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경향신문/2030콘서트/'설국열차'와 삼성전자서비스노조 by 홍명교/사회진보연대 활동가
“나는 삼성이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어제 아침 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나는 삼성전자서비스 ○○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고, 그는 하루 15시간 노동의 고된 발걸음에 나서던 중이었다. 무더운 여름 하루도 쉬지 않고 삼성전자서비스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삼성전자 제품을 가득 안고 나서는 그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순간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를 뺏긴 한 남자가 팔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을 때, 열차의 2인자 메이슨은 남자의 머리 위에 구두를 올려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구두는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듯 꼬리칸의 ‘천박한 것들’은 이곳의 질서를 넘어서는 행동을 ‘감히’ 자행해선 안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이런 강요된 질서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하청노동자는 하청노동자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겠다는 헛된 희망은 애써 짓누르면서 말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이 ‘헛된 희망’으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꿈을 품고 행동에 나서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스스로 삼성과 무관하다고 말한 그 노동자는 애써 ‘희망’ 품기를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꼬리칸’의 천박한 사람들이 엔진으로 나아가 ‘해방’의 꿈을 품은 것과 다르지 않은 무수한 역사가 우리에게 ‘패배’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십년간 노동운동이 깊은 좌절 속에서 분열과 후퇴를 반복해왔으니 이를 지켜봐온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접고 희망 품기를 포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혁명의 꿈을 품은 꼬리칸 사람들도 그런 ‘의심’을 지닌 옛 친구를 만난다. 그는 함께 앞으로 가서 싸우자는 동료에게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라며 거절한다. 우리 역시 그 옛 친구처럼 지배계급이 만든 질서를 벗어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다.
얼마 전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이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집단가입하며 삼성에 맞선 단결된 행동을 개시했다.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여름휴가일랑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후의, 최고의 보루다. 보름여 만에 노동조합 가입자가 2000명으로 늘었다고 하니 ‘무노조 경영’과 하루 12시간 노동이라는 초헌법적 경영원칙을 고수하던 삼성전자엔 당황스러운 사건이 됐다. ‘바지사장’들을 불러 모아 어떤 방책을 알려주었는지 교섭을 요구하는 노조에 돌아오는 답변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은 제품 수리 후 “저희 제품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은 근로기준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여러분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닙니다”라며 매몰차게 답하고 있다. 사측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뭉치고, 고용노동부 역시 관리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위장도급과 부당노동행위 고소에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연 고용노동부가 탈법 자본의 편인지,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편인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이다. ‘주어진 질서’를 넘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여전히 헌법과 근로기준법을 어기며 노동자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노동자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저해받는 한국 사회에서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무한한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항상 소비자로서 그들을 대했던 우리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이미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삶을 바꾸는 것은 정치인들이 우리 대신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뭉쳐 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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