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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얼마나 서러우면 빗물이 다 울까, 설움의 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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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의 덩이/김소월(1902~1934)

 

꿇어앉아 올리는 향로의 향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초닷새 달 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꿇어앉아 향불을 피우는 행위가 마치 경건한 구도자의 모습같다. 설움의 크기도 계량화시킬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설움을 화자는 조그맣지만 '덩이'라고 표현했다. 가슴을 저미는 설움이 얼마나 컸으면 뭉치고 뭉쳐 '덩이'가 됐을까. 구도자의 자세로 설움을 삭히려는 화자의 모습은 종교보다도 더 숙연하고 진지하다. 빗물이 다 울 정도니 설움으로 화자가 받았을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화자는 가슴 한 구석을 채우고 있는 설움을 떨쳐낼 수 있을까. 화자에게 설움은 '향불'과 '빗물'로 상징화되지만 아쉽게도 '향불'과 '빗물'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구도자의 행위를 통해 설움을 삭힐 뿐 화자에게 '설움'은 평생 가슴 속에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분출할지 모르는 설움을 나름의 방식으로 승화시키며 사는 삶, 그런 게 바로 인생일 것이다.

 

 

문득 화자에게 아니 소월에게는 어떤 설움이 그렇게 '덩이'가 되어 스스로에게 구도자의 삶을 강요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좀 더 정확한 호기심은 시를 비롯한 문학에도 정답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우리는 늘 해답이 있는 문학을 감상해왔기 때문에 드는 호기심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교과서에서 이 시를 배웠다면 아주 명쾌한 답을 돌아돌아 나는 무의미한 고민만 거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용운이 말한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에서 '님'은 '빼앗긴 조국'이었다. 왜 한용운이 말한 '님'이 '속세의 사랑에 대한 아픔'이면 안되었을까. 시를 읽는 사람은 수백인데 느끼는 감동은 하나여만 했던 게 현실이었다. 아니 현실인지도 모를 일이다. 넷 중에 하나는 선택해야 하니까. 그것으로 시인과 나의 교감은 완전한 하나의 몸이 되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 내가 학창 시절 배웠던 문학이었다.

 

소월에게 '설움'은 오래 살지 못할 자신의 운명에 대한 그것이었을 수도 있고, 묘령의 여인에게 받은 상처가 켜켜이 쌓인 그것이었을 수도 있다. 또 교과서적이지만 나라 잃은 설움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독자는 시인이 말한 '설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승화시키는 법을 찾아가는 길을 내면 되는 것이다. 무릇 교육이란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맑은 물을 뿌려주는 행위가 아닐까.

 

어느 퇴직교사의 '참교육 이야기'가 쉬 읽히지 않는 것이 비단 삼복 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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