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지난 5일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는 2014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350원 인상한 시간당 5210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작년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겠다는 공약까지 한 바 있어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노동계는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21.6% 인상한 5910원을 주장했으나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이유로 0.1%도 올릴 수 없다는 재계의 반발에 부딪쳐 예년 수준의 인상률에 그치고 말았다.
최저임금 521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갖가지 가십성 기사들이 넘쳐나지만, 사실은 비루한 현실을 대변해 주는 기사들이다.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노동자가 숨만 쉬고 60년을 모아야 강남에 아파트 한 채 구입할 수 있다느니, 광주광역시에서는 최저임금으로 8년 6개월을 모아야 전세집을 마련할 수 있다느니 하는 기사 말이다. 또 누리꾼들은 현재 맥도널드 빅맥 세트 가격이 5300원으로 한 시간 힘들게 일해봐야 빅맥 세트 하나 사먹지 못한다며 푸념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이 코 앞에 다가온 것처럼 최저임금은 국제기준이나 우리 사회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아 소득 불평등 해소는 요원한 꿈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다시 기대를 저버린 내년도 최저임금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취업난과 등록금 천만원 시대를 맞아 학자금 대출로 사회 진출과 동시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조준하고 있는 꼴이다. 대학 시절에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고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야만 하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최저임금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5210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고 청년 세대가 아니라도 '나홀로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배달음식은 가장 현실적인 비교대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대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 수준이 비교적 낮은 곳이다.
배달음식의 대명사라면 치킨일 것이다. 요즘에도 이 가격에 치킨을 먹을 수 있다니 하고 놀랄 것이다. 물론 우리동네 배달음식 카탈로그에서 가장 저렴한 치킨집 가격이다. 거의 대부분이 만5천원~만8천원 수준이다. 돌이켜보면 7~8천원 하던 치킨 가격이 만원대로 처음 진입했을 때의 충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요즘은 해마다 가격이 올라서인지 감각이 무뎌진지도 오래지 싶다. 심지어 얼마나 좋은 기름으로 튀겼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2만원 가까이 하는 치킨도 있는 걸 보면 하루종일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봐야 치킨 두 마리 값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필자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온 지는 이제 겨우 반 년 가까이 됐다. 정말 싸긴 싸다. 2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피자가 이렇게 많다니.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2만원 이하 피자가 거의 없었는데. 어쨌든 입맛은 자꾸 서구식으로 변해가는데 피자 한 판 먹기도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가장 대중적인 외식 음식이면서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많이 찾는 게 바로 중국음식이다. 그 중에서도 짜장과 짬뽕은 어릴 적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음식일 것이다. 필자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동전으로 계산할 수 있을만큼 싼 음식이었지만 그나마도 일년 중 중요한 날 며칠만 먹을 수 있었으니 먹고 싶으면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때야 귀해서 먹기 힘들었다지만 이제는 흔하디 흔한 짜장면이 한 시간 일해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로 밖에서 술 한잔 하기 힘들다면 가장 흔하게 먹는 안주거리가 족발이다. 장정 서넛만 모여도 간질 맛만 날 정도로 양이 부족하다는 것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양을 줄이는 것으로 가격인상 효과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이런 음식들도 요즘은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단다. 역시 가격이 만만찮다.
소주 한 잔 하는데 아구찜만한 안주가 있을까. 아무리 뒤져도 아구는 보이지 않고 콩나물만 듬뿍 듬뿍 쌓여있으니 문제지. 역시 양을 줄이는 것으로 가격인상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리라.
여름철 대표음식 냉면. 뼛 속까지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면 여름쯤이야 하겠지만 최저임금을 훌쩍 넘는 가격이다. 직접 냉면집을 찾으면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음식이야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지만 매일매일 거를 수 없는 것이 바로 밥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을 것이다. 최저임금보다 싼 한 끼 식사가 있으니 말이다. 김치찌개가 5천원. 그러나 직접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을라치면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위에 나와있는 김치찌개는 반찬으로 김치와 단무지 몇 조각 나오는 ○○나라, ○○천국 등으로 불리는 분식집 메뉴이기 때문이다.
분식집이 아니고는 최저임금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부대찌개 1인분에 공기밥만 두 개를 시켜 먹으면 몰라도.
요즘은 웰빙이 대세라 이런 음식들도 배달된다.
대전에서 물가가 가장 싼 이곳에서도 최저임금 5210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것도 배달음식이 거의 없다. 게다가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비교해서 이 정도지 올해 최저임금인 4860원과 비교한다면 그나마 분식집 김치찌개도 먹을 수 없는 수준이다.
각종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1년 일본의 최저임금은 9.16달러로 우리나라 최저임금 5210원을 달러로 환산한 4.56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중간 정도 수준에 해당된다고 한다. 문제는 계층간 소득 불균형 문제로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상용직 임금의 34%로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낮은 편으로 특히 상위 10%와 하위 10% 간 소득 격차는 멕시코 다음으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최저생활임금도 안되는 최저임금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니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니고는 실현 가능성이 좀체 보이질 않는다. 기업들도 언제까지 값싼 노동력에만 의존할 것인지 한심하다. 한 끼 식사도 안되는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비루한 현실 속에 뼈와 땀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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