는가/불안 속에 살아온 지난 30년을/이제는,/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노동의 새벽>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중에서-

 

한때 유행했던 TV 광고 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있었다. 그림의 떡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여전히 노동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열악한 임금 체계 때문에 야근에 주말 특근이라도 하지 않으면 온전히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는 현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일을 한다는 대한민국, 해마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 국가가 열악한 노동현실을 방치한 사이 '평온한 저녁을 같이 할 가족'은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엄중한 현실에도 국가와 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예전 그대로다. 노동은 가장 천대받는 가치 중 하나로 전락해 버렸고, 대물림 되는 가난은 아이들의 소박한 꿈마저 짓밟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 현실만큼은 세월의 변화가 무색하리만치 과거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생활임금 6,700원을 요구하고 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인간적인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허울뿐인 '좋은 일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적으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런 게 불가능하다면 '좋은 일자리'는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못된 정책이 될 게 불보듯 뻔하다.

 

박노해 시인은 시집 서문에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상으로 바칩니다.'라고 썼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쓴 시인의 이 말을 2014년 다시 쓴다고 해도 한 자도 바꿀 게 없다는 현실이 무겁고 침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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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